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 베케트의 방

by 지안

극장에 들어서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꼭 감은 거대한 눈이 보인다. 좌석 등받이마다 헤드폰이 하나씩. 닫힌 속눈썹 아래로 헤드폰에 문제가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라는 멘트가 떠 있었다.


헤드폰을 귀에 대자 오른쪽, 왼쪽을 구별하는 확인 방송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 의자에 등을 대고 헤드폰에서 나오는 반복적인 음향을 들으며 화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눈을 응시했다. 눈썹 가닥가닥이 잘 깎은 나무 방망이처럼 보인다. 멍하게 있다 보니 프로이트를 닮은 누군가가 내게 최면을 걸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눈이 열린다. 눈동자 사이로 1막의 시작을 알리는 글씨가 지나간다.


유태계 아일랜드인인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와 프랑스인인 그의 파트너 수잔 데슈보뒤메닐(Suzanne Dechevaux-Dumesnil)이 사는 방이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바비 혹은 미미 인형의 집을 상상하면 된다. 1층에는 사무엘 베케트가 글을 쓰는 작은 책상과 소파, 주방이 있다. 침실과 화장실은 2층이다.


어느덧 타자기 소리가 헤드폰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내 귀와 헤드폰 사이의 공간은 이내 탁탁대는 소리로 가득해진다. 마치 사무엘 베케트의 작업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다. 소리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책상 위 타자기는 흔들리고 좌우로 움직인다. 소설가가 일어서면 의자가 움직이다. 주전자에서 물이 끓고 커피잔이 그의 걸음에 맞춰 둥둥 떠 책상으로 향한다.


마법 같다?

사실 그렇지는 않다.

의자를 고정한 줄과 커피잔이 매달려 있는 실, 소파를 움직이는 줄들이 그대로 관객에게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끝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가 사는 집에는 작가가 없다. 말하고 커피를 마시고, 파트너를 안고 화장실을 사용하지만 어떤 의미로 그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고도가 절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과시했듯 사무엘 베케트와 파트너는 그 부재 때문에 크고 명확하고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때는 1942년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무엘 베케트는 공산주의자인 파트너 수잔의 영향을 받아 레지스탕스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 독일의 상황을 영어로 번역해 영국에 알리는 것이 그의 임무다. 게슈타포의 눈초리는 이미 두 사람에게 향하고 있고 함께 활동하던 친구 중 체포당하는 사람도 생기는 긴박한 시점이다.


상대적으로 담담해 보이는 사무엘 베케트와 달리 수잔은 몹시 불안해한다. 설상가상 집의 관리인인 칼부인은 두 사람을 감시하는 것만 같다! 사무엘과 수잔은 그런 것들에 대해 대화하고 반응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관객의 눈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혹은 두 사람의 자리에 1942년 프랑스에 사는 누가 들어가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주장하는 것만 같다.


1부가 끝나고 거대한 눈이 다시 나타난다.


이제 관객들은 그 눈이 응시하는 지점을 함께 볼 수 있다. 눈은 흔들리고 깜박이고 감긴 채 흔들리기도 한다.

눈의 주인이 느끼고 있는 공포와 아픔이 내게 전달된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함께 압축된 소리들이 헤드폰을 통해 흘러 나온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영화와 연극 그리고 인형극을 한 무대 위에 올린 형식이다. 헤드폰을 타고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가 쏟아져 들어온다. 한국어 자막은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따라 사라지고 나타난다.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너무나 놀라워 벌떡 일어나 환호를 보낼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새롭고 자극적이다.


형식에 주목하다 보니 내용이 조금 엉성한 느낌도 있지만 이 작품을 만든 부시 무카젤(Bush Moukarzel)과 벤 키드(Ben kidd)가 하려는 말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어쩐지 사무엘 베케트가 오지 않는 고도를 계속 기다렸던 심정을 조금 알듯도 싶다.


3막의 시간은 1945년이다.

전쟁은 끝났고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점점 제자리를 찾고 있는 시간. 그러나 누군가는 사라졌고 어떤 이는 죽었다. 그 부재를 결정한 것은 어떤 힘이었을까?


극장을 나서는 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시구가 떠올랐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생긴 죽음도 잔인했지만 또 다른 죽음들도 마찬가지다. 10.29 참사 1주기가 내일이다. 나는 운이 좋았던 덕택에 살아남았지만.....


이 작품은 10월2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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