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
2016년 말 사무실 분위기는 흉흉했다. 팀장인 주제에(?) 출근하면 있고, 퇴근할 때도 회사 어딘가에 남아있는 그분의 훈시 때문이었다. 팀원들은 오전 7시경 집합 전화를 받고, 8시에 모여 30여분에 걸친 훈계를 들었다(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다). “야근이 늘어나는 이유는 근무시간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며 그 결과 근태상황도 불량해지고 있다.”는 것이 내용이었다.
그 날 사무실은 종일토록 정적이 흘렀고 17시 30분이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튀긴 닭에 맥주를 들이켜는 동안 번갈아 카톡이 울렸지만 확인하는 사람은 없었고, 급기야 막내의 전화기가 몸을 떨기 시작했지만 곧 가방 속으로 사라졌다.
조용해진 핸드폰 대신 팀원들의 입은 활기차게 움직였다. ‘꼭 퇴근 직전 일을 던지는 사람이 누구냐’, ‘보고서 마무리 단계에 다른 얘기 추가 보강하라는 주문은 누가 넣는 것이냐’는 성토를 시작으로 ‘그래, 그간 야근으로 망가진 몸을 새해에는 복구하리라’, ‘정시에 퇴근해 운동을 하겠다’, '이번엔 다이어트 꼭 성공한다'는 다짐으로 결론이 났다. “내가 또 야근을 하면 이혼을 한다.”는 극성 발언은 “말이냐 엿이냐, 그냥 이혼해라.”라는 쏘아붙임 속에 사그라들었다.
조금 남은 치킨을 포장해 막내의 가방에 넣어주며, 2차를 가기 위해 가게를 나서던 그들의 눈에 띈 것은 [2016년 마지막 이벤트! 2명 신청하면 1명이 공짜]라고 적힌 헬스클럽 광고문이었다. 가게의 자동문이 닫히기도 전, 6명이 석 달 동안 헬스를 할 경우, 한 달 헬스비가 삼만 오천 원이며 그것은 즉 하루 1400원 꼴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우나 요금이 7000원이니 한 달 다섯 번만 가서 샤워를 해도 본전은 뽑을 수 있다는 누군가의 외침은 결심의 방점을 찍기에 충분했다.
야근 낙오자는 바로 다음날 나왔다. 화가 삭지 않은 나머지 직원들은 18시가 되기 전 사무실을 떠나며 낙오자 때문에 헬스장을 갈 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낙오자는 그들의 주장에 어이없어했지만, 나머지는 의리를 부르짖으며 아마도 근처 술집으로 사라졌다.
첫 헬스는 2017년이 시작되기 3일 전에 실시됐다. 이벤트의 특성상 2016년에 반드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등록과 상관없이 첫 시작일 로부터 3개월이 유효했다), 억지로 맞춘 날이었다.
2017년을 시작하고도 20여 일이 지난 오늘 출근길, 야근했음이 분명한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희미한 라면 냄새와 함께 탕비실에서 세어 나왔다.
“야, 헬스 갔냐?”
“아니, 옷은 싸 갖고 다녀.”
“우리 헬스장 락커가 몇 번이었지? 이천 몇 번이었는데…. 운동화 넣어 놓고 왔는데 곰팡이 폈겠다.”
“칠백 몇 번 아니었어? 난 괜찮아. 새 신발이라 방습제 그대로 넣어뒀거든.”
“한 달 다섯 번인데….. 이래서 헬스장이 돈을 버는구나.”
“그냥 돈 벌게 놔둘 수는 없지. 이번 달은 추우니까 안 되고, 다음 달에 14번 연속으로 빡빡빡가자. 그리고 이 구역 헬스장의 양아치가 되자!”
커피를 타서 나오며 그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 헬스장 가는 거야? 옷은 있다며?”
“마음의 준비가 되면……”
30일 전 그들의 분노는 눈 녹듯 사라졌고, 헬스장 입장권만 손에 남았다. 오늘도 야근은 이어질 것이고 건강은 돌보아지지 않을 것이다. 새해는 시작되었는데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잊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