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줘

- 똑같은 고양이는 없다

by 지안

친구 가게에 고양이가 산다. 이름은 없고 나이도 모른다. 친구의 시모는 가끔 그 녀석을 ‘나비야’라고 부르시는데, 그건 사람 이름으로 옮기자면 ‘아무개야’와 비슷한 것이므로 의미는 없다.


2층에 위치한 가게 창문으로 어느 날 들어왔다고 했다. 당황한 친구는 녀석의 사진을 찍어 동네에 전단을 붙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근처 동물 병원에 수소문을 했다. 수의사는 얼굴을 붉히며, 그 병원에 살던 고양이인데 기르던 것은 아니고, 길냥이인지라 밥이나 나눠주는 처지였다고 설명했다.


동물 병원으로 되돌아간 고양이는 이후 다시 친구의 가게로 스며 들어왔다. 그제야 수의사는 근래 늘어난 강아지들 때문에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았노라고 알려주었다. 혹시 가능하시면 고양이를 길러 달라는 말과 함께.


고양이의 이름이 없는 이유도 있다. 부를 필요가 없다.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처음 보는 나를 포함해서 누구든) 다리 위에 눕는다. ‘까칠하고, 사람을 가리며, 제 영역을 중시한다’라고 알고 있던 나의 상식은 이 녀석으로 말미암아 산산이 부서졌다. 성격상 반려동물을 사랑하거나 아끼지 않는 나로서도 처음 보는 고양이가 무턱대고 배를 깔고 누워버리는데야 당할 수가 없다. 녀석이 다음 목표물을 발견해 옮겨갈 그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어떤 것에 이름이 붙으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 세상에 몇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나처럼 엉성한 사람들은 그 놈들이 한 가지 성격을 가졌다고 믿고 그것에 맞는 대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교가 없고, 주인도 모르며, 자유롭고 블라 블라~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 봐도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며, 또한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는 믿음인지 알게 된다.

생긴 것은 비슷해도 성격은 다 다를테지

‘친구’라는 이름 때문에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했던 기억은 없는지. ‘연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는 이유 때문에 싫은 스킨십을 무방비로 참아냈던 적은 없는지. ‘가족’이라는 분류에 묶여 거의 인격살해나 다름없는 욕을 들어 본 기억은 없는지……


자기 자랑으로 점철된 ‘친구라 부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겨 본 사람은 무슨 말인 지 알 것이다. 내 이야기는 좀처럼 듣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자꾸만 손을 뻗는 ‘연인이라 불렀던’ 사람과의 만남에 눈물이 날 뻔했던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제일 깊은 상처는 대개 가족에게서 받는다는, 숨기고 싶은 비밀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고 ‘제각기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또 내가 그런 것처럼, 타인들도 분명 그렇게 대접받아야만 한다.


“양이 어때?”


넓적다리가 따뜻하다 못해 뜨끈해지도록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를 가리키며 친구가 말했다. 내 손은 고양이를 쓰다듬지도(한 번도 안 만져봐서 어떻게 만져줘야 하는 지를 모른다), 어디 다른 곳에서 안식을 느끼지도 못한 채 어색하게 공중에 들린 상태였다.


“그게 뭐야?”


“쟤 이름. 양이라고 부르려고. 양아”


내 팔이 덜덜 떨리도록 꼼짝하지 않던 녀석이 친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너도 이름이 생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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