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아바타 그리고 마블 유니버스

- 바투동굴

by 지안

차에서 내릴 때쯤 비는 우산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까지 잦아들어 있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늘어선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들이 보였다. 아이스크림을 문 아이가 야외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녔고 그 아래에는 비둘기들이 앉아 있었는데 비에 젖은 때문인지 물웅덩이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동행이 중얼거렸다.


“사원이라기보다는 유원지 같은 느낌이야.”


포장된 바닥은 새똥으로 지저분했고 이따금 알 수 없는 곳에서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맑은 날 왔다면 새똥의 공격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아름다운 색의 사리를 두른 여자들이 다른 어른들과 혹은 아이들을 데리고 옆을 지나쳤다.




계단은 철 난간을 사이에 두고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 가이드가 어느 쪽인가가 과거의 죄를 또 어딘가는 현재 혹은 미래의 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일러줬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과거의 내가 그렇듯 지금도 아마 미래에도 나는 죄를 짓고 있을 것이다. 어떤 죄를 반성한들 나쁘지 않다. 화려한 색의 계단은 수영장의 미끄럼틀 같아 보였다.


“일단 아무 쪽으로나 올라가서 죄를 씻어보자고.”


물이 고인 계단을 의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동행에게 말하며 내가 먼저 한 발을 디뎠다. 우리나라 육교 계단보다 폭이 좁다. 게다가 가파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동행은 철 계단에서 한 뼘 이상 멀어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죄의 종류가 272개 밖에 없을까?”


“대충 여태까지 저지른 걸 읊어 봐.”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동행이 말했다. 나는 지금껏 내가 저질렀던 죄에 대해 떠올렸다.


“뭐 사람 죽인 적은 없고.”


대여섯 개의 계단을 더 오르는 동안 침묵하자 걸음을 멈춘 동행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다야?” 고작 사람 죽이는 거 제외하고 모든 죄를 지었단 말이야?”


“그게 생각해 보니 그렇네. 뭘 훔쳤다고 확실하게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이랑 뭘 나누다가 내가 더 좋은 걸 갖고 싶어 욕심을 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고, 거짓 증언을 했다고 심판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누군가 되지도 않게 의심을 받고 욕을 먹어도 아니라고 항변 한 번 해준 적이 없어. 내 이웃의 것을 탐한 적은 없지만 부러워 속이 상했던 적은 많아. 이거야, 원 진짜 반성이 되는 계단이잖아?”


가이드가 지정해 준 포토 스팟에서 한장, 찰칵!


우리는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우리를 앞서 오르던, 60대를 훌쩍 넘었을 것 같은 인도계 여성이 중간에 멈춰서 숨을 고를 때면 이때다 싶은 마음으로 함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계단을 다 오르자 동굴 안으로 내려가게 만들어진 계단이 보였다. 어차피 내려가면 다시 올라와야 한다. 망설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싶은 마음에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갔다. 거대하고 평평한 종유 동굴이었다. 입구에는 상품을 파는 상인들의 가판이 보였고 동굴 안 쪽으로 힌두교와 관련된 조형물들이 있었다. 위는 뻥 뚫려 있어 흩날리는 빗방울이 들이쳤다.


“272개라니 너무 많아. 대웅전 뒤 108 계단만 봐도 도망가기 바쁜데 여기가 외국이 아니었으면 절대 올라오지 않았을 거야.”


다시 내려갈 걱정을 하며 내가 투덜거렸다. 차로 돌아갈 시간을 가늠하며 우리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비에 젖은 계단은 올라올 때보다 훨씬 위험했다. 동행이 물었다.


“불교와 관련된 건 왜 108인지 알아?”


“108 번뇌 그런 거 아닌가?”


“맞아.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108가지 생각. 정확히 백여덟 가지라는 것이 아니고 그냥 많다는 거지. 100 넘어가면 많다. 토니 스타크 딸이 3000만큼 사랑해, 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그런데 인간의 죄는 272개라고?”


“아마 이것도 그냥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힌두교는 잘 모르지만 헬레나 블라바츠키라는 사람을 알아?”


동행이 숨을 고르며 계단 중간 평평한 곳에 멈춰 섰다. 철 계단 두 개 넘어 커플이 보였다. 작은 원숭이가 남자의 손 위에 놓인 뭔가를 정신없이 먹고 있었고 옆의 여자는 환한 웃음을 짓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 가이드는 원숭이와 눈도 마주치면 위험하다고 몇 번이고 주의를 줬다.


272개의 계단을 오르고 나면 입구가 보인다. 그리고 내려가야 하는 계단도.......

“몰라. 뭐 하는 사람인데?”


“19세기 사람인데 신지학이란 걸 만들었어. 그 사람 말에 의하면 신이 세상에 개입해야 될 때가 되면 비슈누 신이 10가지 모습으로 내려온다는 거야. 산스크리트어로 ‘내려온다’는 말을 뜻하는 것이 ‘아바타’야.”


“아, 그 아바타? 익룡 타고 나르는 푸른색 사람들? 토루크 막토?”


무심결에 손뼉을 치자 원숭이가 내 쪽을 바라봤다. 나는 못 본 척 걸음을 옮겼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원숭이가 무섭다. 혀를 끌끌 찬 일행은 내 뒤를 따라 걸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그 10가지 아바타 중에 하나가 붓다야.


“아, 그렇게 힌두교가 불교를 통합한 건가?”


“글쎄, 그건 잘 모르겠고. 아무튼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처음에 티베트에서 공부를 시작했대. 그리고 인간이 영적으로 발전하면 윤회에서 벗어나 마스터가 될 수 있다고 했어. 그 마스터가 아직 성취를 이루지 못한 인간들을 훈련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 그 사람의 아버지는 독일인이고 어머니는 러시아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아리아인이 그 마스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종족이라고 생각했어. 뭐 인도인의 기원이 아리아인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잠깐만. 티베트에 살고 있는 아리아인 마스터라면……에이션트 원?”


나는 마블 영화 속 불타는 원을 다루며 닥터 스트레인지를 훈련시키는 머리카락 한 올 없는 틸다 스윈튼을 떠올렸다.

티베트에 살고 있는 아리아인 마스터라면, 혹시......

“그렇지. 신지학이 힌두교와 불교를 통합했는지는 어떨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마블 세계 통합에 기여했다는 것이 내 이론이야. 어때? 그럴듯하지?”


계단을 내려선 동행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게서 멀어져 갔다. 슈퍼맨으로 시작한 바투동굴의 이야기는 아바타를 거쳐 마블 유니버스로 나를 안내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형태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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