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괜찮지 않습니다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by 지안

어제, 집 구하는 일로 부탁해 놓은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오전에만 집을 볼 수 있다기에 쌓인 일거리를 남겨둔 채 서둘렀다. 삼십 대 초반의 남자인 사장은 싹싹하고 말의 끊김이 없었다.


“여긴 밤에 골목이 위험할 것 같아요.”


대지 지분도 많고, 같은 평수 대비 구조가 쓸모 있게 나온 집이라며 칭찬하던 사장이 잠시 주춤하다 말을 이어갔다. CCTV도 달려 있는 골목이 위험할 것이 뭐가 있냐는 주장이었는데, 본인도 옹색하게 느껴졌는지 이미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빠져 있었다. 위험한 골목이니 CCTV가 붙어 있는 것이다. CCTV로 백날을 찍은 들, 그래서 험한 일을 당한 후 범인을 잡아낸들 무슨 소용인가.


그는 한 집 더 볼 수 있다며 앞장을 섰다. 큰길 옆이고, 남향이어서 볕도 잘 드는 집이며, 무엇보다 작년 말 수리가 된 집이어서 인테리어가 빼어나다는 말을 덧붙였다.


“미안하지만 1층은 안 되겠어요. 여자만 사는 집인데 불안해요.”


이번에는 사장도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광도, 뷰도, 경제적인 것도, 편리한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첫 번째 요소는 안전이었다.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인사를 하던 사장이 마지막에 덧붙였다.


“이번에는 최대한 안전을 고려해서 찾아보겠습니다. 그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다른 모든 조건이 훌륭해도 안전하지 않다면 선택할 수가 없다

개업한 지 한 달 남짓 되었다는 사장과 그렇게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왔다. 부엌 테이블 위에는 급하게 나가느라 던져두었던 식재료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절도 쉬지 않는 회사 덕분에 차례는 듬성듬성 지내지만, 부친의 제사는 챙겨 왔다. 귀신이 찾아와 흠향할 것이라는 찰떡같은 믿음 때문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남편 제사는 지내겠다는 모친의 의연함 때문이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만들고 탕을 끓이고 한바탕 부산을 떨고 보니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부친의 사진을 보며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열서너 살 때이지 싶다. 온 가족이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예전엔 살기가 더 어려웠다는 고생담이 나열되고 있었다. 오빠를 낳은 직후에는 살림이 어려워 모친이 몸조리도 제대로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다면 왜 아이를 더 낳게 되었느냐는 당연한 물음에, 부친이 음식을 씹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딸을 낳고 싶어 낳았겠냐? 생겼으니 할 수 없이 낳은 거지.”


그 날 나는 처음으로 가출을 결심했고, 자정 직전, 친구 집을 수소문하던 오빠의 설득 끝에 퉁퉁 부은 눈으로 귀가했다. 현관에 들어섰을 때, 안방에 있었을 부모님은 기척조차 없었다.


이만큼 나이를 먹은 마당에 그때 일을 곱씹으며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제사상을 차리는 입장에서 원한을 담아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일은 ‘그 시간 이전과 이후의 나’로 구분될 정도의 상징적 순간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딸’, ‘여자’라는 보통 명사 하나로 뭉뚱그리고 나면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규정되는지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아버지의 입을 통해 확실하게 알아버린 것이다.


‘네 얘기는 약과’ 라며 더한 대접을 받았다는 여성(대개 여자 형제들이 많은 집안이었다) 들을 꽤 많이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지 내 얘기는발의 피다’라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적도 많다.


인류 최고의 민주주의 사회로 평가되는 그리스에서도 ‘여자’와 ‘노예’는 예외였다. 미국의 흑인 남성이 선거권을 획득한 것은 1870년 대지만, 백인 여성이 선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1920년대에 들어서다. 그런 옛날과 비교하면서 ‘요즘은 여자들 세상이 되었다’는, 정말이지 코웃음도 안 나오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건물 화장실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목숨을 걸어야 하고’, ‘나의 안전을 위해’ 그 밖의 장점 같은 것은 능히 무시할 만한 사회에 살고 있다. 출산율을 올리는 방법으로 고학력, 고소득 여성들이 성토되고, 가임기 여성을 따로 떼어내 지도로 만들 정도로 무지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강간과 여성의 복장에 대한 상관관계를 논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숨이 아까울 정도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서 사는 것, 정말이지 괜찮지 않다. 힘들다.

모두에게 만족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감기가 걸려 잔뜩 잠긴 목으로 출근했을 때 옆자리의 나이 지긋한(그리고 꽤 친한) 남자 선배가 한마디를 던졌다. 회사 노는 날에 집에서 안 쉬고, 뭘 하고 돌아다녔길래 그렇게 됐느냐는 말이었다. 딱히 의도가 있는 말은 아니었고 오히려 걱정해주는 말이었는데, 상태가 상태이다 보니 대답이 딱딱하게 튀어나왔다.


“선배는 휴무일이면 와이프가 청소한 깨끗한 집에서 와이프가 해주는 밥 먹고, 등산하고, 축구나 하다가 출근하지? 난 꼴랑 그 쉬는 날에 집 청소하고 노모 밥 해드리고, 딸 특식 만들어 먹이고, 심지어 제사상도 차리다 출근하거든? 나도 와이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내 반응에 놀란 선배는 잠자코 앉아 있다 한참 만에 자리로 찾아와 ‘고생한다’며 유자차 한잔을 내밀었다. 정말이지 괜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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