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은 안티 에이징 화장품이나 피부과 원장님과 상의한다고 치고(안 해봐서 결과는 모르겠지만), 흰머리는 셀프 염색이나 미용실 원장님의 조언을 듣고(이것은 늘 하고 있는데 매우 귀찮습니다), 편견은…… 편견은 어떻게 해야 할까.
‘편견’. 다른 말로 하면 ‘선입견’, 다르게 표현하면 ‘몇 번의 비슷한 경험 후 늘 동일한 결과가 추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있던 시간이 길수록, 경험이 많아질수록 편견이 쌓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매번 비슷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기대를 하고 마음을 주어서야 감정의 소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내게도 편견이 있고(아니지, 많고!), 그것이 현실을 살아내는 것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는 그랬다.
며칠 전의 아침, 사무실은 조용했다. 함께 근무하는 이십 대 초반의 남자 직원이 말없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졸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하여튼 평소보다 매우 조용했다. 이럴 때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은 ‘사회생활’의 기본에 속한다. 물론 대답은 신통치 않을 것이다. 그는 이십 대 초반이란 말이다. 게다가 남자아이다. 나에게 자신의 개인사를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사회생활’을 한단 말인가.
“뭐 일 있어요? 표정이 별로야.”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이 쏟아져 나왔다. 어제 여자 친구와 전화로 싸우기 시작해서 밤을 새웠다고 했다. 과연 전화로 싸우며 밤을 새우는 일이 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꿀꺽 넘겨버렸다. 그 정도라면 뛰어나가 멱살을 잡는 것이 더 편하지 않았겠냐는 말도 참았다. 묻지도 않았지만 그는 여자 친구가 지방에 있어서 전화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사정까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랬구나, 대답을 듣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이유였구나.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폭풍 같은 대답이 몇 십분 이어졌고, ‘그래서 헤어졌어요. ’를 끝으로 그는 좀 전보다 더 낭패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떨궜다.
싸운 후 ‘헤어지자’고 선언한 사람들이 말 대로 다 했으면, 거리에 커플이란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는 안 했다. 이삼일 후면 화해하고 잘 지낼 텐데 그때 나에게 자랑하기에 쪽팔릴 테니 1절만 하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너무 꼰대 같잖아!
대신, 최대한 안타까움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어우, 어떻게 해. 퇴근하고 소주라도 한 잔 할래요?’
이십 대의 남자아이다. 지구가 멸망할 정도로 상심했다고 해도 퇴근 후 나와 마주 앉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부서 회식이라면 모를까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하겠는가. 답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의 슬픔에 동감하여 아픔을 삭일 수 있는 자리를 제안하는 마음 넓은 직장 선배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늘어나는 것은 눈치와 타이밍뿐이다.
“네, 몇 시쯤 뵐까요? 저도 바로 퇴근할 건데요.”
투 스트라이크. 나는 더듬더듬 일정표를 확인하고 약속시간을 잡았다.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고, 간단히 대답한 그가 서둘러 뛰어나갔다.
퇴근이 일렀던 것인지, 사장님의 출근이 늦었던 것인지 들어선 고깃집은 청소로 분주했다. 환갑은 훌쩍 넘어 보이는 사장님이 테이블 닦던 손을 앞치마로 몇 번 훔쳐내더니 물이며 밑반찬을 가져다주었다. 주문을 하고 고기가 올 때까지 그와 나는 별 말이 없었다. 매우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과 나이, 하는 일 정도였다. 일 년을 넘게 함께 일했지만 전혀 정보가 없었다. 아, 여자 친구와 방금 헤어졌구나! 꺼낼 주제는 그것뿐이다. 연애상담이라면 자신 있다. 내 귀를 지나간 연애사가 어디 한두 개란 말인가.
“그래서 톡이라도 해봤어요?”
불판에 고기를 올리며 물었다. 태풍 전의 맑은 하늘과 같은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고기를 채 뒤집기도 전에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덕분에 소주를 한 병 비우기 전에 두 사람이 언제 만났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다음 소주가 비워지기 전에 그들 앞에 닥친 난관까지 모두 꿰뚫어야 했다. 세 병째 소주의 반 정도를 비운 후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연애상담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반복되어 리메이크되는 노래였다. 물론 리메이크되자면 명곡이어야 하고, 당연히 좋은 노래여야 하지만, 내게는 너무 많은 가수가 불러 지겨워진 노래일 뿐이었다. 그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나는 그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그의 말에 적당한 추임새를 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집중해야 했다. 충고조차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스토리의 끝은 다시 만나는 해피엔딩일 텐데 덧붙이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삼일 지난 점심시간, 일이 늦어 뒤늦게 식사하는 자리로 갔을 때, 핸드폰을 보며 떠들던 직원 중 하나가 내게도 그 사진을 내밀었다. 새로 나온 앱으로 찍은 커플의 엽기 사진이었다. 20대의 남직원은 맞은편에서 머쓱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이 앱 뭐야? 신기하네, 사진 재밌다. 둘이 엄청 잘 어울려.”
내가 그를 보며 웃자 그가 손사래를 쳤다. 자, 하나는 맞았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돌솥 밑바닥은 누룽지가 되어 있었다. 숟가락에 힘을 주어 비빔밥을 비비면서 생각했다. 네 개 중에 하나 맞았다. 2할 5푼. 이래서는 FA도 안 된다. 이래서야 이 편견들을 믿고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아, 이 나이에도 안 맞는 일이 이렇게나 많으니, 내가 정말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