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미드나잇 액터 뮤지션]이 바라본 역사

스탈린과 비밀경찰,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회

by 지안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비지터”는 자신이 엔카베데(NKVD, 내부인민위원회) 소속임을 밝힌다.


NKVD는 1934년 스탈린이 “지도급 간부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키면서 만들어졌다. ‘보호’라는 말을 ‘감시’로 바꾸면 스탈린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다. 당시의 NKVD는 지도급 인사들의 감시를 주 업무로 삼았다. 뮤지컬 속 맨의 직업이 공산당 간부였으므로 당연히 NKVD의 감사 대상이었다.


가만, 이 작품의 배경은 아제르바이잔이다. 지금은 독립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 소련의 NKVD가 들이닥친 이유는 뭘까. 이것을 알기 위해 시계를 1991년 이전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흑해(Black Sea)와 카스피해(Caspian Sea) 사이 코카서스 산맥이 펼쳐진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위로는 러시아, 아래로는 이란, 왼쪽으로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이다). 조지아, 아르메니아와 함께 ‘코카서스 3국’으로 묶이곤 해서 세 나라의 사이가 괜찮을 것 같아 보이지만, 2020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국경 분쟁을 넘어선 전쟁을 벌이며 전 세계의 근심을 사고 있다.


21세기에만 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니다. 아제르바이잔의 땅에서는 숱한 전쟁이 있었다. 기원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을 장악했다는 기록이 있고, 페르시아와 로마, 비잔틴 제국도 이곳을 거쳐갔다.


11세기 중반 셀주크 투루크의 점령 후 아제르바이잔 전역에 이슬람교가 퍼진다(현재 교전 중인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국가다. 종교적 차이도 두 나라 전쟁의 원인 중 하나다.) 몽고를 거쳐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이 땅은 1813년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과 볼셰비키 혁명으로 혼란했던 1918년, 아제르바이잔은 잠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1920년 상황을 수습한 볼셰비키는 이 지역을 다시 소련 연방으로 편입시켜 버린다. 1991년 소련 연방이 붕괴하면서 마침내 독립국가로 태어났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1937년은 소련 연방에 편입돼 있던 시기다. 그리고 당시 소련의 최고 권력자는 스탈린이었다.


소비에트 연방을 만든 레닌이 1924년 사망한 후 소비에트 공화국 안에서는 심각한 이념과 권력 투쟁이 벌어진다. 스탈린은 1922년부터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이 되어 레닌 사후 재빨리 권력을 장악했지만 아직은 레닌과 함께 활동했던 정치가들(예를 들어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혹은 리코트나 부하린)이 건재하던 시기였다. 스탈린은 자신의 정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기 시작한다. A를 키워 적을 제거한 뒤, B를 키워 A를 제거하는 것이 스탈린의 스타일이었다.


스탈린에게 권력이 집중되자 당 엘리트들로부터 강한 저항이 생겨났다. 게다가 1932년에서 1933년 사이 실패한 스탈린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공화국 전역에 대기근이 발생했다. 우크라이나에서만 500만에서 600만, 공화국 내에서는 1000만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엄청나게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스탈린을 제거하고 방향을 잃고 헤매는 혁명 정신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스탈린 (위키미디어에서 펌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seph_Vissarionovich_Stalin.svg)


1934년 2월 스탈린은 기존의 감찰 조직을 정치국에서 분리하여 내부인민위원회(NKVD) 조직 아래로 두는 개혁안을 발표한다. 감찰 권한이 정치국에서 내무국으로 옮겨졌으니 이것은 언뜻 보면 초사법기관의 힘을 빼고 인민의 권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편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스탈린은 1936년까지 NKVD 조직을 착실하게 강화한다. 이 시기의 탄압은 주로 정부, 당, 국가 안보 기관, 군 등의 핵심 인사들을 겨냥한다.




NKVD의 수장인 겐리흐 야고다는 스탈린의 정적들을 감시하는 업무뿐 아니라 강제 노동이라는 거대한 시스템도 만들어낸다. 의심되는 사람들은 특별한 근거 없이 체포되어 소비에트 연방 내 불모지로 끌려가 강제 노동이나 특별히 위험한 노동에 투입되었다. ‘백해- 발트해 운하’나 ‘모스크바-볼가 운하’는 모두 이런 강제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졌다.


마침내 1936년 스탈린의 제안에 따라 당은 NKVD에게 ‘전권’을 부여한다. '전권'. 무서운 말이다. 이들은 소련 국내 인사들을 감시해 잡아들였을 뿐 아니라 외국에 살고 있는 자국민들에게도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국내 숙청의 범위는 당 간부들뿐 아니라 평범한 일반 주민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확대 때문에 1937년부터 1938년 사이의 시기를 특별히 ‘대숙청(Great Terror) 시대’라고 부른다.




1937년 7월 정치국이 승인하여 8월부터 12월까지 계획된 “NKVD 명령 00447호”를 보면 처형하고 수용소에 구금할 인원이 지방 공화국 별로 정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대상자가 없다면 만들어라도 내야 할 판이었다. 물론 일은 이것보다 훨씬 지독하게 진행됐다.


첫 단계에서 약 20만 명이 수용소에 갇혔고 7만 명 이상이 살해됐다. 하지만 지방의 NKVD 수장들은 자신들의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체포 및 처형 인원수”를 늘려달라고 탄원하기 시작했고 이는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1937년 여름에 시작되어 1938년 11월에 끝난 ‘대숙청 기간’ 중 약 160만 명이 체포되고 그중 70만 명이 총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NKVD의 고문실에서 사망한 숫자는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약 1년 반 동안 매일 평균 1500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벌어진 이런 만행은 정말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을까? 대숙청의 시기인 1937년, 중일 전쟁이 벌어지자 스탈린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극동 지방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을 주목한다. NKVD는 17만 명에 달하는 고려인을 “극동 영토에 일본 첩자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주시키기로 결정한다. 살던 곳에서 쫓겨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땅으로 이동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17,000에서 50,000에 이르는 고려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비극이다. 역사는 어떻게든 연결되고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모든 악행의 가운데에 있던 NKVD의 운명은 어땠을까?


NKVD를 새롭고 악명 높게 만든 장본인인 겐리흐 야고다의 마지막은 아름답지도 평화롭지도 않았다. 야고다는 1937년 3월 체포되어 1년 후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다. 이 야고다를 처형한 인물은 후임 NKVD의 수장이었던 니콜라이 예조프였다. A를 키워 적을 제거한 뒤, B를 키워 A를 제거하는 스탈린의 스타일에 맞게 야고다를 키워 적을 제거한 뒤 예조프를 키워 야고다를 날려 버린 것이다.


몇 년 후 스탈린은 니콜라이 예조프 역시 대숙청의 책임을 지워 총살해 버린다. 이런 식의 숙청은 끝없이 이어진다. 문제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조직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1937년 NKVD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요원들의 급여는 네 배가량 오른다. 열성적인 사람들을 유인할 동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NKVD는 보수를 많이 받는 직업이자 가장 많은 특권을 향유할 수 있는 직장이 되었다. 공장, 사무실, 기차역 등등 사람이 있는 모든 곳을 꼼꼼하게 감시하려면 수십만 명의 NKVD 요원이 필요했다. NKVD는 스탈린 사후에도 하나의 특권기관과 권력기관으로 제 몫을 다했다. 엄청나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계속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 참고 문헌>>

스탈린 독재자의 새로운 얼굴, 올레크 V. 홀레브뉴크 지음, 유나영 옮김, 삼인 2017

코카서스 3국 들여다보기, 윤창용 지음,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콘텐츠원, 2019

비밀정보기관의 역사 파라오부터 NSA까지, 볼프강 크리거 지음, 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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