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소원은 집중!
연애를 할 때 사전에 다짐을 받는 부분이 있다. 안 보이는 데서 ‘잘 있느냐’, ‘뭐 하느냐’, ‘밥은 먹었느냐’ 궁금해하지 말고, “눈 앞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집중하라”라고 말한다. 거의 이게 유일한 요구사항이다. 그리고 짐작하듯, 헤어지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24시간 중 현재를 살고 있는 때는 얼마쯤일까? 미래에 대한 걱정, 과거에 대한 후회 말고 “여기, 지금, 마주 보고 있는 당신 혹은 나”만 생각하는 때는 얼마인가.
‘사회적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딘가의 일부로 엮여 살아간다. 누군가의 자식이거나 엄마이거나, 애인이거나, 어느 회사의 무엇이거나 아르바이트생으로 산다. 온전히 ‘나 혼자’로 살기는 처음부터 힘들다. 부모 혹은 자식의 눈치를 보고, 상사의 심기를 헤아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타인의 감정에는 민감하게, 내 감정에는 연약하고 소심하게 반응하는 것을 미덕 혹은 어른스러움으로 포장하며 살아간다. 그 결과 돌보아지지 않은 내 감정이 얼마나 남루하게 변하였는지는 알게 될 때쯤에는 눈물을 흘릴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왜 “저들의 요구”에는 재빠르게 반응하고,“나의 요구”는 최대한 참아내야 하는가. 왜 “저들의 시간”은 중요하고 “내 시간”은 다음으로 미뤄져도 되는가. “직장 상사의 요구”가 담긴 카톡을 받기 위해 왜 지금 “내 눈앞의 애인”의 웃음은 “잠깐만” 유예시켜야 하는가. “나를 위한 시간”에는 왜 이다지도 인색해야 하는가.
요즘은 이런 관계들 속에서 빠질 수 있는 잠시의 틈을 “손 안의 디지털”이 쑤시고 들어온다. 핸드폰을 놓고 멍하게 앉아 있던 때는 도대체 언제였나. 중요해 봐야 연예인 사건이고 정치인 스캔들이다.(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하고 “재벌” 걱정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젊은이들에게는 인격도 재능도 근면함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기 자신에게 방향을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어떤 방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어린 시절부터 그들을 길들였다. 그들이 ‘사막에 보내도 좋을 정도로’충분히 성숙하게 되면 그들은 약간 다르게 다루어졌다. 즉 그들은 이용당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박탈당했고, 매일 사용되어 닳아지는 것이 되도록 교육받았으며 그것을 의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이렇게 매일 사용되어 닳지 않고는 지낼 수 없게 되었고 그 이외에 다른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
19C 사람인 니체의 일갈이 지금 이 시간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닳아지고 있다! 뭔가 다른 수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을 찾고, 현재의 시간을 찾고, 내게 기쁨을 주는 사람을 잡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기분 좋아지는 일을 하고, 지금 내 입 속으로 들어간 음식의 맛에 집중하고, 눈앞에서 웃고 있는 얼굴에 정신을 쏟아야 한다.
우리에게 과거의 상처는 아리고, 미래는 걱정으로 얼룩져있다. 그래서 현재는 그만큼 줄어들고 눈앞의 삶을 누리는 것이 용서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가 쌓이는 것이 과거이고, 현재를 지나야 만나는 것이 미래다. 바로 지금 이곳, 당신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