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말레이를 경제적 중요도에 따라 해협식민지와 연방 말레이주, 비 연방 말레이주로 나눠 통치했다. 중요 항구도시들로 구성된 해협식민지는 총독이 직접 관할하고 주석과 고무 산업의 중심지였던 연방 말레이주에는 주재관을 두고, 비 연방 말레이주에는 고문관만 파견하는 식이었다
말레이를 지배하는 것은 소수의 영국인이었지만 영어가 가능한 말레이 왕족과 귀족들이 관료로 일하며 그들의 손발이 되었다. 말하자면 식민지 시대에도 말레이 사회는 식민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비 말레이인들도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2차 세계대전 이전 말레이 땅으로 이주해 온 대부분의 중국인과 인도인들은 이민으로 정착한 땅에 소속감을 두기보다는 언젠가 부자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민족의 이민사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해방 이후 많은 한국인이 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그곳을 최종 목적지로 생각한 이민 1세대는 많지 않았다. 이민 간 나라를 진정한 고향으로 여기고, 사회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 땅에서 태어난 이민 2세, 3세들이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도 비교적 최근이다. 말레이의 중국인도 이와 비슷했을 것 같다.
센트럴 마켓에서 본 주석으로 만든 체스. 체스만 둘 수 있었어도 샀는데..... 탐 났는데.......
새롭게 개발되어 발전하는 도시에서 중국인이나 인도인들이 자리를 잡고 부를 쌓는 사이에도 말레이인들은 고향을 떠날 수 없었다. 말레이 전통문화와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영국 식민지 당국이 취한 조치들 때문이다. 농촌의 말레이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는 사라졌고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하층 말레이인들의 불만은 중국인들을 향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영국이 잠시 물러나고 일본이 지배하던 1942년에서 1945년 사이 말레이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린다. 일본군의 강제적인 쌀 공출은 말레이 반도에 심각한 식량난을 유발했고 그 결과 도시에서 거주하던 중국인들이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거 농촌으로 이주한다. 생존을 위한 투쟁 앞에 말레이인과 중국인들 사이의 적대감이 깊어진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고 그로부터 3주 후 페낭에 영국군이 상륙하기 전까지 말레이는 무정부 상태가 된다. 좌파 중국 공산당 조직이 밀림 지대에서 내려와 말레이 전역을 장악했고 일본에 협력한 말레이인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테러를 감행했다. 놀란 말레이인들 역시 무기를 든다. 중국계와 말레이계의 적개심은 심각한 수준이 된다.
1950년 중국 본토에서 국공내전이 끝나고 공산당이 집권한다. 마오쩌뚱의 부상과 문화 대혁명이 이어진다. 말레이 이민 1세대 중국인들은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 공산당이 집권하는 중국에 살 것인지 말레이에 머물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아예 말레이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민 2세대들은 결정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당연하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말레이를 선택한다.
1956년 말라야 정치인들과 영국인들로 구성된 ‘리드 제헌 위원회’에서 말레이인들의 특별한 지위를 보장하는 내용의 헌법이 만들어졌고 1957년 8월 31일 말레이시아의 독립이 선포된다. 독립 이후 권력을 차지한 말레이 정치인들은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중국인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1965년 싱가포르 축출이 그 대표적인 성과다(리콴유 총리가 스스로 연방에서 탈퇴당하기를 원했다는 의견도 있긴 하지만 싱가포르가 말레이연방에서 축출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국립 모스크 내부. 접힌 우산살처럼 보인다.
1969년 5월 9일 총선은 중국계 야당과 이슬람계인 말레이계 야당이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며 끝이 난다. 5월 13일 선거 결과에 고무된 중국계 야당 지지자들이 승리 자축 행진을 벌인다. 여기에 여당 지지자들이 맞불 집회를 시작하고 곧 무력 충돌로 이어진다. 이 사태는 결국 쿠알라룸푸르와 인근 도시 지역까지 번져 인종 집단 간 유혈 충돌로 발전해 약 4일간 200여 명이 사망하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연방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장기 총리로 기록되고 있는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가 당시 총리인 '압둘 라만'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것이 이 즈음이다. 젊은 정치가였던 마하티르는 그때까지 정부가 취한 말레이 우대정책으로는 부족하며 더욱 강력한 말레이 우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압둘 라만을 이어 2대 총리가 된 압둘 라작은 헌법 수정을 통해 부미뿌뜨라 정책을 실시한다. 말레이 술탄의 지위 및 권한, 말레이인의 특별한 지위, 말레이어가 국어라는 사실과 이슬람교가 국교라는 사실에 대해 공공장소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치안법에 따라 내란죄를 적용하는 강력한 법이다. 이제 말레이시아에서는 인종문제를 공공연히 거론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다.
국립 모스크 안 분수. 단아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앞을 엄청난 폭우가 가로막았다. 와이퍼가 움직이지만 그래도 앞이 잘 안 보인다. 현지 기사는 그런 날씨가 익숙한지 속도만 조금 줄일 뿐 편안한 표정으로 운전을 했다.
“이제 도착할 곳은 바투 동굴입니다. 말레이시아 최대 규모의 힌두교 성지입니다. 타이푸삼이라는 축제를 아십니까?”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버스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타이푸삼은 힌두교 타밀 달력의 열 번째 달인 타이(Thai)와 보름달이 가장 빛날 때라는 의미의 푸삼(Pusam)이 합쳐진 말입니다. 1월 말에서 2월 초에 보통 이 축제를 여는데요, 혹시 스리 마하 마리암만 사원에 갔다 오셨나요?”
몇몇이 아는 척을 한다. 소심한 나와 일행은 침묵을 지켰다.
“타이푸삼 때가 되면 그 스리 마하 마리암만 사원에서부터 여기 바투동굴까지 걷습니다. 지금 차가 이동하는 이 길을 따라 쭉 걸어와요. 그런데 타이푸삼은 참회와 속죄의 축제거든요. 머리랑 몸에 이상한 물감칠 같은 걸 하고 쇠꼬챙이 같은 걸로 살을 뚫기도 하고 갈고리 같은 걸 걸기도, 불로 지지기도 하고 아무튼 엄청난 모습으로 맨발로 터벅터벅 여기까지 걸어옵니다. 보면 무서워요.”
길에 고인 물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버스를 흔들었다. 양쪽 창문으로 거대한 물보라가 생겼다 사라졌다. 가이드가 흘끔 창밖을 본 뒤 말했다.
“뭐 여행할 때 비가 오면 기분이 좋진 않죠. 그렇죠? 하지만 여러분은 오히려 운이 좋은 거예요. 일단 비가 오면 밤에 보실 반딧불이 엄청 많아져요. 그리고 바투 동굴에 도착하면 아시겠지만 비둘기가 적어요. 보통은 바투 동굴 들어갈 때 비둘기 똥 한 두 개는 맞을 각오로 가야 하는데, 오늘은 괜찮을 것 같은데요? 운이 좋으신 거예요.”
위로를 담은 농담인지 진심인지 알 수가 없다. 승객들이 반응 없이 앉아 있자 가이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바투동굴 입구
“바투 동굴에 얽힌 신화를 알려드릴게요. 도착하면 입구에 커다란 동상이 보일 겁니다. 그 신이 무르간입니다. 무르간은 전쟁의 신입니다. 딱 느낌이 오죠? 힘 세고, 크고, 머리는 조금 떨어지고, 뭐 그런거요. 무르간의 엄마가 스리 마하 마리암만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파르바티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시바 신이고요. 무르간의 형은 카나바다인데요 다른 말로 가네샤. 바로 지혜와 행운의 신 가네샤입니다. 힌두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이죠. 어느 날 여신은 두 아들을 불러 말합니다.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서 그것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오는 사람에게 내 자리를 물려주겠다, 이렇게요. 무루간은 세상으로 나갑니다. 지구를 세 바퀴 돕니다.”
“슈퍼맨.”
앞 쪽에 앉은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버스 안에서 웃음이 터졌다. 덕분에 내 머릿속에도 푸른색 쫄쫄이를 입고 붉은 망토를 두른 채 한 팔을 뻗고 지구를 돌고 있는 남자가 들어와 버렸다. 무르간 신, 죄송합니다. 함께 웃던 가이드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무르간이 그렇게 바쁘게 움직일 동안 장남은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빈둥빈둥거렸어요. 지금 같았으면 게임이나 하고 있던 거죠. 그 꼴을 보던 엄마가 화를 냅니다. 그러자 장남은 벌떡 일어나 옷을 갖춰 입고 재빨리 엄마 주위를 세 바퀴 돕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자, 누가 여신의 자리를 물려받았을까요?”
“장남.”
버스 안의 많은 목소리가 대답한다.
“네, 동생 무르간은 열받았겠죠? 그래서 여기 바투 동굴에 틀어 박힙니다. 밖으로 안 나와요. 엄마가 1년에 한 번 만나러 오는데 그때가 타이푸삼 축제입니다. 동굴 입구까지는 272개의 계단이 있어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의 숫자라고 합니다. 그 계단을 오르면 죄가 하나씩 하나씩 씻어지는 겁니다. 비 때문에 미끄러우니까 계단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 여기 원숭이는 사나우니까 절대 가까이 가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