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먹음'에 대하여

- 어떤 친구가 될 것인가

by 지안

숨만 쉬어도 나이는 먹는다. 늙는다는 소리다. 정신적 발달 상태는 알 수 없지만 외견상으로는 어른이 된다. 아마 이것이 가장 문제겠지만……


눈 뜨면 회사 가고 틈나면 친구 만나 놀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회사에서는 어느덧 ‘-님’ 자 호칭보다 ‘-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부모님과 외식을 해도 내가 돈을 내기 시작한 것은 이미 한참 전이다. “뭐하고 놀까?”, “어떻게 안 심심할까?” 궁리하는 중 몇 개의 질문이 더 생겼다. “어떻게 나이 먹어야 하나?”,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나”.


숨만 쉬어도 나이는 먹는다

“결혼”할 때 중요한 점은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재산, 지위, 배경을 다 떠나서, 그야말로 ‘자취’를 같이 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어느 정도 깔끔한지, 식성은 어떤지, 빨래할 속옷은 어디에 두는지 같은 지극히 단순한 ‘자취력’이 맞지 않으면 결국 ‘결혼 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것에는 명확한 한계와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어른이 되느냐’는 ‘어떤 친구가 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구도로 나누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 나이’를 지나왔다. 순수하게 내 관점이긴 하지만, 그 나이 때 느낌과 생각들을 기억한다. 젊은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절대 가질 수 없는 ‘생각’이다.


한번 방문했던 여행지를 걷는 것은 처음보다는 쉽고 편하다. 그 길에서 초보 여행자를 만난다면 똑같이 당황하고 화낼 일은 아니다. 내 걸음걸이로 끄는 것보다는 그의 걸음을 맞추는 편이 안전하고 싸울 일도 줄어든다.


‘돼지고기’라는 재료로‘제육볶음’만 해본 사람보다 ‘수육’도 하고 ‘샤브샤브’도 만들고 ‘꼬치구이’ 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쉽게 입맛을 맞출 수 있다. 이것저것 다 먹어 봤는데 ‘수육’이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소리 질러봐야 (설령 그 말이 진실이라고 할 지라도) 소용이 없다. 그들은 제육볶음 밖에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럴 바엔 같이 제육볶음 먹고(나름 먹기 괜찮지 않은가?), 다음번에 수육을 대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주장하지 말고, 먹어보고 판단하도록 맡길 수밖에 없다.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한다

모든 일에는 배움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분노’하고 ‘화’를 내는 것에도 그렇다. 제 때에 정확한 정도로 발산하는 것에는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는 그런 것들을 배우지 못한다. 엄마한테 혼난다고 ‘화’를 내고, 선생님이 내가 안 한 짓을 가지고 단체로 기합을 줄 때마다 ‘분노’하기 시작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이건 물리적 의미 그대로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결국 아무것에도 ‘제대로’ 화를 낼 줄도 분노할 줄도 모르는 어른이 된다. 내 위치는 언제가 ‘화’를 낼 타이밍인지 ‘분노’할 순간인지 (그것이 설령 나를 향하는 것이라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하다. 문제를 아는 사람만이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해답이란 것이 인생에는 주어져 있지도 않다(알면 내가 벌써 잘 살고 있겠지 ㅋㅋ). 같이 궁리하다 보면 좀 낫다 싶은 것이 나오는 정도다.

최선을 다해 잘 놀 것이다!

어떻게 나이를 먹을 것이냐? 재미있게 늙고 싶다. 친구들이 팔팔하니 같이 놀기 더없이 좋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는 ‘근자감’ 가진 친구들과 노는 것, 사절이다. 이런 친구들 때문에 ‘수육’ 먹고 싶은데 ‘제육볶음’ 먹어야 되는 경우는 정말 짜증 난다. 게다가 돈은 내가 낸다. 이건 너무하다.


대신 ‘함께 살아간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계속 잘 지내고 싶다. 위로 깍듯하지도 못할뿐더러, 아래로도 개념이 없어서 십여 년 위아래로 반말이 난무한다. 버릇없다고 내치지 않는 선배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한참 아래인 후배들이 전투력 있게 덤벼주는 것에도 감사한다. 다들 재미있게 살아보자! 나는 앞으로도 쭉 최선을 다해 잘 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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