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었다면 ‘서론’에 해당하는, 뮤지컬 데스노트의 첫 장면은 <정의는 어디에>라는 노래로 시작한다. 이 뮤지컬의 주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는 인간 사회 기준이 되지. 그저 편한 대로 갖다 붙이지. 전쟁을 생각하면 알 수가 있어. 정의의 깃발 들고 달려 나가서 서로의 목숨 걸고 총을 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의미 없는 죽음일 뿐이야……. 정의란 건 누가 정한 걸까. 저 눈먼 권력이 정해 놓은 기준. 제대로 된 정의 진정 원한다면 제대로 된 지도자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해. 그게 가능한 걸까. 절대 불가능해.
이 작품은 200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만화는 이후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줄거리에는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뮤지컬은 원작 만화에 충실한 설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마츠야마 켄이치’가 연기한 L이 너무 흡족했던 까닭이다. 외모적인 싱크로율로는 누구도 켄이치를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역시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2015년에 초연되었고 이번이 세 번째 무대다.
사신 류크는 권태와 따분함을 벗어나기 위해 인간 세상에 ‘데스노트’를 떨어뜨린다. 우연히 이것을 주운 아가미 라이토는 데스노트를 이용해 ‘악인들’을 처단하기 시작하고, 스스로 ‘신’이 되었다고 느낀다. 갑자기 범죄자들이 죽기 시작한 상황을 ‘살인 사건’이라고 판단한 경찰과 L이 뒤를 쫓기 시작하고, 이제 라이토는 그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는 이야기다.
만화나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뮤지컬로 만들어졌을 때 어떤 새로움을 줄 수 있을지 상당히 회의적이었다(그래서 초연과 재연 때는 티켓을 끊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뮤지컬, 비싸다). 하지만 이번엔 김성철 배우가 나온다. 몹시 궁금했다. 홍광호 배우 본 지도 오래됐다. 제대로 된 프로의 노래를 듣고 싶다. 이런 이유로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겨우겨우 좌석을 잡고 공연장에 갈 수 있었다.
입장을 하면 검은 무대 위로 분침과 시침을 나타내는 불빛들이 가득 떠 있다. 특별한 세트는 보이지 않는다.
막이 오르면 본격적으로 LED 화면이 역할을 시작한다. 사신이 살고 있는 곳도, 라이토의 강의실도, 테니스장도 모두 LED 입체 화면으로 구현된다. 배우들이 직접 만지고 앉아야 하는 책상과 의자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LED다. 대단하다. 노래를 들으러 갔는데, 무대 연출에 더욱 놀라고 말았다. 뮤지엄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자유자재로 장면을 구사한다. 멋지다.
홍광호 배우는 프로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보고 실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김성철 배우는 지금으로도 훌륭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이랄까. 조금 거친 조승우 배우를 보는 느낌이었다. 뮤지컬에서 노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결국 연기는 연기다. 노래와 함께 연기가 받쳐 줘야 완성된다. 노래를 잘하는 뮤지컬 배우는 많지만, 연기까지 되는 배우는 사실 드물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 배우를 만나면 반갑다. 물론 L의 외모와는 괴리감이 있었지만(아, 제가 마츠야마 켄이치를 너무 좋아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려니 해주세요), 노래가 끝날 때마다 기립하고 싶어질 정도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그동안 극장들은 COVID19로 인해 거리를 두고 좌석을 판매했다. 한석 걸러 한 명씩 관람을 해야 했을 때도 있었고, 그보다는 나아져 드문드문 빈 좌석을 둬야 할 때도 있었다. 3년 만에 꽉 차서 만석인 극장에 앉아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의 ‘반전’ 없이 전염병 상황이 종료되길 바랄 뿐이다.
“중2병은 중 2 때 겪고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 함께 관람한 지인의 감상평이다. 정의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런 평을 할 만큼 가벼운 작품이다. 눈과 귀가 마음껏 호강할 수 있는 작품이긴 한데, 아마 전석 매진인 것 같다. 티켓팅을 성공한 분들, 모두 행운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