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을 봤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나의 최애 영화 리스트' 중 상단에 위치한다(<베트맨 시리즈>나 <인썸니아>도 들어 있다). 이미 '편애하는' 마음을 깔고 본 것이니, 이번 영화도 당연히 '좋았다'. 물론 전작인 <인터스텔라>나 <인셉션>처럼 깊게 이야기하자고 들면 끝없이 떠들거리가(나 말고 물리학자가) 있는 영화지만, 평균적인 지적 수준인 데다가 하물며 문송인 내 입장으로서는 전투씬이나 추격씬, 결투씬 만으로 충분히 입이 벌어졌다. (개인적으로 최애는 프리포트에서 주인공 결투씬!)
양자역학은 전공자도 다 '이해할 수 없어서', '입 닥치고 그냥 계산하라(Shut up and Calculate)'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김상욱 교수가 알려줬기 때문에 양자 얽힘이나 끈이론을 모른다고 부끄럽지는 않다(어쩔 수 없잖아요?). 게다가 나란 사람,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된 물리학 지식이 마음에 들어 그 영화가 좋았던 것이 아니다. 딱 하나, 블랙홀을 표현한 장면에 홀딱 빠져서 기둥 줄거리가 무엇인지 어디가 말이 되고 안 되는 것인지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다, 나는 뭐 하나에 꽂히면 훅 빠져 버리는경향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블랙홀은 환상이었다. 그 옆의 귀여운 토성이라니......
후배에게 <테넷>을 추천하며 말했다.
"전부 이해 못하면 어때? <터미네이터>도 좋다고 했었잖아. 이 영화, 그냥 생각 없이 봐도 아주 스펙터클 하단 말이야."
5편이나 제작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처음은 지도자 '존 코너'를 없애기 위해 미래에서 파견된 기계인간인 '터미네이터'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존 코너의 어머니를 죽이러 온 것이다(어머니가 죽으면 존 코너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니 미래도 없다!) 그렇게 되어서는 존 코너로서는 상당히 난감하다. 부랴부랴 어머니를 구할 사람을 급파한다.
두 사람, 어머니인 사라와 그녀를 지키기 위해 파견된 남자 카일은 당연히 사랑에 빠진다. 즉 존 코너의 아버지는 카일이다, 그런데 이 분은 사라를 구하다가 결국 전사하게 되고...... 뭐 이런 얘기다(하다 보니 너무 스포인가요? 옛날 영화니 좀 봐주세요)
<테넷>의 대사를 빌리자면 '아버지의 역설'쯤 된다.
당시 이 설정이 말이 안 된다, 된다 하는 얘기는 1 정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99는 터미네이터로 등장한 아놀드 슈왈제네거였다. 정치적으로도 성공해서 주지사까지 된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전설은 이 영화부터 시작된다.
후배는 내 뜻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그런데 터미네이터가 뭐예요?"
그랬다. 이 영화 무려 1984년에 만들어진 영화였다. 후배는 1992년생이다. 미안, 너도 아는 줄 알고.....
며칠 전 사무실에서 내 자리까지 뛰어온 선배가 물었다.
"너 버짐 알지?"
"피부 허옇게 되는 거? 그걸 왜 몰라?"
"아니, 애들은 몰라. 마스크 때문에 버짐 안 생기려면 가끔이라도 환기를 해줘야 한다고 했더니, 그게 뭐냐고 묻더라고?"
선배가 뛰어 온 방향에는 30대 초반의 직원이 동그래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시 물어 줘. 나도 모른다고 할래."
"배신자."
공기처럼 당연한 지식을 '상식'이라고 부른다고 하자. 이 상식에 유통기간이 있을까? 있다면 얼마일까? 혹은 세대별로 공유되는 상식이 다를까? 세대가 달라지면 <테넷>의 주인공처럼 다른 공기를 호흡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모르는 세대는 전혀 다른 상식을 공유하기도 할까?
몇 년 전 '속담 맞추는 게임'을 하는 예능프로를 본 적이 있다. 상상도 못한 어마어마한 오답들이 쏟아져 나왔다. 예를 들면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라는 속담의 오답은 "어물전 망신은 개망신'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물전'이라는 말은 사어, 즉 '죽은 말'에 가깝다. '생선가게'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무릇 생선이란 마켓의 'FISH 코너'에서 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지. 그러니 그 속담을 몰라 "어물전 망신은 개망신"이라고 했다고 해서 그리 탓할 일은 아니다.세대 사이에깊고 넓은 협곡이 누워 있는 느낌이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라는 말은 어떻게 변형해야 이해가 될까요? 뭔가 마트나 이런 장소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