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미치는 한 모친의 머리카락이 자연색이었던 적은 없었다. 나를 낳고 얼마 후 갑상선 이상 진단을 받고 이후 제거 수술을 받을 때까지 꾸준히 복용했던 약 때문이라고 본인은 주장하셨다. 아주 어릴 적, 짙은 갈색 병에서 조심조심 작은 알약을 꺼내 삼키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얼마나 약이 독했던지 복용 후 곧 머리가 하얘졌다는 주장이었다.
반박할 물증이 없었다면 좋았겠으나 생리학적인 증거가 있었다. 십 대부터 새치머리가 나기 시작한 나 말이다. 친구들의 타박과 함께 한 올 한 올 뽑혀가던 흰머리를 감당할 수가 없어 염색을 시작한 것이 이십 대 후반이다. 그러니까 유전학적인 관점에서 모친의 흰머리는 갑상선 약의 부작용이라기보다는 불행한 신체적 특성이었을 확률이 높다. 이제는 모친도 제법 수긍하시는 분위기다.
반세기 이어져 오던 염색을 석 달 전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단하셨다. 시작은 본인의 결단이었다. 미용실 사장님들의 한숨을 끌어내는 독한 곱슬에다 일찌감치 하얘진 머리카락이긴 했지만 숱만큼은 풍성했었는데, 1~2년 전부터 부분 탈모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정수리 위쪽 오십 원 동전 만하게 빠지던 부분은 어느덧 바람이 불면 보일 정도로 커져 있었다. 민머리냐 흰머리냐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은 비교적 간단했다.
그리고 한 달 전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이번엔 타의로 염색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왼쪽 눈, 그다음 오른쪽 눈, 이런 식으로 한 달 간격으로 수술할 것이고, 수술마다 한 달 동안 염색 금지였다. 어려운 계산도 아니다. 두 달 동안 염색 금지라는 소리다.
평소보다 조금 짧게 머리를 잘라내고 보니 앞머리 길이의 반은 검은색, 반은 흰색인 상태가 되었다. 설명하자면 흰머리 위에 검은 머리가 삐뚤삐뚤 얹힌 모양새다. 가장 지저분한 상태지만 해결 방법은 없었고, 다음 주 예약된 백내장 수술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염색을 하나의 ‘선택’ 사항으로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모친의 상황은 그렇다.
엊그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식당에서도 차 안에서도 모자를 눌러쓰고 계시던 모친이 숙소에 도착해서야 짧은 머리카락을 드러낸 모습이 되었다.
“네가 보기에도 많이 이상해? 아주 말들이 많아. 처음엔 늙어 보인다고, 왜 염색을 안 하냐고 하더니, 이제는 어디 아픈 것이 아니냐며 수군거려. 정말 아픈 것일까 봐 나한테는 말도 못 하고 옆사람한테 물어본다는데, 우습기도 하고.”
좀 지저분하긴 했지만 이상할 정도는 아니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은데, 뭘. 늙어 보이는 것이 아니고, 제 나이에 맞게 보이는 거라고 말해주지 그랬어요?”
“딱 그렇게 말했지. 늙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늙은 거라고.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80 되면 그렇게 하고 다니고, 지금은 늙어 보이니까 염색 하래.”
“77이랑 80이랑 엄청 차이 나는 거야, 지금?”
“그러게.”
일주일에 다섯 번, 거의 출근 도장을 찍는 중인 성당에 나갈 때마다 지청구를 듣는 것도 보통일은 아닐 터였다. 좋은 소리도 한두 번 아닌가.
“다시 염색해 드릴까? 눈에 영향 적게 뒤쪽 만이라도 살짝?”
“뭘, 그렇게까지. 눈에도 안 좋다는데. 한 달 있다 생각해보자.”
모친의 사정은 비슷한 유전적 형질을 소유한 내가 안다. 보름이면 앞, 옆 쪽을 위주로 흰머리가 드러난다. 부분적으로 손대지 않을 수 없다. 한 달이면 전체적으로 손을 봐야 하는데, 한 달에 두 번 이상 머리에 공력을 들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나도 벌써 지겨워진 지 오래다. 모친의 경우는 50년이다. 보통일이 아니다.
회사에 사분의 삼쯤 민머리인 선배가 있다. 미용실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가발을 쓰는 것도 귀찮아라 해서 그럴 거면 아예 서양식으로 삭발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야, 내가 그렇게 하고 오면 당장 불려 가서 ‘회사에 불만 있냐?’는 소리 들을 거다.”
회사에 대한 선배의 불만은 내가 가진 것에 비하면 멸균 상자 속 먼지만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말에 관해서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남을 회사다.
오늘도 출근 전 거울을 봤다. 염색한 지 일주일쯤 지난 머리는 아래쪽이 벌써 하얗다. 귀 뒤로 머리를 넘기지 말아야 하나 생각하고 이리저리 빗질을 하다 그것 또한 뾰족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가면 다음 주 정도에는 ‘귀찮아’를 연발하며 붓질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버려 두면 모친처럼 흰머리와 검은 머리가 절반 정도 섞인 지저분한 상태가 되었다가 곧 흰머리 천국이 되겠지.
인간의 치아는 아무 관리도 안 했을 경우 삼십 년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어디선가 들은 소리다. 틀렸을 수도 있어요~). 위생과 치과 기술의 발전이 치아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외모도 끊임없이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60이 도래했음을 ‘잔치’를 벌여 축하하던 시대에 비하면 확실히 수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것이 ‘최선’일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누구’를 위한 관리이며, ‘무엇’을 위한 ‘가꿈’인가? 이 상황이 불편한 것은 나만의 문제인가? 정말이지 이 나이에도 모르겠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