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음'의 폭력성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이래로 국이나 찌개가 없으면 허전하다. 아예 밥상을 거부할 정도는 아니지만 확연히 먹는 양이 줄어든다. 어릴 적 외조모께서는 “너도 너 같은 딸 낳아 밥때마다 국 끓여봐야 이 고생을 안다.”고 역정을 내셨다(국물을 주지 않으면 밥을 안 먹겠다고 한 적은 없다. 그럴만한 권력도 없었고. 그저 국물이 없으면 식사량이 줄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기 짝이 없다).
직접 요리를 하게 된 이후 국이나 찌개를 늘 준비한다. 물론 고생스럽지도 않다. 쌀에 물을 부어 가열해야 밥이 되는 것처럼 식사 준비 때는 의례 국물음식을 만든다. 자동이다. 오히려 오늘은 뭘 먹을까 콧바람까지 힝힝거린다. 국물 요리를 만드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귀찮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외조모의 믿음은 틀렸다.
며칠 전 핸드폰 너머로 친구가 흐느꼈다. 순서대로 말하자면,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생각난 듯 울음이 터졌다. 친구도 나도 당황했다. 친구가 수화기 너머로 울음을 터트린 것은 첫사랑 놈이 바람피워 헤어진 사건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생과 초등생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친구는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배달음식은 맛있지만 아이들 건강에는 좋지 않다’, ‘아이들에게 식사 및 간식을 만들어 먹이는 것은 엄마의 의무이다’ 같은 것들이다.
대개 사고는 드문 것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며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평소 통행량이 많지 않던 길에서 우연히 자전거가 넘어졌는데, 마침 길이 빙판이라 달려오는 차가 멈춰 서지 못했다 같은 경우 말이다. 친구는 때마침 독감이 걸린 날, 방학이라 집에 있는 두 아들의 음식 및 간식을 준비해야 했는데 또 마침 가정적인 남편마저 일 년에 한 번 있는 동창회를 나가 버렸다.
자라고 해도 힘이 넘쳐 뛰어다니는 두 아들과 자정이 넘어 들어와 동창들의 안부를 전하는 남편에게 설명할 수 없는 화가 났다. 마침내 “그렇게 아팠으면 연락을 하지”라는 남편 말에 눈물이 터졌고, 그 말을 내게 전하며 다시 한번 흐느끼기 시작했다. 친구의 상처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논어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구절이 나온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친구에게는 고유한 ‘부모 다움’ 이란 것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부모 다움’이란 생각이 만들어져 정착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미 만들어진 생각을 최선을 다해 지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논어가 통용되던 시대에는 남녀는 일곱 살이 되면 같은 곳에 앉을 수 없었고, 부모가 물려주신 신체는 너무나 소중해서 머리카락도 자를 수 없었다. 친구가 가진 ‘부모 다움’은 논어의 시대와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진 생각이었을까.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인식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삶으로 한계가 없는 인식을 따른다면 위태로울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인식을 추구한다면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당연히, 마땅히,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몇 가지나 될까. 오히려 나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는 것이 곧 실패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상형대로 나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친구는 의사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강제 격리 차원의 입원을 했다. 나흘 동안 쉬고 나니(계속 잠만 잤다고 고백했다) 아이들과 놀고 싶은 생각도 나고 남편과 산책하고 싶은 바람도 생겼다고 했다. 당연한 것은 없다.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강요하는 순간 의도와 상관없는 폭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