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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22. 2023

용서의 조건

-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면에서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경우 마들렌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제외한 줄거리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반면 [몬트크리스토 백작]의 줄거리는 알려져 있다. 젊은 남자 주인공이 친구와 동료의 배신으로 감옥에 갇힌 뒤 탈출하여 복수한다는 거친 기승전결 말이다. 정확히 주인공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사연으로 감옥에 가게 되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이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과는 조금 다르다. 400 페이지가 넘는 책 다섯 권으로 구성된 이야기 속 인물들을 짧은 뮤지컬 속에 욱여넣을 방법은 없다. 인물을 추려내고 사건은 압축했다. 하여간 젊은 주인공이 모함에 빠져 고난을 겪다 복수를 하는 결과만 동일하면 된다. 책을 한 자도 읽지 않은 우리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똑같이.




거대한 나선 모양의 무대가 중심이다.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의 어릴 적 직업이 선원이었던 만큼 무대 위에는 범선 모양의 조형물이 관객을 맞이한다. 발코니처럼 꾸민 작은 무대들이 보조로 사용된다. 나선형의 무대는 위, 아래, 옆으로 소용돌이치고 움직인다.


항해 중 병든 선장을 구하기 위해 2등 항해사였던 단테스는 다른 선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바섬에 상륙하기로 결정한다. 섬의 의료진에게 선장을 보여주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대신 엘바섬에 유배 중이던 나폴레옹의 편지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 나온다.


선장은 사망하고 선주인 모렐은 단테스에게 후임 선장직을 맡긴다. 좋은 일은 어깨동무를 하고 오는 법. 승진의 기쁨과 함께 아름다운 사랑도 결실을 보기 직전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메르세데스와의 약혼식 전날 에드몬드 단테스는 끌려가 샤또 디프라는 감옥 섬에 갇힌다. 그곳에 온 이유도,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14년이 흐른 후 복수가 시작된다.




길고 긴 소설 속 이야기가 집약된 뮤지컬이니 사건의 전개는 빠르다. 이렇게 훅 끝내도 되는 거야? 싶을 정도의 속도감이다. 중간 이야기를 듬성듬성 지나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쉽게 짐작이 된다. [지킬 앤 하이드]나 [데스노트], [웃는 남자]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작곡한 곡들은 아름답고 드라마틱하지만 그만큼 익숙하다. 2010년 초연 이후 몇 번째 무대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된 작품이라 마음만 먹는다면 유튜브나 다른 수단을 통해 한번쯤 혹은 한 부분쯤 이미 본 무대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조합되면 결론은 하나다. 이 뮤지컬은 새롭지 않고 별다른 자극을 기대할 수 없으며 매우 안정적이다.


무대와 의상은 화려함을 지향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견주어 관객의 눈길을 잡아두기는 힘들다. 무대 장치도, 군무도 크게 눈을 사로잡지 못한다. 이야기는 마치 넓이 뛰기 선수의 보폭처럼 달려가고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복수는 성공했겠거니 하고 이해하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없다.




하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이전 무대 때 별다른 감흥 없이 스쳤던 대사 몇 개가 새롭게 귀에 꽂혔다.


나폴레옹의 편지를 엘바섬 밖으로 유출시켰다는 혐의로 단테스는 검사 빌포트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는다. 당시 프랑스의 왕은 루이 18세였지만 축출된 나폴레옹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건재하던 시기였다. 왕과 나폴레옹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물음에 단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전 정치적 입장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배를 타는 선원일 뿐입니다.”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이제 확실히 알게 됐나, 단테스? 그건 그렇고 단테스의 무죄를 알고 석방하려던 검사 빌포트는 편지의 수신자가 자신의 아버지이고, 만일 사건이 발각될 경우 아버지와 자신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 커다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자 재빨리 입장을 바꾼다. 무고한 단테스를 자신의 가족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기로 결정한 것이다. 검사의 가족 사랑은 한 남자의 일생을 파멸시켰다. 뭐 그렇다는 거다.




뻔한 뮤지컬을 비싼 돈 주고 보러 간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김성철 배우 때문이다. 1부의 마지막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을 들으면서는 소름이 돋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매력 넘치는 배우 같으니라고. 뮤지컬은 가창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정이다. 처절하고 비탄에 잠겨 복수를 외치는 단테스의 노래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느라 조금은 늘어져 있던 극의 몰입도를 한 번에 잡아주었다. 메르세데스 역의 허혜진 배우는 아름다웠고 루이자 역의 박은미 배우는 매력적이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 흐른 후 돌아와 복수에 성공한 단테스는 회한에 찬 노래를 부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너머 고통은 끝나고 희망만 남아’라고 말한다. 복수 대신 용서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처럼 용서란 당한 자의 마음이 풀린 다음에야 이루어진다. 단테스가 고통을 끝내고 희망이란 것을 떠올렸던 것처럼 모든 경우 희생자의 고통이 뭉툭해짐과 동시에 어떤 종류의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을 경우에만 ‘용서’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다. 용서란 쉬운 것이 아니다.


뻔한 이야기를 바라보며 야릇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또 희한한 경험이다. 예상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은 김성철 배우뿐이다. 김성철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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