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와 계단에 지친 사람들을 싣고 버스는 움직였다. 밖은 흐렸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가이드가 나눠 준 차가운 물을 홀짝이며 더 이상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다.
“가끔 저에게 ‘이 나무가 뭔가? 이 꽃은 이름이 뭐냐?’ 물으시는 손님들이 계신데 미리 말씀드리지만 답은 ‘모릅니다’에요. 저도 나무 몰라요. 나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물어보셔도 대답을 해드릴 수가 없어요. 제가 아는 것은 딱 두 개입니다. 야자나무랑 팜나무예요. 지금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팜나무입니다.”
사람 키 보다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심어진 농원 옆을 버스는 달리고 있었다.
“저 나무들이 자라서 팜유를 뽑는 그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전 세계 팜유 수출의 80퍼센트를 담당합니다. 예전에 팜유 대란이 한번 있었죠?”
2022년인가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금지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나라의 식용유 가격도 갑자기 상승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마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재기 조짐이 보인 것이다. 부침개와 튀김을 좋아하는 나 같은 인간은 전전 긍긍하며 진열대 위의 몇 개 안 남은 비싼 식용유를 군말 없이 집어 들었다. 전 세계의 경제는 미처 알지 못하는 곳까지 촘촘하게 얽혀 있고 누군가 기침을 하면 상관없어 보이는 어느 곳에선가 피를 흘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말라카에서 만난 오랑우탄 벽화. 숲의 사람.
“산림을 깎아 내고 거기 팜나무를 심으니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안 좋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EU가 산림 벌채에 관해서 규제를 하겠다는 말도 했죠. 말레이시아는 그럼 EU에는 수출 안 하겠다고 맞불을 놓았고요. 아마 지금 팜유가 없으면 식품 관련 산업이 멈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튀기는 기름 말고도 마가린, 화장품, 바이오 디젤 등등 팜유가 사용 안 되는 곳이 없어요. 지구를 위해 산림인가, 지구인을 위해 팜유인가 결국 하나를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팜유는 전 세계 식물성 기름 소비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필수재’다. 문제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팜유 농장들은 기존의 숲을 태워 경작지를 마련한다. 탄소가 발생한다. 굳이 태우지 않더라도 열대우림은 ‘이탄지’에 있다. 이탄지는 나뭇잎 등 유기물이 완전히 분해되지 못하고 퇴적된 늪지대로 일반 산림에 비해 10배 이상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 열대 우림이 사라지면 그곳에 갇혀 있던 탄소는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지구의 온도가 그만큼 상승한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물도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말레이 원주민 어로 ‘숲의 사람’을 뜻한다는 오랑우탄 서식지 파괴다. 향후 팜유 재배가 확장될 것으로 보이는 지역에 전 세계 멸종 위기에 처한 포유류의 54%와 조류의 64%가 서식하고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의 ‘팜유와 생물다양성’(Oil palm and biodiversity ) 보고서). 심각하다.
우리나라가 팜유 문제에 무관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중 팜유 농장에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가 많다. 즉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의 일은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지구는 어느새 몸을 비틀 수도 없이 얽혀 있다. 너무 여러 사람의 이해가 걸려 있어 어떻게 해야 좋은 결말을 얻을 수 있는지 도무지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스리삭티 사원. 입구부터 정교함이 넘친다.
“자, 우리는 이제 스리삭티(Sri Shakti) 사원으로 갑니다. 말레이시아에 이주한 인도인들은 대부분 타밀 지방에서 왔다고 해요. 인도의 남쪽 끝부분이죠. 그 인도 타밀나두의 도시 마하발리푸람에서 온 장인 한 분이 이 사원 전부를 만들었다고 해요. 아주 아름답고 정밀한 조각들이 많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원이라고 제가 자부할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만 사원이니까 정숙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안에서 기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신발과 양말 모두 벗고 맨발로. 사진은 안 됩니다.”
차가 주차장에 멈췄다. 머리 위로 쏟아지던 에어컨 바람을 아쉬워하며 차에서 내리자 공기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다.
“저기 흰 소 보이시죠? 자, 여기가 힌두 사원이다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원과 조금 떨어진 곳에 흰 소들이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반바지에 나시티를 입은 남자아이가 물이 든 통을 우리 안으로 넣어주고 있었다.
스리삭티 사원은 가이드의 자부심(?)처럼 아름다웠다. 아직 비에 젖은 계단 아래에서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었다. 입구에 앉은 인도계 아저씨가 우리 일행에게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고 손짓을 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각상들이 줄을 지어 있다. 대부분은 여신처럼 보인다. 샥티파(Shaktism)는 힌두교의 신성한 어머니(Divine Mother)인 아디 파라삭티(Adi parashakti)를 숭배하는 종파이다. 자세한 설명이라도 적혀 있다면 좋으련만 기대하기 어렵다. 세심하고 정교한 조각들에 감탄하며 천천히 걸었다.
조각상을 지나 출구 쪽으로 나오자 대여섯 명의 인도계 남자들이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향을 피워 뿌옇게 된 공기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들도 타이푸삼 축제가 시작되면 바투 동굴로 향하는 행렬을 이룰까? 모를 일이다. 힌두교에는 삼만 삼천 명의 신이 존재한다. 내가 알기에는 너무 큰 세상이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자, 방금 보고 나오신 스리삭티 사원의 제일 첫 번째 조각상이 뭐였는지 맞추시는 분께 식사 후에 커피 쏘겠습니다.”
버스 안은 고요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이드가 말했다.
“아까 바투 동굴에서 여신의 지위를 받은 신이 누구였죠?”
“가네샤.”
누군가 대답했다. 나? 기억이 날 리 없다.
“맞아요. 가네샤는 힌두교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입니다. 지혜의 신인데 그게 설명을 들어보면 지적인 것이 아니라 약간 얍삽한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지혜예요. 사실 엄마 주위를 빙빙 돌고 이기는 거 좀 그렇잖아요? 아무튼 힌두교도들 집에 가던지 대부분 사원에 가면 첫 번째 있는 조각상이 가네샤입니다. 여기도 가네샤였고요, 아마 다른 곳에 가서 누가 똑같은 걸 물으면 가네샤라고 대답하면 절반 이상 맞을 겁니다.”
커피값을 아낀 가이드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차는 몽키힐에 멈춰 섰다.
나는 원숭이가 무섭다. 나만 원숭이가 무섭다.
“자, 내리면 갈색 원숭이와 검은색 원숭이가 있을 겁니다. 갈색 조심하세요. 바투 동굴에서 봤던 그 녀석이랑 동종입니다. 성깔 심해요.”
몽키힐에서 원숭이 먹이 주기 체험을 하기 전에 가이드의 설명이 거의 십 분 동안 이어졌다. 꼬리를 밟아서도 안 되고, 손을 휘둘러도 안 된다. 먹이를 가지고 장난을 쳐도 안 되고 몸에 올라온 원숭이를 떼어내려 해서도 안 되며 새끼를 가진 어미 곁에 가면 안 된다. 듣다 보니 사람에게 하면 안 되는 일은 원숭이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인가 보다.
차에서 내린 후 가이드가 먹이 봉지를 나눠줬다. 쫄보인 나와 일행은 멀리 떨어져 사진만 찍기로 했다. 발리 원숭이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가방을 털린 이후로 나는 원숭이가 무섭다. 원숭이 입장에서는 내가 더 무서울 수도 있지만, 뭐 인생이란 이렇게 물고 물리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