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유리 테이블 위로 내려앉은 먼지가 거슬렸다. 유리를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 일인 것을 알았다면 애초에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기 있는 것으로 닦으면 지나간 대로 자국이 남는다. 그렇다고 마른 상태로 닦아내면 깨끗해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물걸레질 후에 다시 닦아내는 수고로움을 견뎌야 한다. 게으른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살림살이다. 그러니까 세상사 적이 문제가 아니다. 적도 문제지만, 모름지기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게으른 나에게 번번이 이중으로 닦아야 하는 테이블이라니, 툴툴대다 유리 아래 놓인 과자에 눈이 갔다.
마트에서 대용량으로 구입해 둔 과자였다. 두 개 묶음으로 되어 있는 것을 샀었는데, 카나페를 만들어 먹기도 좋고, 치즈만 발라서 와인 안주를 하기에도 그만이라 내내 애용했었다. 여름내 맥주를 들이켜다 보니 자연스럽게 짭조름한 땅콩을 안주로 삼거나 그도 아니면 오징어를 씹어 대느라 완전히 잊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펴보니 유통기간이 두어 달 지나 있었다. 이렇게 지옥이 열렸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뭔가 구입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일도 싫어한다. 오래 둘 수 있는 캔이나 저장식품류를 제외하고 넉넉히 구입하는 법은 거의 없다. 그런 의미로 과일조차 잘 사지 않는다. 스케줄을 곰곰이 따져 먹을 시간이 있겠다 싶을 때만 소량 구입한다. 적은 식구의 살림살이란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그런데 유통기간이 지난 과자가 눈이 띈 것이다. 이건 아니다. 결연히 일어나 과자를 처리하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선반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간식으로 먹으려고 사 뒀던 파이가 눈에 띄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개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깜빡했던 모양이다. 며칠인가 유통기간이 지나있었지만 못 본 척 회사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며칠쯤 문제없다, 내가 먹을 것인데 뭘. 다른 사람에게만 안 주면 된다. 내일의 나는 분명 허전하고 배고플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 처리하면 된다.
하루에 한 봉지씩 먹으리라 다짐했던 견과류 박스는 거의 일 년 전에 지나간 유통기간을 품고 절반 정도만 소비된 채 위선반에 처박혀 있었다. 건강에 신경 쓴다고 맛 생각 안 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나란 인간, 맛없으면 안 먹는 인간이었던 거다. 누가 볼 새라 서둘러 쓰레기봉투로 옮겨 담았다. 그 아래 선반에는 다이어트 차원에서 먹겠다고 구입해 놓은 무려 이탈리아제 과자가 1/4 정도 사라진 채 놓여있었다. 다이어트 음식이 맛있을 리가 없다. 음식이란 모름지기 짜고 달고 기름져야 하는 법.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선에서 마음을 다잡고 쓰레기봉투를 채웠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자 오래된 스틱형 수프가 눈이 들어왔다. 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가 남았던 모양이다. 손을 더듬어 잡히지 않자, 다 먹었다고 판단하고 새것을 사 먹은 것이다. 그런 수프가 세 개 더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갈 곳은 정해져 있다. 나 왜 이러니.
아래 서랍장으로 내려오자 언제 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옥수수 가루와 호밀 가루가 있었다. 몇 번인가 빵을 굽고 내팽개쳐 둔 것이다. 분명 귀찮아진 것이겠지. 안 봐도 뻔하다. 그렇지만 세계에는 아직도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단 말이다.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유통기간이 엄청나게 지난 가루들을 쓰레기 봉지에 부었다. 제법 무게가 느껴졌다.
떨어진 가루를 정리하느라 거실까지 한바탕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한 후 다짐했다. 이제 어디 가서 먹거리 버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은 하지 말자고. 좀 더 쇼핑할 때 철저해지자고. 그러다 문득 이게 끝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 집안을 뒤져서 절반 먹은 영양제와 한 두 번 먹은 것으로 보이는 다이어트 셰이크를 찾았을 때는 반성문을 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냉장고 서랍 안에서 날아다니는 회색 곰팡이를 품은 마 두 개와 흰 곰팡이가 잔뜩 핀, 모친이 작년 언젠가 해 주신 열무김치가 나왔을 때는 할 말을 잃었다. 나란 사람,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과 ‘남이 보는 나’라는 사람 사이에는 이 음식물 쓰레기만큼의 거리가 있을 것이다(봉투 안에는 상당한 양이 쌓였다). 나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내가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보는 편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나란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
잠시 좌절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옷장을 뒤졌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리자’가 나의 쇼핑 모토였다. 좁은 집에 물건을 무작정 늘렸다가는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설마 했지만 역시였다. 절대로 다시 입을 수 없을 사이즈의 옷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아하, 내가 이탈리아제 과자를 사고, 다이어트 셰이크를 사 댄 원인이 너희들이었구나. 하지만 결국 나는 모든 것에 실패했구나. 오호통재라.
무거운 마음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재활용 수거함에 옷을 넣고 좌절한 채 터덜터덜 돌아왔다. ‘깔끔한 미니멀리즘을 선호하는 알뜰한 나’는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 현실의 나는 ‘덤벙대고 띄엄띄엄하고 치매에 가까울 정도로 까먹기 잘하는 맥시멀 리스트’였던 거다.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른다, 이만큼 살았는데도. 정말이지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도 되는지, 저는 제가 너무 걱정됩니다.
오늘의 조언 : 지금 슬쩍 주위를 돌아보세요. 유통기간 지난 물건이 있는지. 저만 이랬던 것이겠죠? 제 문제겠죠?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