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한 삶이란 무엇인가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주인공이 시한부 판정을 받던 날, 악마가 찾아와 거래를 제안한다. “세상에서 한 가지를 없애면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라고.
주위에 있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좋은 영화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딴 곳에 있다. 악마가 주인공을 유혹하면서 하는 대사다. “없어져도 그만인 게 널렸잖아? 세상에는 필요 없는 것 투성이야.” 굳이 ‘악마의 속삭임’이 아니더라도 격하게 공감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들을 ‘필요 없는 리스트’에 올려야 할까?
모친의 살림살이 중에는 가끔 얼굴을 내미는 품목이 있다. 커다란 ‘다라이’(표준어는 아니지만 어쩐지 이 말이 아니면 느낌이 와 닿지 않는다)와 항아리 같은 것들이다. 다라이는 일 년 중 김장 때 한번 출몰한다(올해도 만났다). 항아리는 2년에 한 번 꼴로 만난다. 장 담그실 때다. 창고에는 다듬이 돌과 방망이도 있다. 얘들은 3-4년에 한 번 꼴로 나타난다. 침대 생활을 해서 사용할 일이 없다가 가끔 손님용 이불을 정리할 때면 나왔다 사라진다.
물론 모친은 이 물건들을 버릴 생각이 없다. 그분에게는 이것이 꼭 필요한 물품인 것이다. 말하자면 모친의 생활방식은 그 전 세대와 나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나는 김치는 담그지만 김장의 필요성은 못 느끼고, 장은 얻어먹는다(모친이 안 담그시면 시장에서 사 먹게 되겠지). 이부자리 같은 것은 잊고 산 지 오래다.
올 초 45일 정도 여행을 했다. 대중교통을 수도 없이 이용해야 하는 터라 가방 한 개로 짐을 줄여야 했다. 계절도 한 겨울부터 여름 기후까지 다양해서 패팅부터 반팔까지 챙겨야 했다. 몇 번이고 짐을 싸고 풀고 싸는 짓을 반복하다 알게 되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몇 개 없었다(내 경우는 웃기게도 매직기였다. 천형의 곱슬머리.-_-;;). 땀으로 범벅인 얼굴에 화장까지 할 여유도 없었고, 추울 때는 그냥 겹쳐 입는 것으로 꽤 온기가 유지되었다. 모자 하나로 메이크업부터 헤어까지 해결이 될 줄이야…….
여행지에서, 그것도 배낭 여행지에서 격식을 따지기는 힘들다. 물론 음악회나 근사한 식당을 가기 위한 정장이 있었으면 좋았겠으나, 빠듯한 예산과 시간을 생각하면 포기해도 아깝지 않은 선택지였다. 요컨대 “여행의 방식”이 혹독했던 것이다. 내 여행은 “낭만과 문화가 있는” 여유 있는 관광과 “밥값을 아껴 교통비로 사용하는” 초 절약 여행 사이의 중간 어디쯤이었다.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는 요즘, 결국 문제는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친의 삶이 무겁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달랑 배낭 하나로 추려지는 짐 정도가 정답이라고 말할 생각도 없다. 삶의 방식에 따라 가져야 하는 품목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방식이 단순해지면 (필요한 만큼만 사서 쓰면 단순해진다) 갖춰야 하는 것도 줄어든다(장독은 있어서 무엇하리). 하지만 과연 사 먹는 간장과 모친이 만드는 ‘집간장’이 같은 것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를 얻자면 뭔가를 잃는 삶 위에 있다.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삶이란 애초에 없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악마의 말처럼 “트럼프도 필요 없고, 루빅스 큐브도 필요” 없다. 주인공은 택배기사였으니까. 마술사나 도박사였다면 대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본인만 안다. 누군가의 도움 따위 없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