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쪼가리 자작

-소극장 알과 핵

by 지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SF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었는데, 이번에도 내가 틀렸던가 보다.


이 연극의 주인공, 테랄바의 메다르도 자작도 우크라이나는 아니지만 아무튼 전쟁터로 향했다. 투르크인에 대항해 싸우는 십자군 전쟁에 자원해 보헤미아의 한 전쟁터에 도착했다.


이웃 군주들을 기쁘게 해 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젊었기’때문이다. 메다르도 자작은 이제 막 청년이 되었고, 무릇 ‘청년기’란 ‘선과 악이 뒤섞인 막연한 감정들이 혼란스럽게 터져 나오는 시기이며, 새로운 모든 경험, 무시무시하거나 비인간적인 경험까지도 삶에 대한 불안하면서도 따뜻한 애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즉 전쟁이 뭔지 모르고 전쟁터에 갔다는 말이다.




첫 전투에서 메다르도의 몸은 반쪼가리가 되어 버린다. 몸의 반쪽, 정확히 말하자면 오른쪽만 살아남는다. 테랄바로 돌아와 영주가 된 메다르도는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완벽한 ‘악’의 화신이다. 테랄바의 광장에는 교수형 당한 사람들의 시신이 음산하게 나부낀다. 반쪼가리 자작에 대해 쑥덕거리던 주민들은 순식간에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어붙는다.


“난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버릴 수 있지.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이제 질문은 나왔다. ‘온전한 인간’이란 누구인가? ‘완전함’이란 무엇일까?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들린다. 착한 일을 하는 메다르도가 있다는 것이다. 미친 거 아니야? 뭐라고? 그 메다르도는 왼쪽만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조금 늦게 완벽한 ‘선’의 화신 메다르도가 나타난 것이다. 반쪼가리가 둘이다. 어제 어떻게 하지?




이 연극은 이탈리아의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반쪼가리 자작>을 원작으로 한다. 전쟁터에서 생긴 부상으로 반쪼가리가 된다던가, ‘사악한 메다르노’와 ‘선한 메다르노’의 대결 구도 등은 원작과 동일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극 초반 전쟁터를 찾아가는 메다르노와 하인의 대화는 원작의 느낌과 사뭇 다르다. 원작에서는 말 그대로 ‘전쟁터의 참상’을 묘사하는 의도로 사용됐다면, 연극에서는 그에 더해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유머는 덤이다.


줄거리를 압축하고, 메다르노를 제외한 인물들의 역할을 ‘대중’으로 바꾸면서 훨씬 설득력을 부여한다. 각자 맡은 대사를 하는 와중에 문득 누군가는 의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온전하지 못한 반쪼가리 자작 때문에 온전한 사람들이 너무 괴롭다며 돌아가며 불평하다 한 배우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온전하다는 건, 완전하다는 거지? 근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나?


배우가 의문을 제기하는 동안 극은 멈추고, 결국 나머지 배우들이 화를 내고 나서야 극은 이어진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사람이 포탄을 맞고 반쪽만 남는다니, 말이 쉽지 표현하기는 난망하다. 그 어려운 것을 인형극을 통해 해낸다. 그림자 극이나 마임의 형식도 적재적소에 사용된다. 눈이 즐겁다.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이 죽어가는 전쟁터의 참상은 팔다리가 잘린 인형으로 표현된다. 말을 탄 반쪼가리 자작과 노새를 탄 반쪼가리 자작이 배우들의 손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다.


무엇보다 여섯 명 배우 모두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극은 정확히 정시보다 2분 전에 시작되었다. 배우들은 무대에 나와 마임과 동작의 포즈를 취했다. 소란했던 관객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무대에 고정된다. 90분의 시간 동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연기도 좋았지만, 마지막 악기 연주까지 해주는 센스에는 관객으로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박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극에는 이름을 부여받지는 못했지만(너무 흔해서 굳이 이름을 부여할 필요가 없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뒷담화는 기본이고, 그럴 때마다 '아니, 내가 걱정되서 그러지....'라며 말 끝을 흐리는 것도 나와, 당신과 똑같다. 공포에 쉽게 순응하고 합리화한다. 조금의 기미라도 있으면 자신의 출세로 이용하려는 인간의 이기심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사악한 자작으로 인해 테랄바에 고통이 찾아왔지만, 자작 한 명만이 그것을 완성한 것은 아니다. 그것에 동조하고, 협조하고, 기꺼이 순응한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나눠질 책임이 있다. 세상일이 다 그런 것처럼 말이다.


원작이 있는 연극이지만, 원작보다 훌륭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전쟁은 어떤 의미로든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제발 러시아는 이제 그만해 주길 바란다. 백번 양보해도 전쟁이란 결정하는 사람과 죽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임이다. 인간이 반쪽이 나버릴 정도의 비인간적인 상황이란 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대신 이 연극을 관람하시면서 인간의 ‘완전하지 못함’에 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지. 물론 재미있는 연극이라 보는 중간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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