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37년 소비에트 공화국

-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

by 지안

1.1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스탈린의 거대한 초상화다. 왕의 그림처럼 젠 채 하거나 장군의 얼굴처럼 근엄하지 않다. 당당하고 평온한, 마치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 당연한 표정이다. 스탈린의 시선이 무대를 향하고 있는지 객석을 바라보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꿰뚫어 보는 느낌이다. 관객들도, 곧 있으면 출연할 배우들도 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갑갑한 마음이 든다. 애써 초상화에서 시선을 돌리며 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무대는 소파와 식탁이 놓인 거실이다. 무대 깊숙한 곳에 피아노가 있고, 테이블 위에는 고급스러운 식기들과 촛대가 놓여 있다. 근사한 파티가 준비된 것 같다. 무대 한쪽에는 배우들만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있고, 정면에는 현관문이 달려 있다.


조명이 켜지고 누군가가 무대로 나와 노래를 부른다. 어두운 그림자들이 함께 나와 연주하고 춤을 춘다.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발이 움직일 만큼 신나는 노래다. 흥겨운 박자에 그렇지 못한 가사가 이어진다.


“누군가가 찾아왔어. 노크 노크 노크. 저 문을 여는 순간, 파티는 끝나지.”


누구일까? 집주인? 곧이어 외침이 들린다.


“엔카베데(NKVD)다, 문 열어”


무대의 시간은 1937년 12월 31일로 뒷걸음질 친다.



밤 11시 30분경 한 여자(우먼)가 불안하게 거실을 서성인다. 한밤중이지만 옆집이 시끄럽기 때문이다. 비밀경찰 NKVD 요원들이 옆 집 남자를 체포하고 그 때문에 누군가는 울부짖는다. 여자는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창 밖을 훔쳐본다. 초조하게 거실 안을 서성인다. 시간을 확인한다.


여자는 남편(맨)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는 사이인 부부는 신년을 맞아 둘만의 조촐한 파티를 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새 해를 30분 밖에 남겨 놓지 않은 지금까지도 남편은 소식이 없다.


불안하게 서성이는 사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다.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곧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쾅 쾅 쾅’ 마침내 비지터가 부부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11시 50분에 멈춰 선 시계는 움직일 줄 모른다.


스탈린과 부부, 그리고 비지터 외에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콘트라베이스 등의 악기를 연주한다. 그들은 연주자일 뿐 아니라 노래와 연기도 하는 배우들이다(이들이 ‘액터 뮤지션’들이다). 이들은 입을 다문 채 맨과 우먼의 노래에 반주를 해 주기도 하지만 코러스가 되어 극 전체를 끌고 나가기도 한다. 눈 주위를 검게 분장한 그들은 ‘인간’과 ‘유령’ 사이의 존재들로 극의 흐름에 따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자, 설명은 끝났다. 이제는 맨과 우먼이 비지터의 손짓에 따라 비밀을 폭로하고 운명을 휘저어 버리는 것처럼 관객들도 그들이 노래를 들으며 ‘암울한 공포의 시대’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야 한다.


살기 위해 누군가를 고발해야 하는 시대, 자신의 결백을 타인에 대한 모함으로 증명하는 시대,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내가 언제 남을 배신할지 알 수 없는 시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고 싶고, 안고 싶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지만, 과연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우리 안의 나약함과 양심이 다툰다면 대체 어떤 것이 승리를 거두게 될까? 100분의 뮤지컬이 묻는 것은 이런 거대한 질문들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옐친 아판디예프(Elchin Afandiyev)의 희곡 [Citizens of Hell]이다. 옐친 아판디예프는 아제르바이잔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부총리까지 지낸 거물급 정치가다. 그가 쓴 100여 권의 책 중 [Citizens of Hell]이 영국에서 각색되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두 가지 버전(미드나잇 앤틀러스, 미드나잇 엑터 뮤지션)으로 만들어진 작품 모두 우리나라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2018년 각각 초연되었고 이후로도 몇 번이고 반복되어 공연되는 작품이다. 그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와 비지터를 둘러싼 비밀과 갈등도 매력적이지만 노래들도 귀에 붙는다. 주연 배우들뿐 아니라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액터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무대가 다음 무대, 다음 공연을 기다리게 만든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많은 배우들이 이 작품을 거쳐갔다.




스탈린의 초상화가 말없이 설명하듯 이 무대의 지리적 위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즉 ‘소련’이다.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던 아제르바이잔의 어느 가정일 것이다. 시간은 1937년에서 1938년으로 넘어가는 때다.


21세기에서 바라보자면 20세기 초,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먼 소련(이제는 ‘소련’이라는 이름마저도 사라졌다. 1991년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은 해체되고 ‘러시아’와 다른 독립국들로 나뉘었다)에서 벌어진 일이니 흥미가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비밀경찰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우리 역사에서도 낯설지 않다.

줄여서 ‘중정’이라고 표현하는 중앙정보부나 ‘프락치’라는 표현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을 향해 총을 들었던 사람들은 군인들이었다. 군대를 동원해 막강한 폭력으로 자국민을 탄압한 일은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원작이 있기 때문인지 뮤지컬의 구성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탄탄하다. 무대가 조금 좁아서 춤추는 배우들의 동선이 걱정됐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나무랄 것이 없었다. 배우들이 연주까지 하는 모습도 신선했다. 무겁고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이 뮤지컬까지 축 처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납득할만한 반전으로 몰입감을 준 것에 더해 귀에 박히는 멜로디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100분이 지나가고 나면 벌떡 일어서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당신은 극장을 나오며 ‘역사책에나 존재하지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야’라고 안심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그의 책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말했듯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희극으로. 누군가에게 권력이 집중되거나 과도한 권력을 쥐어 주게 되면 그것은 곧장 그의 욕망을 실현하는 무기로 변할 가능성이 많다. 일단 무기를 쥔 자를 막아서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구라도 너무 큰 권력을 쥘 수 없도록 감시하고 조정해야 한다. ‘비지터’의 방문을 두려워하는 시대에 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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