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계획 따위 어디 쓸데가 있다고!

-오늘의 조언

by 지안

12월 말, 그러니까 딱 요즘 시기가 되면 하는 일이 있다. ‘다이어리 정리’


긴 설명 필요 없이 옛날 사람인 나는 아마도 고등학생 즈음부터 다이어리를 사용했던 것 같다. 짧은 일기장 대용이었던 적도 있고, 읽은 책의 감상문이나 마음에 드는 구절을 잠시라도 담아두는 쓰임이었던 해도 있다. 덕지덕지 스티커 천국을 구현하던 때도 있었고, 지금 봐서는 도대체 뭘 주장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는 울분과 열 받음의 배설구였던 적도 있다.


지금은? 도무지 숫자라면 기억하려 들지 않는 머리를 대신해 사회생활을 버티게 해 주는 든든한 보조자다. 오늘 내가 한 일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지인들의 생일을 기입하고, 통관 번호나 일련번호로 된 ID 같은 것을 빼곡히 옮겨 적었다. 디지털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 밑그림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하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가 거듭될수록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든다. 생일을 기억해야 할 지인들의 숫자는 많이 줄어들었고, 반드시 알고 있어야 했던 기록들도 꽤 사라졌다. 졸업하면서 안 만나게 된 친구, 결혼하면서 연락이 끊긴 친구, 아이 낳고 얼굴 본지 만년 된 친구 등등의 생일은 기입하지 않는다. 잊을 만하면 어딘가에 제출해야 했던 ‘호적’ 관련 서류는 없어진 지 오래라 쓸데없이 기억해야 했던 본적지 주소 같은 것도 안 옮긴 지 오래다. 정리하자면 ‘다이어리 정리’라는 동일한 과정도 시간에 따라 조금씩은 속성이 변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이 시간에 ‘새해 계획 수립’ 같은 것을 끼워 넣기도 했었다. 원대했던 적도 있고 소박한 꿈을 꾼 적도 있다. ‘다이어트’가 전자의 계획이었다면, ‘회사에서 버티기’는 후자에 속했다. 아니, 그 반대였을 수도 있다. ‘새해 계획’이라는 말이 되었든 ‘버킷리스트’라는 용어가 되었든 그런 것들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는 말이다. 내 기억에 모든 상황은 아이를 키우면서 끝났다.


성인이 된 아이를 둔 입장으로서 하는 말인데, 자식을 키운다는 건 무엇을 상상했던 그 이상의 일이 될 확률이 높다. 외출할 일이 없으면 세수조차 안 하는 게으른 사람도 자식이 생기면 부지런해진다. 나의 지저분함은 주위의 짜증에서 끝나지만, 아이의 지저분함은 질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 삶을 타인의 것과 비교하지 않던 사람도 자식이 생기면 끊임없이 집 주위를 신경 쓰는 미어캣처럼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아싸인 나는 내가 책임지면 되지만, 아이의 사회성이나 사교성이 나 때문에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부모의 24시간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니고, 계획한다고 그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나 역시 그즈음부터 ‘새해 계획’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하루 3-4시간씩 아이의 눈치를 보며 쪽잠을 자는 마당에 ‘계획’은 너무 거창했다. 내 기억 중 가장 마지막에 품었던 소망은 아이가 서너 살이 되기 전이었는데, ‘내가 청소할 필요 없는 깨끗한 곳에서 깰 때까지 자는 것’이었다. 물론 이제 다 지난 일이다. 딸은 나 없이도 잘 먹고, 씻고, 잔다. 오히려 내가 없을 때 더 잘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다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다이어리 정리’를 하고, ‘새해 계획’을 설계할 수 있는 시기가 돌아왔다. 문제는 아이가 자란 만큼 나도 변했다는 것이다. 희망을 계획으로 옮기는 일의 허망함을 알 만한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면 ‘금주’. 하도 반복해서 이제는 주위의 아무도 믿지 않는 허망한 목표의 대명사. 비슷한 말로는 ‘금연’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다이어트’ 같은 것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대신 모친이 들려주시는 ‘나잇살’ 타령이나, 몸 좋은 트레이너들이 알려주는 ‘중년의 기초 대사량 저하’ 같은 문구로 갈음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더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무 계획이 없다. 은퇴 후의 삶이나 노후의 일 같은 것은 떠올리지 않는다. 정직하게 말하면 ‘떠올리지 못’한다. 24년 전 내가 입사할 때는 56세가 정년이었다. 지금은 60세가 정년이 되었고, 그 보다 한참 전에 명예퇴직이건 희망퇴직이건 자의 2, 타의 8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즉 내일 일을 오늘 밤까지도 알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당연히 계획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



이제 1년 단위로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 단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코 앞의 시간을 사용할 뿐이다. 1주일에 한 편은 브런치 글을 연재하겠다는 목표는 새해 계획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수행 중이고, 그보다 나은 글쓰기를 위해 10주짜리 과정에 등록했다. '바빠지면 술 마실 시간이 줄어 ‘금주’ 효과가 있으리라 작은 희망을 가져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내 말을 들은 딸이 '택도 없는 소리'라고 중얼거리며 휘휘 고개를 젓는다. 날 닮아 뼈 때리는 말만 골라하는 사람 같으니라고, 쯧.


거창한 새해 계획도 좋지만 TPO에 맞지 않는 계획을 세운 후 좌절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슬픈 결말이다. 지금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제, 11월 말 수술을 받아 ‘금주’ 중인 술친구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의사가 지정했던 2달 금주기간이 슬슬 끝나가니 1월 술 약속을 잡자는 말이었다. ‘나이도 나이니만큼 이 참에 금주 같은 것을 선언할 계획’을 좀 잡아보라고 조언하자, ‘무릇 인간이란 안 하던 짓을 하면 큰 화를 당한다’는 정중한 대꾸가 돌아왔다. 그렇다. 자신을 제대로 아는 일이 계획을 잡는 것에도 중요한 첫걸음이다.


-오늘의 조언 : 새해 계획을 세운다면, 목표는 실현 가능한 선에서 하세요. 그래야 2020년 12월에 조금이라도 뿌듯한 나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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