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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01. 2023

평범한 사람이 견뎌야 하는 약속의 무게

-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마당극, 인형극, 오페라 등등 여러 종류의 공연을 관람했지만 중국 전통극인 경극을 본 적은 없다. 다만 1993년 개봉한 첸카이거 감독의 영화 [패왕별희]를 보면서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긴 했다. 특별한 배경 없는 무대 위에서 특수한 분장을 하고 노래에 맞춰 독백과 방백을 쏟아 놓는 극의 종류이며 진지함 가운데 의외의 웃음 코드가 있고, 과장된 무용이나 무예동작도 불쑥 튀어나오는 특이한 형식의 예술이구나,라고 나는 경극을 이해했다.


이 작품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13세기 원나라의 작가 기군상이 쓴 [조씨고아]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 [조씨고아]는 원에서 명, 청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올라 사랑받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의롭고 착한 부모가 악인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은 후 살아남은 자식이 성장하여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주인공에게 복수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알려주는 스승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런 내용으로 만든 소설들을 찾아 줄을 세우면 끝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긴 줄이 만들어질 것이다. 심지어 영화 [스타워즈]의 서사도 이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살짝 비틀었다. 억울하게 멸문지화를 당한 조 씨 가문의 자손인 ‘조씨고아’가 복수를 하는 내용은 맞지만 초점은 그 아이를 살리고 키운 ‘정영’에게 맞춰져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복수에 성공하는 루크 스카이워커를 중심에 놓지 않고 사연 많은 오비완 케노비의 머리 위에 조명을 켠 격이라고나 할까.




불이 켜지면 자주색 커튼을 배경으로 한 텅 빈 무대가 보인다. 무대 뒤 쪽에는 긴 사슬이 두줄, 무대 중간에는 밥상과 몽둥이 같은 소품들이 다소곳이 매달려 있을 뿐 시대나 공간을 짐작할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문관의 옷을 입은 조순과 무관의 복장을 한 도안고가 나타난다. 두 사람 사이로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부채를 든 묵자가 나타나 극의 진행을 돕는다.


진나라 임금인 영공은 조순과 도안고를 신임하고 있고 대장군 도안고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심지어 조순의 아들 조삭이 영공의 여동생과 결혼하여 사돈지간인 것도 불쾌하기 그지없다. 호시탐탐 조순을 없앨 기회를 노리던 도안고는 마침내 누명을 씌워 조순의 일가 300여 명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자신에게 불충한 마음을 품었다는 말 한마디에 수백 명의 일족을 죽여버리는 영공도 자신의 여동생과 조삭은 살리라고 말했지만 복수의 씨앗을 남길 수는 없는 법. 도안고는 조삭을 자살하게 만들고, 영공의 여동생이 아이를 낳자마자 없애 버릴 계약을 꾸민다.




아직 극의 초입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죽어버렸다. 이들의 죽음은 묵자가 살며시 부채를 펴 가리는 상징으로 대체된다. 복잡하고 구구절절한 사연은 인물들의 방백으로 간단하게 지나간다.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 채 아이를 낳은 공주는 유일하게 방문이 허가된 의사인 정영에게 ‘조씨고아’를 맡긴다. 정영이 선뜻 공주의 말을 따른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45살이 되어서야 얻은, 아직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들과 어여쁜 부인이 있어 위험한 일은 할 생각도 없었다. 비록 조 씨 가문을 드나들며 도움을 받은 것은 맞지만 그 가문의 일이 안 됐다고 생각만 할 뿐 어떤 힘도 쓸 수 없는 평범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공주는 이런 정영에게 아이를 떠맡긴 후 자결한다. 이 죽음이 끝이 아니다. 몇몇 사람들이 정영에게 조씨고아를 맡기며 목숨을 버린다. 그 약속의 무게가 정영을 짓누른다. 그 무게는 마침내 정영이 조씨고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버리는 선택까지 하게 만든다. 그러니 정영이 이렇게 울부짖는 것도 이해가 된다.


도대체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도무지 마음이 흔들려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조 씨 집안의 대는 끊기면 안 되고 제 집의 대는 끊겨도 되는 건가요? 입은 은혜가 아무리 하늘 같다 하더라도 귀한 제 자식을 어찌 이렇게 버린단 말입니까?


인터미션이 끝나면 20년 후의 상황이 펼쳐진다. 정영은 진실을 들려주지만 조씨고아는 믿지 않는다. 복수를 위해 가족과 20년의 세월을 바쳤건만 아직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영은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팔 한쪽까지 내놓는다. 드디어 복수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늙고 노망이 난 영공은 이번에는 조 씨 가문의 손을 들어준다. 조사도, 증거도, 정의도 필요 없다. 이번에는 도안고의 집안이 철저히 도륙된다.




이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은 정영의 부인이다. 원작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부인은 정영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아이를 지킬 힘도 없다. 최선을 다해 남편과 싸워 아이를 지키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이지현 배우는 차분하고 서늘하게 정영의 부인을 표현했다. 정영과 그의 처가 아이를 두고 다투는 광경은 모질고 슬프다. 정영이 조씨고아를 들어 올리는 1막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극을 통틀어 가장 압권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채 복수를 지켜보게 되는 정영이라는 인물을 하성광 배우는 가슴 먹먹하게 연기했다. 결국 이 복수는 누구를 위한 복수였을까? 무려 20년 동안 준비된 복수를 끝낸 후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늙고 팔 한쪽마저 잘라져 붉은 피가 뚝뚝 흐르는 몸으로 그는 돌아선다. 그리고 나타난 묵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소리 피리소리에 맞추어 놀다 보면
어느새 한바탕의 짧은 꿈
갑자기 고개를 돌려 보면 어느새 늙었네.

이 이야기를 거울삼아 알아서 잘들 분별하시기를.
이런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이 작품은 중국 경극의 내용을 우리에 맞게 고쳤을 뿐 아니라 무대의 형식까지 현대적으로 수정했다.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이야기 중간중간 나오는 과장된 몸짓과 대사들 때문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어쩌면 이런 희극적인 요소들이 슬픔을 더욱 강화하는 장치였는지 모르겠다. 이 강렬하고 아름다운 무대는 12월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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