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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Sep 08. 2020

당신의 타임캡슐

- 오늘의 질문

기념을 위해(뭘 기념하는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몇 혹은 수십, 수백 명의 물건을 모아 ‘타임캡슐’이라는 이름으로 땅에 묻는 행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새로 생긴 관광지 근처라면 대충 하나쯤 묻혀 있다고 봐도 된다. 


기사를 보면서 ‘이런 형태의 타임캡슐에 던져 넣는 물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소중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나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유명 관광지라고 해야 갓 조성된 곳이니 추억을 담은 물건이 있을 리도 없다. 혹시 뚜껑이 열렸을 때 내 물건만 너무 초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다시 만날 일 없는 물건이라는 생각으로 버리는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투자만 하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지. 어떤 물건을 그곳에 넣었을지 나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팝아트로 유명했던 앤디 워홀은 수백 개의 타임캡슐을 만들었던 것으로 유명하다(땅에 묻은 것은 아니고, 물건을 넣은 상자에 TC, 그러니까 Time Capsul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안에는 사진, 팬레터, 본인의 발톱, 캠벨 수프 깡통, 문구류, 사용한 콘돔, 클라크 케이블의 구두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앤디 워홀이 사망한 후 타임캡슐을 여는 특권은 3만 달러 정도에 거래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죽은 후에는 그의 뇌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데, 그것에 비하면 소장품을 구경하고 싶은 팬이 돈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은 조금 안심이 된다. 앤디 워홀의 사후 세계가 훨씬 안락하고 편안하겠다는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사용한 콘돔을 확인하는 비용에 3만 달러라면 앤디 워홀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다(하하 농담입니다). 


말하자면 앤디 워홀의 타임캡슐에는 그가 좋아한 것, 그에게 영감을 준 것, 그를 나타내는 것들 것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내 타임캡슐에는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 아, 물론 팔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다이어리를 넣으면 될까? 곤란하다. 몇 년치 다이어리를 보관 중이지만, 단지 쓰레기통에 버리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어딘가 쓸모 있는 불구덩이를 만난다면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던질 수 있다. 글씨는 조잡하고 내용은 누가 볼까 무섭다. 그런 것을 뒷날을 위해 남기는 것은 옳지 않다. 


좋아하는  소설책을 넣으면 될까? 이것도 조금 곤란하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은 책은 이미 누렇게 변해서 가끔 꺼내 보는 나조차도 살금살금 다루고 있다. 출판계를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타임캡슐에 넣는다고 해도 누군가 열 때까지 딱히 살아남을 것 같지 않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넣으면 될까? 흠. 난처한 문제다. 일단 ‘마음에 드는 사진’이란 것이 없다. 나는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도 거의 풍경사진이다. 그래도………내 얼굴이 나온 사진보다는……… 풍경 사진이 나을 것도 같다. 그렇다면 괜찮은 사진을 몇 장 인화해서 넣기로 하자!



군데군데 얼룩지고 국물도 묻어 있는 요리책은 괜찮을 것 같다. 컬러판이라 소설책보다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이십 년쯤 모아 놓은 레시피며, 덧붙인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이 정도라면 과거의 음식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가치 있을 것이다. 


음반도 하나쯤 들어가야 한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팔 할이 음악이다, 정도는 아니지만 평생 줄기차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들국화가 좋을까, 신해철을 골라야 할까. 아니면 비틀스로 가야 하나? RHCP를 선택해야 하나? 차라리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DVD를 넣는 것이 좋을까? 음악도 넘치는 데다 재능 많은 인간이라도 국가나 시대 같은 것을 잘못 만나면 몹시 힘들 수 있다는 깨달음도 덤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우리말로 된 음반을 고르고 싶다. 다시 들국화와 신해철로 돌아간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정도는 넣어도 될 것 같다. 한 인간이 얼마나 바보 같은 과정을 거쳐서 글 한 편을 완성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영감을 준 것은 많지 않다. 흔한 연애편지 하나 없고, 잊지 못할 첫사랑의 추억 같은 것도 없다. 재미없는 인생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다들 그렇지 않나요? 인생이라는 것, 생각해 보면 다 소소하고 자잘한 일들의 연속 아니었습니까? 나만 그런 것일까 생각하는 내가 조금 걱정은 되지만 말입니다. 


-  오늘의 질문 :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무엇을 넣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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