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에는 외계인의 침략에 맞서 지구를 구하는 천재과학자 진과 오기가 등장한다. 가족보다 가까웠던 친구의 죽음 때문에 절망해 약을 찾는 진에게 오기는 ‘NO’를 외치며 말한다.
“보드카를 마셔, 깔짝대지 말고.”
그러니까 오기는 적어도 약보다는 술이 진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데 효과가 좋고 몸에 덜 해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기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알코올 분자의 화학식 따위는 만취한 상태에서도 읊을 수 있는 천재 과학자다. 그러니 그의 말은 신뢰할 수 있다. 술꾼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당히 바람직한 결론이다.
당신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일단 당신의 몸에 알코올 분해 효소가 있다고 가정하겠다(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는 분들에게 술은 권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어색한, 하지만 막역한 사이가 되어도 괜찮다는 느낌이 드는 누군가를 떠올리기 바란다. 그것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하기 힘든 관계이든 상관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술에 관한 것이지 인간관계가 아니다.
길을 걸으며 그(혹은 그녀)와 매끄럽게 풀리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다 답답해진 당신의 눈에 문을 연 술집이 보인다. 아직은 한낮의 태양빛이 조금 남아 있는 시간이다. 저녁을 먹기에 조금 이른 시간쯤 됐을 것이다. 메뉴판 앞쪽에서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고른 후 뒤페이지에 적힌 술 리스트 중에서 적당한 것을 주문한다.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이거나 갈색 병에 담긴 맥주일 가능성이 높다. 적당하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이 나오고 각자의 잔에 술을 담는다.
초록 병의 액체이든 갈색 병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든 일단 몇 잔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먼저 반사 신경이 무뎌진다. 처음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상대가 어느덧 가까이 다가앉아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당신의 어깨를 멍이 들 정도로 두들겨도 웃음으로 반응할 수 있다. 물론 당신이 그의 허벅지를 가격해도 같은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다음엔 혀가 풀린다. “술 마셩, 마시라굴” 같은 취하지 않은 정신으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문장들을 잘도 내뱉게 된다. 그다음엔 운동신경에 문제가 생긴다.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멀고 굽이진 것처럼 느껴지면 이제 술판을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당신들은 술집 문을 들어설 때의 당신들이 아니다. 근거를 알 수 없는 친밀한 기운이 두 사람 사이를 감싸고 있을 것이다. 딱 여기까지가 좋다. 거기서 한 병만 더 마시면 ‘다시는 저 인간과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알코올을 흡수했을 때 지금의 우리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른 시대, 다른 대륙, 다른 인종의 사람들도 대동소이했다.
기원전 4000년경 후반 메소포타미아에서 맥주를 마시던 수메르인 농부들도,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을 마시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푸르른 계절 동안 땀 흘려 보리와 홉, 포도 같은 것들을 재배해 술을 만들었다. 이들의 머리 위를 비추던 찬란한 햇빛과 머리칼을 스치고 지났을 바람, 이들의 몸을 지탱하던 땅의 단단함과 동일한 기운이 이들이 만든 술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사제도, 그리스의 귀족도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 시를 읊다가 점점 흥분하여 광란의 상태에 도달하곤 했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엔키두는 이난나 여신과 술을 마신 후 낮의 기쁨과 밤의 환락에 눈을 뜬다. 학술단체 같은 곳에서 주최하는 ‘심포지엄’은 그리스의 ‘심포지온’에서 유래했다. ‘심포지온’이란 그리스 남자들이 개인집에 모여 앉아 정신을 잃을 때까지 와인을 마시던 모임을 말한다. 아무튼 인간의 역사에서 술이 빠지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만의 특징일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초파리도, 쥐도, 코끼리도 술에 취한다. 술 취한 초파리는 기괴한 춤을 보여주는 정도로 술주정을 끝내지만, 술 취한 코끼리는 지켜보던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심지어 쥐의 경우는 머리가 좋을수록 술을 더 많이 마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Out of your head, New scientist, 2002.05.18 기사). 영리한 과학자인 오기가 진에게 술을 권한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술집으로, 그곳에 앉아있는 당신의 상상으로 돌아가자. 당신과 상대의 얼굴은 붉게 변했을 것이고 어눌해진 발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한껏 깍듯했던 말투는 좀 더 부드럽게 바뀌었으며 어쩌면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손을 잡게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말한 그곳에서 멈췄다면, ‘한 병 더’를 외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랬길 바란다.
한껏 친밀해진 상대와 어깨동무를 하고 술집을 나오다 어떤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농부들은 자신들이 키운 보리로 만든 맥주를 마시고 만취했고, 그리스의 시민들은 뜨거운 지중해의 햇빛 아래 붉게 변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인해 흥겨워졌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리고 그 상상의 술집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공장에서 만든 초록색, 혹은 갈색 병의 액체에 만족해야 했을까? 우리를 이루고 있는 햇빛과 땅, 물과 공기에 가까운 술은 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일까?
물론 우리에게도 그런 술이 있다. 한반도에서 농사가 시작된 신석기 중기 때부터 조상들은 술을 만들어 마셨을 것이다. 안 그럴 도리가 없다. 그들은 온 힘을 쏟아 쌀과 잡곡 같은 것을 재배하고 그것을 수확해 술을 만들었을 것이다. 술을 만드는 방법은 그 자손, 그다음 자손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1909년 무렵에는 각 가정에서 각자의 술을 담는 것으로 모자라 만오천 개가 넘는 양조장이 흥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된 것일까?
등 뒤로 술집 문이 닫히며 내는 딸그랑 소리가 사라질 즈음 당신은 상대에게 이런 말을 건넬지 모르겠다.
“다음에 만나면 전통주를 마셔 볼까요?”
음, 두 번째 데이트를 신청하기에 적당한 문장이다. 두 사람에게 디오니소스(Dionysus)의 가호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