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걱정이다

- 술자리 푸념

by 지안

모닝 소주를 마셨다. 스키장에 파견 나가 있는 친구 A를 만났기 때문이다. 시즌 때 반짝 고용되는 아르바이트 생을 관리 감독한다는 녀석은 팅팅 부은 물귀신 ST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또 한 명, 대학원 석사과정의 B가 지도교수의 숙제를 밤새 마감한 후 뚱뚱한 뱀파이어 ST 한 몰골로 합류했다. A와 B의 차이는 햇빛을 봤는가 못 봤는가 일뿐, 수면부족과 쪽 잠의 반복된 패턴으로 형상은 비슷해 보였다.


낄낄댈 옛이야기 몇 개와 서로의 나이에 대한 저주와 독설을 퍼부은 후(새해에는 이런 것 한 번쯤 해줘야 맛이지!) 내가 말했다.

모닝소주에는 신세한탄이 최고의 안주!

“몇 년째 다니는 치과에 스케일링을 하러 갔는데 의사가 갑자기 그러더라. 실례가 되는 말 입니다만……”


둘은 빈 속에 들이 킨 소주로 인해 몽롱해진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눈앞의 삼겹살을 절대 자신의 손으로는 뒤집지 않겠다는 의지가 함께 섞여 있었다.


“왜? 실례지만 못생겼대?”


“아니지, 새끼야. 그 말이 뭐가 실례라고…..”


삼겹살 한 면을 베이컨으로 만들어버릴까라는 짜증을 뒤로한 채 묵묵히 뒤집으며 내가 말했다.


“시끄럽고….. 볼에 살이 많 거 아시죠? 여기 위쪽 어금니가 하나도 안 닦였어요. 살이 많아서 칫솔이 잘 안 들어가는 것은 알겠는데, 관리가 이렇게 되면 스케일링하셔도 어렵습니다, 이러는 거 있지?”


“어디가 실례라는 거야?”


“그러게. 볼 말고도 살은 많은데 뭐가 어떻다는 거야?”


“지금껏 살면서 이빨을 오만 번은 닦았을 텐데….. 이렇게 지적질을 당하나? 하아.”


삼겹살을 자르는 나를 내버려두고 두 사람은 서로의 잔을 채운 후 곧바로 빈 잔으로 내려놓았다.

난 내가 제일 걱정이다.

“이번 아르바이트 생 중 남자애 하나가 영 섞이지를 못하고 겉도는 거야. 생긴 것은 멀쩡한데 말도 좀 어눌한 것 같고……”

A가 이야기를 더 들으려면 술을 부으라는 듯 빈 잔을 흔들었다.


“그래서 좀 챙겨줬거든. 밥 먹으러 가서도 “야, 형이 낼게.” 이러면서 사주기도 하고. 그러다 “그런데 넌 어느 학교 나왔냐?” 하고 물어봤더니 이런다.”


결과가 재미없으면 절대 따라주지 않겠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나와 B는 소주병을 손에 쥔 채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카암브릿지.”


“으응?”

B가 소주병 쥔 손을 움찔하며 물었다.


“캠브리지 대학 나오셨대. 말이 어눌한 게 아니라 한국말을 잘 못하는 거였어. 영어는 존나 잘해. 진짜 그냥 스키장 구경 온 거였어. 아, 내 밥값.”


B가 재빠르게 잔을 채웠고, A가 허리가 휘어지도록 원샷을 했다.

다들 바쁘지만, 내가 제일 바쁘다.

“야, 나는 말이야. 2년 동안 신입이 없어서 막내였잖아. 청소도 다 하고, 교수님 심부름도 내 몫이고.”


“그랬지. 영원한 막내였지.”


고기 굽느라 수고했다며 내 어깨를 툭툭 친 후 A가 소주를 따랐다. 세 사람의 잔이 비로소 가득 채워졌다. 눈 앞에서는 지글거리는 삼겹살과 마늘이 나 좀 집어가라는 듯 익어가고 있었다.


“그제 신입이 왔어. 나보다 세 살 많고, 중요한 건 대학 부학장 아들이더라.”


A와 나는 약 5초 동안 B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했다. 그리고 셋은 한마디 말도 없이 잔을 비웠다. 뿌연 창 밖으로 출근길을 재촉하는 바쁜 발걸음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래, 지금 우리가 누굴 걱정할 때가 아니지. ‘아니지, 그래도 난 니들이 걱정이다.’ 이런 말을 두런거리며 남은 삼겹살을 꼭꼭 씹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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