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유감

-'문화인 블랙리스트'를 바라보는 시선

by 지안

며칠 기분이 영 쓸쓸했다. George Michael 부고 때문이다(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남자와는 물론 일면식도 없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이토록 심한 감정의 흔들림을 주리라는 것도 예상치 못했다.


이를 테면 이렇다. 조용한 산책길에 맥락 없이 날아와 머리를 때리는 축구공처럼, 조지 마이클의 부고는 난데없이 그의 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의 추억들을 일시에 소환했다. 그의 앨범을 몇 장 가지고 있는데, Wham 시절부터 [Faith], [older] 등 솔로 앨범까지 그야말로 LP 홈에 구멍이 날 정도로 들었다(이게 30년 전 이야기다). 새로운 기억은 옛 추억 위에 덮이듯 쌓인다. 30년 전 기억은 당연한 듯 빚 바랜 채 새 기억 아래 묻혀 있었다.


그랬던 것이 일순 그의 죽음을 계기로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것이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친구와 밤새 앤드류 리즐리의 멀건 외모와 조지 마이클의 가창력에 대해 떠들던 것, 기름 냄새가 나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타고 전해지던 음악, 그리고 그때 창 밖의 햇살까지 또렷하게 살아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장국영이 죽었을 때도 김광석, 신해철의 부음이 전해졌을 때도 같았다. 죽기 전에 이과수 폭포를 꼭 보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것은 장국영이 나왔던 영화 [Happy Together] 때문이었다. 요즘도 김광석이나 신해철의 음반을 들을 때면 예전 추억이 늘 동반한다. 그때의 사람들과 분위기와 공기 같은 것들 사이로 나 자신이 쑤욱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을 함께 지내며 만난 사람들, 겪은 일들, 영화들, 책들 하나하나가 나를 만들고 이룬다. 하다못해 쓰레기 같은 기억만 남기고 떠난 구 남친 조차 나를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숱한 나들이 모여 만든 집합체다.


어떤 감정은 지나간 뒤에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람’과 막상 헤어지고 나면 덤덤할 수도 있고, 그냥 친구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다들 제 감정을 정확히 알고 미리미리 수습했다면, ‘너의 의미를 몰랐었어, 다시 돌아와 줘’의 변형으로 가득 찬 유행가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지 마이클의 부음은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깊은 상실감을 준다.

전등갓의 이과수를 보기 위해......그들도, 나도....

그러니까 연예인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 연예인과 직접 관련된 것도 또한 아니다. 나는 그가 만든 음악 혹은 영화 혹은 생각하게 하는 어떤 계기를 소비한 것이고 느낀 것이고 기억한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바로 기호다.”라고한 질 들뢰즈의 말처럼 그들은 우리의 기호다.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하는 의견에 반대한다. 공인(公人)이란 무릇 국록(國祿)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그저 “유명한 사람”이거나 “얼굴이 알려진 사람”, “기호”정도가 적합하다. 이제는 데뷔하는 나이도 점점 어려져서 그저 ‘상식적인 말’이나 ‘해외 나갈 때 남의 나라 혹은 내 나라 역사 정도는’ 알았으면 하는 강렬한 바람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그저 개인적인 거다. 그들이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공인도 아닌 사람들을 ‘관리’하려다 보니 출현한 것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이지 싶다. 만 명쯤이라니 많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들은 ‘나의 기호’조차‘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하고 싶었던 가보다.


조지 마이클의 음반을 들을 무렵, 4~5곡이 끝나면 손으로 뒤집어야 하는 LP 레코드 덕에 퍽 귀찮았다 그 와중에 소위 ‘건전가요’가 나오면(당시 모든 음반에는 ‘건전가요’를 하나씩 끼워 넣어야 했다. 반드시!) 머리 위로 아이스 버킷이 쏟아진 것처럼 화다닥 일어나야 했다. 강제된 취향이란 이렇듯 조잡하고 저렴하다.

영화 '해피 투게더'의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 곳

‘건전 가요’와 쌍벽을 이루던 것이 영화를 보기 전 반드시 봐야 했던 ‘대한 늬우스’였다. 황지우 시인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가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생각해보면 이 정도라도 취향과 기호를 보존하게 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니들이 ‘건전가요’와‘대한늬우스’를 알아?라고나 할까….ㅋ)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건전가요’가 한자리를 차지한 음반 같은 것은 안 살 생각이다(난 지금도 꼭 음반을 구입해서 듣는 올드한 음악팬이다!). ‘건전가요’와 ‘대한늬우스’의 시대로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인간들에게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은 없다.


“단지 예술에 의해서만 우리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이 우주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물론 그들의 우주는 우리 것과는 다르고, 그 풍경은 달의 풍경만큼이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었던 것이다. 예술 때문에 우리는 자신만의 세계를 보는 대신 세계가 다양하다는 사실, 그리고 독창적인 예술가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세계들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고 프루스트는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우주를 황폐하게 만들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의 ‘사이’는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