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피노자로 살펴본 '바가지' 쓰는 심리
1980년대 초반쯤으로 기억한다. 컬러 티브이가 보급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지금에 비하면 야하고 거친 색감이었지만, 하여간 총 천연색이 눈 앞에 펼쳐졌다. 갑자기 드라마 속 배우들의 의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드라마 주인공은 밥술 좀 뜨는 집안 출신일 경우가 많다. 주인공의 엄마는 온 집안을 질질 끌고 다닐 만한 긴 드레스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커피를 마셨다. 주변에서는 절대 마주치지 못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었다. 내 모친이 그녀들의 옷에 확 꽂힌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당시 우리 집은 거실은커녕 툇마루를 내려서서 부엌이 있고, 실외 화장실에, 차라고는 뜨끈한 보리차나 숭늉밖에는 없었지만 그게 뭐가 대수겠는가.
어느 화창한 날, 내 손을 붙들고 남대문 시장으로 간 모친은 시장을 몇 바퀴 돌다 ‘잇 아이템’을 발견했다. 중년의 여자 둘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모친이 한 여주인과 흥정하는 동안 다른 여주인은 통로를 지나는 사람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했다. 나는 사은품이 탐나 추가 구입된 음료수처럼 한구석에 선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꽤 많은 옷이 걸려 있었는데 몇 개의 옷에는 손으로 쓴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아마도 미끼상품이었을 것이다.
잠시 후 모친은 세상의 절반쯤은 얻은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보던 모친의 해맑고 웃음 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데는 10여분쯤 필요했던 것 같다. 당시 옷에는 목 뒤 라벨 붙이는 곳에 가격이 적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과자의 표시 가격 같은 것이다. 가격이 적혀 있지만, 거의 대부분 그 가격으로는 구입하지 않는.
모친은 세상의 멸망을 목도한 표정으로 시장으로 돌진했다. 흥정했던 여주인은 모친의 말에 대꾸 한마디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다른 여주인은 사태를 파악한 후 재빨리 자리를 떴다. 가격표 보다 거의 0 하나가 더 붙은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가게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친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몇 년 동안 그 일을 되새김질하면서 ‘바가지’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대저 ‘바가지’라는 것이 성립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경멸’, ‘동경’, ‘정보 부족’이 그것이다.
첫째, 경멸. 이것은 바가지를 씌우는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갖는 감정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깔보아 업신여김”이다. ‘뭐 초면에 경멸까지야…..’ 할 수 있으므로, 다음 정의를 도입해보겠다. 스피노자는 경멸을 “정신을 거의 감동시키지 못하는, 그렇기에 정신이 그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 안에 있는 것보다 그 안에 있지 않는 것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어떤 사물의 표상”으로 정의했다.
여주인은 내 모친이 홈 드레스를 가질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0.1초 만에 결정했다. 그만큼의 돈이 있는지, 가정환경인 지는 상관없다. 그녀는 멋대로 판단하고 상상해 버린 것이다. 보통 대금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아 들 때까지는 구매자가 ‘갑’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판매자가 ‘경멸’의 마음을 갖고 있을 경우, 그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실제로 모친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막말을 퍼붓는 데도 여주인은 딴 곳을 바라보며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내가 너를 경멸했다’를 사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른 여주인은 환불을 포함해 원하는 모든 종류의 보상을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바가지를 씌운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판매자가 ‘경멸’을 내비쳐도 모르는 경우는 바로 이 두 번째 요소 때문이다. 동경. 이것은 구매자가 해당 상품에 대해 갖는 감정이다.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이라고 사전적으로는 정의한다. 좀 약하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어떤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 혹은 충동”으로 정의했다. 딱이다. 내 모친이 티브이 속 주인공 엄마가 입었던 ‘홈 드레스’에 욕망을 품지만 않았더라도 그 사단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대부분 ‘동경’하는 마음은 주위의 모든 것을 가려버린다. 상대방의‘경멸’까지 읽어내지 못할 정도면 심각하다. 짝퉁 가방을 진품만 한 돈을 주고 구매하거나 위조 그림을 말 안 되는 값에 구매하는 경우가 이것에 해당한다.
스피노자의 말을 좀 더 읽어 보자. “그와 같은 욕망은 존재물의 회상에 의하여 유지되며, 또 그 존재물의 존재를 배제해주는 다른 것을 회상할 때 억제된다.” 내 모친은 티브이 드라마를 끊었어야 했고, 티브이 속 환상의 세계 말고 현실의 옆집 아줌마 옷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래 봐야 사후약방문이지만.
마지막 요소는 ‘정보 부족’이다. 판매자가 경멸을 하던, 구매자가 아무리 큰 동경을 가지고 있던, 가격 비교 검색이라도 해 봤다면,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딸의 손을 질질 끌고 시장을 두 번씩 들락거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는 인터넷은커녕 MS-DOS 컴퓨터도 없던 때다. 모친의 아득함이 짐작이 된다.
요즘은 명품 브랜드 구별법을 따로 익히고, 그림에 대해서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련번호로 가방의 존재를 구별하고, 그림의 유통과정을 공개해서 안심을 주려는 시도도 계속된다. 바야흐로 정보시대인 것이다. 가전제품에서 호텔, 옷, 항공권 심지어 치과치료비까지'가격 비교 검색'의 한계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인터넷에서 돈만 받고 잠적하는 먹튀 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백신이 완벽해지면 바이러스는 점점 교묘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바가지’에는 ‘감정’이 개입한다. 간단히 ‘돈을 얼마 더 썼으니 잘못되었다’라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돈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크다. 내 모친이 보인 ‘분노’는 그런 것이었다. 다시 스피노자로 가보자면, 분노는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에 대한 증오”다. 나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에게 관대해질 방법은 없다. 복수를 했다 해도 증오 자체는 남는다. 상황을 해결해도 언짢은 기분은 계속 남아 상처가 된다. 속상한 일이다.
나쁜 상황은 더 있다. 경멸’과 ‘동경’과 ‘정보 부족’ 이 3요소는 돈이 개입되는 모든 거래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바가지를 써야 ‘옷’이나 ‘음식’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것에 ‘돈’이 개입한다. 재판을 하는데도, 결혼할 사람을 만나는 데도, 학교를 가는 데도 ‘돈’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거래의 영역으로 떨어졌다. 그곳은 바가지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며, 정신적인 밀당이 가능한 지역이다. 정말 속상한 일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다. 환불을 해 주겠다는 여주인의 말을 잠시 고민하던 모친은 다른 결정을 내렸다. 바가지 쓴 액수만큼 다른 옷을 가져가겠다고 한 것이다. 얼마 간의 정신적 보상금도 옷 값에 포함시켰다. 근처에 살던 이모와 또 다른 이모와 동네 아줌마들에게 줄 옷까지 전부 잡히는 대로 집어넣었다. 십 수 벌은 되었던 것 같다. 모친 자신의 옷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불필요한 것을 ‘동경’했던 것에 대한 스스로의 작은 징벌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성복 시인은 말했다. “상처의 상처 다움은 ‘돌이킬 수 없음’에 있다’고. 모친은 그 이후로는 한 번도 티브이 속 의상에 대해 동경을 가지거나 명품을 탐내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조차 보지 않는다. ‘바가지’가 준 커다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