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 쓴 소설 중 <바스커빌가의 개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는
추리 소설계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명탐정인 셜록 홈스와 그의 친구 닥터 왓슨이 영국의 다트무어라는 시골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것이 주된 줄거리다.
소설의 시작은 바스커빌가의 조상 중 하나였던 휴고 바스커빌로 올라간다. 과거 휴고가 저지른 악행이 대를 이어 그 후손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고뿐 아니라 찰스, 헨리 등 바스커빌 가의 후손들과 그들의 하인, 동네 주민의 이야기가 모두 등장한다. 도무지 어디에서 관련이 지어질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셜록 홈스의 날카로운 추리와 직관 아래서 퍼즐처럼 맞춰지는 작품이다.
이 연극 [바스커빌 : 셜록홈스 미스터리]는 바로 그 작품 <바스커빌가의 개>의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왔다. 원작과 다른 결말도, 반전도, 새로운 인물도 없다. 전부 아는 이야기이고,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하는 딱 그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이 연극 [바스커빌: 셜록 홈스 미스터리]의 작가는 코난 도일이 아닌 켄 루드윅(Ken Ludwig)이다. 켄 루드윅이라면 셰익스피어, 아가사 크리스티, 루이스 스티븐슨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자신만의 독특한 코미디로 재 탄생 시킨 작가다. 전설의 개가 등장하고, 음침한 바스커빌 가의 역사와 살인과 음모가 난무하는 이 작품도 켄 루드윅의 손을 거치면 멋진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갖고 극장을 향했다.
단차가 있는 무대에는 1인용 의자와 두어 명이 걸터앉을 수 있는 또 다른 의자가 놓여 있다. 빈 무대 만으로는 그곳이 어디인지,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연극을 보기 전 관객이 지켜야 할 주의 사항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고 귀족처럼 보이는 남자와 심하게 등이 굽은 노인이 무대에 등장한다. 두 사람이 선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런던인지, 다트무어인지, 텍사스인지, 그도 아니면 서울인가? 어지간하면 자막으로라도 그곳이 어느 곳이며, 어떤 순간인지 알려줄 법도 하건만 이 연극은 이 모든 것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마치 '아, 연극 보러 오셨잖아요. 뭐 연극이란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연극이란 정해진 약속 대련 같은 것이다. 제작자들은 빈 무대 위에 시간과 공간을 구현한다. 19세기 영국 귀족의 저택이 될 수도, 15세기 조선의 규방이 될 수도 있다. 관객들은 만든 이들의 환상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래봐야 곧 있으면 쓰러져버릴 가냘픈 가림막이라고 해도 약속대로 기꺼이 속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극은 말하는 것 같다. '그럴 필요가 뭐 있어? 우리는 연극을 하는 것이고 관객은 그저 즐기면 돼. 뭐가 문제야?'
줄거리는 코난 도일의 작품을 따라 진행되지만 또 그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셜록 홈스와 왓슨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을 단 세 명의 배우가 해낸다. 심지어 한 배우는 옷 갈아입는 것이 힘들다며 셜록 홈스 역의 배우에게 배역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즉 이 연극은 기존 연극이 보여주던 모든 문법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그것들을 영리하게 코미디의 영역으로 끌어온다. 관객들 역시 약속을 잊고 배우들의 대사에 웃음을 터뜨린다.
대사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건망증 심한 모티머 박사로 극 초반에 등장한 무현 배우는 심하게 등이 굽은 집사인 존 베리모어로 또다시 검은 턱수염의 사나이가 되었다 나비를 잡는 잭 스태플턴으로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의상도, 분장도, 말투도 달라진다. 한 배우가 수많은 배역을 맡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감추지 않지만 그 사실을 코미디의 요소로 사용한다. 관객석에서는 어김없이 웃음이 터졌다.
가벼운 코미디로 광고를 했기 때문인지 보기 드물게 어린이를 동반한 관객들도 많았다. 가족의 달에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작품이라면 어린이를 동반하기도 딱이다.
작가가 아무리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었더라도 그것을 무대에서 구현해야 하는 배우들의 능력이 없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홈즈 역의 정다희 배우는 과장되고 매력적인 셜록 홈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은 무대에서 만나는 정다희 배우의 연기는 반갑고 아름다웠다.
왓슨 역의 송광일 배우는 연극 내내 무대 위에 머물렀다. 잠시도 사라질 틈이 없었다. 소설 [바스커빌가의 개]의 진정한 주인공은 왓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송광일 배우는 분량 부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손을 뻗으면 배우들이 만져질 수도 있는 거리에서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연기를 보이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역시 프로는 프로다.
도대체 몇 가지 배역을 맡았는지 다 셀 수도 없는 무현, 김효서, 진초록 배우의 노고에는 기립박수를 보낸다. 한 회가 끝나면 다 탈진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배우들의 역량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다른 배우들이 출연하는 회차는 분명 또 다른 재미가 있을 연극이다.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웃고 싶은 날, 이런 코미디를 선택하면 어떨까. 이 작품은 6월 9일까지 예스24아트원 3관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