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인생을 배울 일은 아니지만.

-오늘의 질문

by 지안

주위 사람들에게(부모나 친구) ‘사는 법’을 배울 때가 있다. 나와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노래 한 곡, 드라마 한 편에서 인생을 관통하는 ‘어떤 가르침’ 같은 것을 깨닫기도 한다.


‘초쿰은 겉멋이 들어있던’ 대학 1학년,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를 알려준 띵곡은 넥스트의 ‘아버지와 나’였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아주 심금을 울렸더랬다.


지금 그 가사를 다시 보면? 아마 고 신해철 씨도 이해해 주시겠지만, 귓불까지 붉어지는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다. 정말이지 딱 이십 대에서나 할 수 있는 소리이고, 쓸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와 비슷한 나이의 나로서는 ‘그 나이 즈음이 느낄 법한’ 감동과 깨달음을 명료한 언어로 빚어 주던 신해철 씨가 언제나 고마웠다(이제는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을 잃어서 문득문득 가슴이 아프다).



이런 식으로 뜻하지 않게, 아무에게서 인생에 대해 배우는 순간이 있다. 그러니까 야구.


때는 1982년, 적지 않은 아이들이 하늘색 점퍼나 남색 모자를 쓰고 등교하기 시작했다. 막 개점한 프로야구팀들이 어린이 회원을 모집한 후 나눠준 유니폼과 학용품 등등이었다. 서울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두 종류의 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주위에 있었을 뿐(하늘색 점퍼는 MBC 청룡이고, 남색 모자는 OB 베어스였다) 지방은 나름대로 지역 연고지팀의 특색 있는 옷을 입고 다녔을 것이다.


프로 야구 이전에도 야구는 인기 있었다. 나 역시 야구에 관한 룰은 고교야구를 보면서 배웠다. 요즘이라면 A매치 경기를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당시 고교 야구를 보면서 벌어지곤 했다. 동네 이곳저곳에서 같은 타이밍에 탄식과 환성이 울리는 일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1981년 경북고와 선린고의 경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경북고를 응원하는 것이 분명한 옆집의 환호에 밀리지 않기 위해 선린고가 점수를 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선린고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옆 집이 너무 시끄러워서 삐뚤어지겠다는 마음이었다). 선린고의 에이스 박노준이 치고, 던지는 대환장 파티를 하다 홈으로 들어오면서 복숭아뼈가 박살 나는 부상을 당해 실려 나갔는데, 이후 팀은 맥없이 무너졌다. 옆집의 환호성은 끝날 줄을 몰랐지만, 아마도 그 해를 기점으로 화려한 고교야구 전성기도 사그라졌다.


프로야구 선수 박노준은 고등학교 시절 뛰어났던 그 선수가 아니었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완전히 다른 판이었다. 부상 탓이었든 기량 때문이었든 돌아온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영광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그를 보며 배웠다.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에 관해서는 큰 다음에 이야기하자. 초등학생이 뭘 안다고. 그런데 뭘 좀 알았을 법한 부친도 프로야구만큼은 사랑했다. 외식이라고는 시켜준 적이 없고, 옷 한 벌을 살 때도 손을 떨던 부친이 기꺼이 야구장 입장권을 샀던 것을 보면 그 사랑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덕분에 나 역시 매우 어린 나이부터 야구장을 출입했다.


어느 해인가 맥 빠진 경기를 본 후(감독이 3-4회 즈음해서 경기를 포기했다. 점수차가 벌어지자 주전을 빼 버린 결과 어마 무시한 점수차로 졌다) 경기장을 빠져나오다 불타는 선수단 버스를 본 기억은 아직도 살벌한 충격이다. 열 받은 팬(혹은 팬들)이 선수단이 탑승할 버스에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내가 선수였다면 정신이 아득했을 것 같다. 그래 봐야 공놀이인데, 이거 무서워서 야구하겠나. 열 받은 관중의 마음은 일억 번 이해하지만(나라고 열 안 받았겠나. 그 자리에 있었는데…….) 공, 사 구분을 못하면 곧바로 범죄가 될 수 있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최근 10년 중 최악은 이종범 선수의 은퇴식이었다. 그의 활약상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장타자보다는 교타자, 발 빠른 선수를 선호하는 내 성향에 딱 들어맞는 선수였기에 정말 좋아했다(에… 그간 닥치고 응원했던 타자라면 김일권, 한대화, 홍현우, 이종범, 도루가 가능했던 몸매의 안치홍 등등이 있다).


‘프로’ 여서 실력과 돈이 치환되는 세계라지만, 특정 팀을 오래 응원하다 보면 단순히 주고받음만으로 끝나지 않는 애정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애정에 상응하는 ‘예의’와 ‘격식’이 있기를 바라게 된다. 이십 년 가까이 팀에서 뛰던 ‘프랜차이즈 선수’가 거의 ‘은퇴를 당하고’(그때 감독, 코치 역시 그 팀의 프랜차이즈 출신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둘이 싫다.), 은퇴 경기에서 마저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는 일은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어지는 일이었다. 아무리 경기장으로 날아들어오는 초유의 퍼포먼스를 해 준다고 해도 기괴하게 보일 뿐이었다.


물론 선수단 사정도 있었을 것이고 이런저런 변명 내지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건 당신들 사정이고, 오랜 세월 팀을 응원하던 팬의 입장에서는 애정 하는 선수가 은퇴 경기에서마저 배제되는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선수를 아는 것이 아닌지라 그의 인간성이랄까 사회생활의 문제 같은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순수한 팬의 입장에서 그의 은퇴식은 상식 이하였다. 회사에 아무리 충성해도 쓸모가 떨어지면 저런 대우를 받는 거다, 라는 강한 자각이 든 때가 바로 그의 은퇴식이었다.



예전에 응원하던 선수들의 자제들이 뛰는 것을 볼 때면 내가 늙었다는 것을 실감함과 동시에 이제 나도 은퇴의 수순에 접어들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면 그 따위 느긋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는 빠르고 강한 판단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키움의 ‘프랜차이즈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의 손자 이정후의 인터뷰를 보면서, 적어도 그 구단만큼은 이종범보다 훨씬 예의 있는 이별을 해 주기를 기원한다(그러나 요즘 거기도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그다지………).



몇 백억을 왔다 갔다 한다는 연봉 이야기에 입이 떡 벌어지고, 가끔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범죄 소식에는 아무리 연예인, 운동선수를 ‘공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나지만 정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경기를 보면서 “저 선수는 음주 운전 전력이 있고, 쟤는 약물로 정지 먹었었고, 저 선수는 학폭 쓰레기였고, 저 선수는 성폭행 전력이 있고…..”를 떠올리게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최근 구단 간의 실력차가 너무 현격해서 도무지 ‘프로’라고 부르기 애매한 실력을 보여주는 팀이 늘어난다. 이제는 범 프로야구적으로 반성 좀 해줬으면 좋겠다.


밤에 뉴스를 검색하다 김민호 코치의 아들인 한화의 김성훈 선수가 실족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 우리 코치님, 어쩌나. 한화와 경기할 때 누구 응원하느냐고 놀려먹는 소리를 듣기도 하셨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잠깐 아득한 마음이 되어 생각을 하다 이것저것 떠올라 적어보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오늘의 질문 :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나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청소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