가끔가다 공기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일 없는데도 무슨 일이든 벌어질 것만 같고, 내가 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그래서 거울을 쳐다보기가 죽기만큼 두려울 때. 바로 나에게 불안이 엄습해올 때이다.
이러다 내가 뭔일 내는 거 아닐까. 조그만 자취방에 혼자 앉아 정말로 이런 단계까지 생각의 굴을 파고 든다.
지난 주말 저녁이었다. 그런 순간이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방문처럼 나는 내가 무엇부터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자야하나. 이 상태에서는 잠이 올리가 없다. 그럼 책이나 영화를 봐야하나. 그렇게 하면 생각이라는 놈이 더 많아질 게 뻔하다. 애라 모르겠다. 그냥 무작정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경의선 숲길이 집앞에 뻗어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일까. 무작정 뛰었다. 공원의 생김새처럼 그냥 직진했다. 뛰다보니 아기자기한 찻집들이 지나갔고, 화려한 홍대와 연남동의 불빛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 뛰었다. 공원의 조명들이 위아래로 찍찍 선을 그으며 지나갔다. 마스크 위의 안경은 이미 앞이 안 보였다. 숨이 턱에 닿았다. 얼마만에 뛰어본 것인지, 뛰자마자 픽 쓰러질 줄 알았지만, 꽤 오랜시간 동안 나는 뛰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힘들다는 '생각'이 났고, 안에 입은 내복이 홀딱 젖었음을 느꼈을 때는 벗고 나올걸 하는 '생각'이 났다. 그리고 더이상 뛸 힘이 남아있지 않았을 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어떤 '생각'도 나에게 관여하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다음날 바로 런닝화를 샀다. 그렇다. 역시 운동은 장비빨이다. 허나 이번만큼은 운동을 넘어서 나를 건강하게 괴롭힌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꽤 비싸게 신발을 샀다. 그리고 아직 개시 전이다. 빨리 괴롭히러 나가야하는데 불안이 이번에는 왜 잘 안 찾아오나 모르겠다.
괴로울 땐 기꺼이 괴로워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