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란 알로 야시장과 국립 모스크
장시간의 에어컨 찜질과 밤의 도움을 받아 잘란 알로 야시장을 찾았다. 밤 9시가 넘은 시간, 위험하다는 느낌은 없지만 우리는 쫄보다. 지도 앱은 몇 번이고 가까운 골목으로 붉은 막대기를 뻗쳐 댔지만 우리는 무시하고 큰길을 따라 걸었다. 이런 식의 싸움에서 이기는 건 사람이다. 10분쯤 걷다 고개를 들자 골목을 가득 매운 인파가 보였다.
“여기가 사람이 많을까, 홍대 앞이 많을까?”
나도 모르게 가방을 몸 앞으로 그러모으며 물었다. 핸드폰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홍대 9번 출구 앞 정도는 되겠는데? 벌써 기 빨리는 것 같아.”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다양한 인파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빨리 움직이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골목 안은 사테와 생선을 굽는 연기, 손님을 호객하는 직원, 각종 향신료의 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다. 잘못 고개를 돌리면 두리안의 냄새도 끼어든다.
주위 가게를 둘러보며 군침을 삼키는 사람들을 따라 걷다 과일 주스를 파는 가판 앞에 섰다. 우리 돈 3000천 원으로 말도 안 되는 맛과 양의 망고 주스를 마시며 우리는 야시장에 머물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에 대해 짧은 의논을 했다. 사람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을 때 흥과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도 있지만 방전되는 인간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후자였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 우리는 야시장이 거의 끝나는, 비교적 한가한 가게에서 사테를 주문했다. 소고기와 닭고기에 소스를 발라 구운 음식이다. 삼발 소스에 찍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다시 인파 속으로 들어갈 결심을 다져 봤지만 무리다. 우리는 숙소 근처 마트에서 맥주를 사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 날 지도 앱에 의지해 아직은 시원한 아침 길을 걸었다. 5분쯤 골목, 그다음 이어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뜻밖에 야시장 거리가 나타났다. 어제 지도 앱은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한 것이다. 이국의 골목길을 헤맬 만큼 우리 간이 크지 않은 것이 문제였을 뿐.
다시 만난 잘란 알로 야시장은 아침 7시 홍대 거리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환하고 인적 드문 거리를 지나 우리가 찾는 음식점(Kam Fatt Restaurant)으로 들어갔다.
포크 포리지(Pork Porridge)와 커리 락사(Curry Laksa), 커피(Kopi o/c)와 레몬티를 주문했다.
“미안해. 난 고수를 못 먹어. 넌 괜찮아?”
포리지에 고수를 빼 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은 동행이 내게 물었다.
“나도 고수 못 먹었지. 그런데 남미가 내게 고수를 줬어. 예전에 배낭여행 할 때 말이야. 돈 쪼들려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밥 해 먹으면서 여행할 때였는데 아르헨티나 피츠로이 산에 올라갔어. 피츠로이 산 중간에 있는 산장에서 묵고 다음날 정상까지 올라갔지. 저녁에 산장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비싸더라고. 거기까지 말이 터벅터벅 짐을 옮기는 거였으니 비싸도 할 말은 없지. 무슨 치킨라이스 어쩌고 하는 걸 시켰어. 닭고기 볶음밥이겠구나 하고. 음식이 나왔는데 뒤로 넘어갈 뻔했어. 커다란 닭다리가 통으로 있는 건 괜찮았는데 고수를 잘게 다져서 볶음밥에 엄청 넣었더라고. 잘게 다졌으니 빼낼 수도 없어. 다 먹던지 다 버리던지 둘 중 하나야. 꼴랑 닭다리와 냄새나는 볶음밥이 삼만 원 정도 했던 거 같아. 그때 삼만 원이면 일주일 식비였는데. 그래서 눈 딱 감고 다 먹었어. 순전히 돈이 아까워서. 그다음에는 고수 향이 괜찮더라고. 역시 인간은 돈이면 다 된다니까.”
“그 말이 그런 상황에서 쓰일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하지.”
부드러운 죽 위에는 튀긴 돼지 내장이 토핑 되어 있었다. 상상 밖의 조합이지만 맛은 훌륭하다. 짭조름한 커리 락사를 반찬처럼 후룩거렸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을 받으며 투어에 참가하기 가이드와 약속된 미팅 장소로 향했다.
투어의 첫 방문지는 국립 모스크(Masjid Negara)다. 도착했을 때 뭔가를 읽는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절 밖으로 들리는 불경 소리 같기도 하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가이드가 설명했다.
“외국인은 오후 3시 이후에만 이 모스크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앞에서 여성분들에게는 옷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게 후드를 반드시 써 주세요. 특별히 히잡을 원하시는 분은 말씀해 주세요.”
모스크는 무슬림들이 이용하는 시간과 관광객이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을 다르게 지정하고 있었다(평일은 오전에 한 번, 오후에 두 번 관광객 입장시간이 있지만 이것도 요일마다 다르다). 여행자라면 방문 전 체크하고 가야 할 사항이다.
모스크 밖으로 국립 이슬람 박물관과 쿠알라룸푸르 기차역이 보인다. 기도 전 씻는 곳에서 아이들 몇몇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장난을 하고 있었고 그 위 쪽으로 작은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분수가 열을 지어 서 있었다. 분수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스크 입구에서 가이드가 내민 옷은 비옷처럼 보였다. 후드를 씀과 동시에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흐르지만 어쩔 수 없다. 신발을 벗고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다(양말까지 벗어야 하는 힌두교 사원보다는 덜 번거롭다).
계단 위로 오르자 물이 담긴 구조물(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연못?) 안에 서 있는 거대한 탑이 보였다. 그 뒤로 아름다운 지붕의 모스크가 보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둥근 지붕과는 다르다.
예배당 안쪽 카펫 위에는 드물게 기도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아마 기도 시간이 아닐 것이다. 옆으로는 긴 기둥이 열을 지어 있는 기도실이 이어져 있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매우 시원한 공간이다.
국립 모스크는 영국 식민지 시대 성공회 교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1965년 문을 연 국립 모스크는 “말레이계 사람들이 설계하고 중국계와 인도계 사람들이 건설했으며 이슬람교와 기독교, 불교와 힌두교 공동체의 기부금으로 자금을 조달했다”는 설명이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말하자면 국립 모스크는 말레이시아의 통합을 상징하고 싶어 하는 건물이다. 보통 어떤 것을 강조할 때는 그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반증인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복도에 ‘뛰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면 그곳을 지나는 많은 학생들이 뛰어간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것처럼.
1970년 이후 현재까지 말레이시아는 ‘부미뿌뜨라 정책’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부미는 땅, 뿌뜨라는 아들을 뜻한다. 즉 ‘부미뿌뜨라’는 말레이 땅의 아들을 우대하는 정책, 즉 말레이계 국민을 우대하는 정책이다. 말레이계 뿐 아니라 중국계와 인도계의 인구가 많은 말레이시아에 왜 이런 정책이 도입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