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를 생각하다
“공 CD 있으세요?”
옆자리 직원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관에 제출할 것이 있는데 반드시 CD로 만들어 오라고 했다’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신입직원에게 시선이 머문 것을 확인하고 내가 말했다.
“꿈도 꾸지 마. 저 친구는 CD가 뭔지도 모를 거야.”
옆자리 직원과 신입은 의문부호와 감탄사를 합한 몇 개의 문장 끝에 간신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까지는 합의를 보았다. 물론 원하는 공 CD를 손에 넣을 수는 없었지만, ‘세대 차이’를 격하게 느낀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었겠지.
밥보다 흔해서 누구나 알던 것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전혀 볼 수 없던 물건이 전면에 등장해 ‘사용설명서’를 들추며 한숨을 쉬게 만들기도 한다. 카세트테이프에 대해 떠들어야 할 때 20대가 느끼는 느낌과 손가락이 안 보이도록 빠르게 움직이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돌리는 20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다른 듯 비슷할 것이다. 또 같은 일인데 시간에 따라 완전히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파마와 컬러 염색.
흰머리를 검게 염색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이다(일설에는 이집트 때에도 검은 머리를 만드는 기술은 있었다고 하니까). 해방 이후에는 신문에 실린 염색약 광고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지만, 검은 염색조차 지금처럼 당연시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여자들은 대다수가 남자들의 회색머리에서 [로맨스]를 찾아내고 있지만 염색하는데 주저할 필요는 없다’(1959년 4월 2일 동아일보)고 권장했던 것을 보면 그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컬러 염색’에 관한 한 세상은 그다지 관대하지 못했다. “해방 후 특이한 변화는 노란 머리, 빨간 머리의 대거 진출이다. [옥시풀]로 탈색을 해서 그 칠 같은 검은 머리의 고유미를 헌신짝처럼 내버렸다,’(경향신문, 1962.09.01)고 역정을 내고, ‘[핑크] 빛으로 윤이 나는 서양 여성에게 검은 머리가 어울리기 힘들 듯, 황색인종인 우리에게는 [노랑머리]가 좀체 어울리기 어렵다’(동아일보 1963.7.25)며, 지금으로 치면 ‘인종 자학’에 가까운 멘트를 날렸던 것을 보면 말이다. 당시 컬러 염색을 한 여성들을 ‘모던 걸’로 싸잡아 칭하고 ‘기생’과 비슷한 범주로 나누고 싶어 했던 것을 보면, ‘김치녀’나 ‘된장녀’처럼 ‘x x녀’의 선구적 역사가 보이는 듯도 하다.
파마의 역사는 또 어떤가. ‘[파마]는기생이나 백화점 [숍걸]부터 번졌다. 학교 선생님은 [파마]를하지 말라는 명령도 내렸다. 때는 마침 일본이 전쟁 준비 내지 교전 상태에 있던 때라 일본 정신에 위배된다는 야릇한 논리가 생긴 것이다(경향신문, 1962.09.01)’라는 기사를 보면 해방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불파마는 60년대 직전까지 풍미했죠. 제 손님들 중에 낭자머리를 자르고 꼬불꼬불한 쇼트커트형 파마를 한 분이 적지 않았는데, 시아버지와 남편한테서 ‘술집여자냐?’는질책을 받고 이혼까지 당한 분도 있었어요(한겨레신문 1995.02.16)’라는 미용사의 증언을 보면 이 땅에 뿌리내리는 것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새치가 희끗희끗한 머리’나‘단정치 못하게 뻗친 생머리’로 돌아다니면, 단박에 ‘유행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거나 심하면 ‘자기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인식된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니’의 미용실 버전으로 보면 될까.
삼일절 광화문 광장에 넘실대는 ‘태극기’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래전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던 ‘색깔 염색’과 ‘파마’는 지금 우리에게는 일상이요, 유행의 첨단이다. 아이돌들은 새 음반을 들고 나올 때마다 갖가지 색깔로 머리를 물들이고, 젊은이들이 많은 곳에서는 염색 안 한 머리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다.
1919년의 태극기의 의미는 분명 오늘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들키지 않도록 숨기고 나와 마침내 펼쳐 든 ‘태극기’가 조상들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과 감동이었을지는 짐작하기에도 벅차다. 그러나 근래의 태극기의 의미는 그것과는 사뭇 달라졌다. 기념일이면 잊지 않고 집 앞에 태극기를 걸던 사람들 조차 어제는 국기게양을 포기했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태극기’는 ‘카세트테이프’나 ‘CD’, ‘파마’나 ‘컬러 염색’ 수준의 대상이 아니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의미가 변질되기에는 너무 큰 상징이다. 게다가 나란히 펼쳐진 ‘성조기’는 뭔가. 무엇을 위해 그들은 그것들을 펼친 것인가. 그들은 그토록 당당하게 성조기와 트럼프의 얼굴이 찍힌 깃발을 흔들어 대는데, 왜 부끄러움은 나(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몫이란 말인가.
사물의 의미는 바뀐다. 어떤 형식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태극기’를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로 남겨두는 것은 안 된다. 그것은 애초부터 ‘특정한 누군가’의 이미지로 차용될 상징이 아닌 것이다. 비도 오는 착잡한 삼일절에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