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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ul 10. 2024

어둡고 차가운 복수의 끝

-국립극단 <햄릿>

습하게 내려앉은 무더위를 뚫고 걸었다. 객석 좌석마다 무릎 담요가 준비되어 있었다. 누군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면, 그것에 합당한 의도와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당장은 담요가 필요하지 않아 어정쩡하게 손에 쥔 채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스모그가 엷게 피어오르고 우산을 든 배우들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무대 위에서 찰랑대는 물이 보이고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졌다. 국왕의 장례식에 어울리는 비통함과 암울한 기운이 객석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새로운 국왕 클로디어스와 왕비 거트루드의 결혼식이 곧바로 이어진다. 찰랑이는 물 한가운데 클로디어스의 옥좌가 놓여 있었다. 옳거니, 이 연극은 물로 시작해서 물로 끝이 난다. 결혼식 장면이 끝나기도 전 담요가 필요할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정진새 작가가 각색한 이 연극 역시 원작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왕이 갑자기 사망한 후 선왕의 동생이던 클로디어스는 형수였던 거트루드와 결혼하고 왕이 된다. 원작과 다른 곳이 있다면, 국왕이 죽을 무렵 공주인 햄릿은 해군장교로서 군함에 탑승 중이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햄릿이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정진새 작가의 햄릿 쪽이 훨씬 더 그럴듯하다.


햄릿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형을 죽인 클로디어스에게도 의도가 있다. 시동생과 결혼을 선택한 거트루드에게도 이유가 있다. 선대의 왕과 지금의 왕 모두를 모시고 있는 폴로니어스는 본심을 숨긴 채 웃는다. 즉 이 연극 속 인물들의 속내를 알고 나면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고 콕 집어 말하기 곤란해진다. 마치 우리 인생이 그런 것처럼.


이 연극의 배경은 ‘어느 때, 어느 곳’이다. 17세기 덴마크가 배경이었던 원작과 달리 햄릿이 살고 있는 시대도 분명치 않다. 다만 어느 시간이든 햄릿이 살고 있는 나라는 침략과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선왕은 어느 나라와는 전쟁을 벌이고, 또 어떤 나라와는 조약을 체결하며 아슬아슬하게 나라를 이끌어 왔다. 이 또한 지금의 우리 상황과 별다를 것이 없다.


클로디어스에게는 모든 상황을 자신의 입맛대로 만들어 줄 ‘조사위원회’가 있다. 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상황 자체를 만들어 줄 ‘오즈릭’ 같은 인물이 있다. ‘오즈릭’은 원작에는 없는 인물이다. 17세기에 없던 인물이 21세기에는 필요해졌다. 당연히 오즈릭이라는 인물은 극 중 어떤 인물보다 현실감이 있다. 마치 뉴스 뒤편 세계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즈릭 같은 인물에게는 진실이 없다. 오즈릭이 만드는 것이 진실이다. 더 이상 눈앞의 <햄릿>이 고전 희곡 <햄릿>으로 보이지 않았다.




국립극단이 만든 <햄릿>은 어둡고 음산하다. 물로 표현되는 차가운 분위기에 더해 흐릿한 조명으로 모든 상황을 어렴풋하게 만들어 버린다. 과연 선왕을 죽인 것이 폴로니어스가 맞는지, 혹은 그가 주장하는 다른 이유인지 쉽게 단정 짓지 못하게 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 가장 유명한 대사는 이 작품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원작과는 달리 다른 인물도 이 대사를 말한다. 그의 말(‘그’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은 커다란 스포일러에 해당할 것이므로 말하지 않겠다) 역시 진정성이 느껴진다. 우리 역시 매번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번민한다. 이 연극은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이 꼭 햄릿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모든 배우와 함께 ‘물’이 하나의 배역처럼 느껴질 정도다. 계속 찰방찰방 소리를 내고 위에서 쏟아진다. 객석까지 물이 튀지는 않지만 차가움이 전해진다. ‘복수’란 모름지기 차갑고 음산한 것인지 모른다. 성공했다고 해도 즐거움을 장담할 수 없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따라온다. 조금의 만족은 커다란 위협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원작에 충실한 구조이지만 원작과는 아주 다른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와 의상만 그런 것은 아니다. 티브이 뉴스를 통째로 보고 있는 기분을 시종일관 느꼈다. 이런 것을 동 시대성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색을 통해 극 중 모든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숨 쉬게 되었다. 부새롬 연출가와 작가의 조합이 탁월했던 것 같다.


햄릿 역의 이봉련 배우는 바로 이 작품으로 2021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기상을 탔다. 하지만 클로디어스 역의 김수현 배우나 플로니어스 역의 김용준 배우의 연기도 그에 못지않다. 많은 배역을 쉴 새 없이 해 낸 모든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분들도 반드시 옷 한 벌을 준비해 가시기 바란다. 극장 측이 제공하는 무릎 담요로도 버티지 못할 수 있다. 현재를 고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이 연극은 7월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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