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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03. 2023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 연극 [컬렉션]

무대에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벽난로가 타오르고 샹들리에가 켜진 상류층의 거실과 초록색 소파가 놓인 중산층의 거실이다. 두 공간 사이 마치 닥터 후가 튀어나올 법한 붉은 공중전화 부스가 보인다. 음악과 함께 정형화된 걸음걸이의 사람들이 무대를 향해 걸어 나온다. 패션쇼의 한 장면 같다. 잘 컬렉션 된 옷을 입은 그들은 관객들 앞에서 자세를 취한 후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연극 [컬렉션]이 시작된다.




이 연극은 영국 작가 헤롤드 핀터(Harold Pinter)가 1961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헤롤드 핀터라면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무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와 함께 부조리극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부조리극’이란 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되고 참혹해진 세상을 바라보며 인생에는 의미나 목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무대 위에 구현하고자 한 장르다. 무대 밖 세상은 전쟁으로 모두 파괴되었고 인간성도 의미도 명분도 다 사라졌는데 기존의 형식과 질서를 따라갈 수는 없다. 때문에 부조리극에서는 기승전결이라는 형식도 서사의 플롯도 남아있지 않다. 바로 이 작품 [컬렉션]처럼.




무대 왼편에 자리한 이층 집에는 해리와 빌이 살고 있다. 해리는 50대의 사업가다. 그와 함께 살고 있는 빌은 20대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재능 있고 아름답다. 이미 의류업으로 성공한 남자인 해리는 빌을 발탁해 지원하고 키워서 디자이너로 고용하고 있다. 무대 오른편의 세트에는 부부가 산다. 결혼한 지 2년쯤 된, 아직은 신혼인 부부로 아내 스텔라는 디자인 부분을, 남편 제임스는 사업 부분을 맡아 새롭게 사업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시끌시끌하고 화려한 패션쇼가 끝난 후 제임스는 빌을 찾아간다. 패션쇼에는 빌과 스텔라의 작품이 모두 선을 보였고, 때문에 두 사람은 그곳까지 출장을 갔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우연히 같은 호텔에서 묵었던 빌과 스텔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따져 묻기 위해 제임스는 빌을 찾아온 것이다. 이제 주장과 추측의 영역이 펼쳐진다. 빌과 스텔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관객은 빌과 해리, 제임스와 스텔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밤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추론해야 한다. 그들은 잤을까? 이야기만 나웠을까? 짧은 키스를 나눴을까?


잠깐만.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할까? 빌이 스텔라와 잠을 잤던 스쳐지나갔던 관객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눈앞 보이는 - 해리가 빌에게 명령하는 모습, 제임스 앞에서 빌에 대해 떠드는 해리의 이야기, 제임스와 스텔라가 나누는 거친 대화- 것들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을 몸으로 겪어냈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보라!”라고 이미 우리에게 알려준 바가 있다. 관객은 네 명의 등장인물이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현실을 봐야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추측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세상이 어차피 의미가 없는 것처럼.




예매처에 올라온 포스터를 보고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극장을 찾았다. 원작자가 헤롤드 핀터인지 부조리극인지 극장에 도착해 가이드북을 읽을 때까지 알지 못했다. 혹시 나처럼 사전 정보 없이 예매를 하고 (심지어 나와 다르게) 가이드북도 보지 않고 극을 만나는 분들이 있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당황할 것 같다.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 ‘앗, 부조리극이 시작되겠구나’ 마음을 다잡은 나조차 극이 시작된 후 당황했다. 배우가 등장하면 관객은 알아서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나이, 직업 등을 판단한다. 그 바탕 위에 진행되는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인물들 간의 관계나 갈등도 모두 이런 정보의 바탕 위에서 이해된다. 어떤 작가도 50대의 게이 커플과 50대와 20대의 게이 커플을 동일한 의미로 그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원조 배우는 20대의 매력적인 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염색을 하고 몸짓 하나 손짓 하나까지 신경을 썼다. 20년의 세월을 거스르려는 시도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이해할 만한 수준이었다. 해리역의 김신기 배우는 특별한 분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해리 그 자체였다.


문제는 제임스와 스텔라였다. 극 중반이 되어 ‘결혼한 지 2년’ 됐다는 대사가 나왔을 때, 그때까지 이해하고 있던 내용을 전부 수정해야 한다는 당혹감이 들었다. 50대의 강신구 배우에게 30대의 제임스 역할은 무리였다. 이렇게 한번 정신이 엉클어지고 나니 스텔라 역의 최나라 배우가 목청을 높인 들 잘 이해될 리가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이드북을 찬찬히 읽어보니 ‘서울시극단 배우만으로 공연되어지는 첫 작품 <컬렉션>’이라는 사뭇 자랑스러운 어조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강신구 배우가 제임스가 되어야 했던 이유가 이런 것이었다면 아쉽다. 소 잡는 칼을 닭 잡는데 쓴다는 속담은 이런 생황에 쓰는 건 아닌 듯하지만 느낌은 그렇다. 뭔가 잘못된 옷을 입혔다.


그럼에도 이 연극을 볼만한 가치는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시전 되는 계급혐오나 여성혐오, 남녀갈등의 문제를 바라보며 생각을 곱씹을만하다. 혹시 이 글을 읽은 뒤 연극을 보러 가시는 분이 있다면 ‘제임스와 스텔라는 30대 신혼부부다’를 주문처럼 외우며 시작을 기다리시길. 이 작품은 12월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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