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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May 23. 2021

정글<THE JUNGLE>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2015년 ‘에이란 쿠르디’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세 살 어린이의 시신이 터키 해변에서 발견되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시리아 북부에서 살던 쿠르디는 IS와 쿠르드족 민병대간의 전투를 피해 터키로 탈출하려다 배가 뒤집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유럽 각국은 옆 나라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007 빵’ 게임 같은 광경이었달까. 하지만 전쟁을 피해, 학살을 견디지 못해, 파탄난 경제 때문에 자신의 나라를 탈출한 사람들이 유럽의 부유한 나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프랑스 북쪽, 날씨가 좋으면 육안으로도 영국이 건너다 보이는, 도버 해협과 접하고 있는 칼레가 이 연극의 배경이다. 지난 시간 프랑스의 영토였던 적도 영국의 땅이었던 때도 있던, 자체의 역사만 봐도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이 지역에 난민 수용소가 있었다.


1999년 무렵, 아프가니스탄, 수단, 에티오피아, 시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이 영국 행을 기다리며 칼레로 모여들었다. 열악한 시설들이 들어섰고, 거주자의 숫자도 늘어났다. 난민들이 칼레까지 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사막을 횡단하기도 하고, 사기와 납치, 폭행을 당하고, 가족을 잃고 혼자 남겨지기도 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이 지역을 아프리카 어로 ‘장갈’, 영어로는 ‘정글’이라고 불렀다.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인구가 불어나면 범죄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진다. 캠프 밖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치안에 문제가 많다는 칼레 시민들의 불만이 늘어갔다. 프랑스 정부는 2016년 칼레의 캠프를 무력으로 철거했다. 프랑스 정부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았을 것이다. 한 해 전 ‘에이란 쿠르디’의 죽음으로 잠시 생겼던 동정 여론은 더 이상 없었다.




조 머피(Joe Murphy)와 조 로버트슨(Joe Robertson)은 2년 동안 이 캠프에 머물며 얻은 경험과 이야기로 이 극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허구’지만, 어쩌면 실제보다 훨씬 생생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2020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선보였고, 이번이 두 번째 무대다.


입장을 하면, 니틴 소우니의 Immigrant라는 노래가 관객을 맞는다. 무대 안쪽으로도 관객석이 마련되어 있어 몇몇의 배우들이 미리 나와 안내를 돕는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두지 않는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er)’이다. 막이 오르면 배우들은 관객과 함께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전달 사항을 말한다. 그러니까 모든 관객은 난민이다. 칼레의 정글에 거주하는 난민의 한 명이 되어 그들이 말을 경청해야 한다.




무대는 식당이다. 영국군이 세 번이나 자신의 마을을 초토화시켰지만 용케 탈출한 아프가니스탄 사람 ‘살라’가 그곳의 주인이다. 허름한 난민촌의 되는대로 지은 식당이지만, 영국 신문에 훌륭한 식당으로 소개가 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수많은 나라에서 모여든 난민촌답게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살라의 식당에 모여 당면한 문제를 의논하고 협의한다. 그들을 돕기 위해 영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자리를 잡고 있다.


극 중 리비아에서 온 사피의 말처럼 “함께 사는 것은 힘들다”.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도 힘든데,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심지어 옆 텐트의 사람이 떠나오기 전 전투를 벌이던 상대일 경우도 있다. 극도로 좁은 공간에 몰아져 있고, 앞날에 대한 희망은 가늘기만 하다.


절대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들처럼, 그들은 영국을 희망하고, 영국을 말하고, 영국을 기다리지만, 그곳으로 가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충분히 힘들지만, 다시 한 해를 같은 곳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은 소름 끼치도록 두렵다.




그들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암담함일 것이란 느낌만 있다. 극 중 영국의 자원봉사자 베스에게 수단에서 온 오롯이 했던 날 선 물음은 그러니까 내게도 적용된다.


“이해한다고? 날 이해할 수 있다고?”


맞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아마 우리 중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작지만 큰 무대 앞으로 모여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난민이기 이전에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묵직한 주제이고 실제 칼레의 난민촌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보니, 이 연극이 마냥 즐겁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가볍게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은 금물이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결연한 자세로 극장에 들어서야 한다. 그래야 190분의 여정을 견딜 수 있다.


배우들이 누구랄 것 없이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서 잠시도 지루할 짬이 없다. 내가 관람한 것은 첫날 공연이었는데, 저렇게 온 힘을 다 갈아 넣어 연기를 하면 남은 일정을 어쩌려나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어둡고 답답한 난민촌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환하게 만들어 그들을 이해하게 도와주는 것은 오롯이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기는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이해하는 폭이 조금은 넓어진다.


그들은 익숙한 집을 버리고 떠나왔다. 사피의 말처럼 “공간은 언제 장소가 되고, 장소는 언제 집이 될’ 수 있을까? 그들에게 그런 시간은 올까? 그들도 그들의 미래를 알지 못했다. 우리 역시 그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마음을 열고 그들의 말을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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