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빈 곳 늘리기

- 하드 디스크 공간 확보

by 지안

늘 마주 보는 컴퓨터인지라 공기처럼 친근해서 이제는 몸의 일부인 것처럼 편안하다. 편안하다는 것은 즉,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컴퓨터는 내게 아무것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애정도, 관심도, 사랑도, 욕구도, 욕망도……


문득 녀석이 가쁜 호흡을 내뱉는다. 그제야 나는 오래된 가족처럼 친근한 녀석에게 눈길을 준다.

이런,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내 마음속처럼 녀석의 하드도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해 다른 것을 받아들일 한 치의 틈도 찾을 수 없단다.

이런, 하드 디스크가 꽉 찼다

당황한 나는 제어판을 누르고 들어가 기억에 없는 프로그램명과 마주한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은 아닌, 내가 쓰는 것이지만 내가 깐 기억은 없는 숱한 프로그램들이 얼굴을 내민다.


‘이것은 어디다 쓰던 것이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지?)’, ‘이 프로그램은 이제 쓰지 않아(그 자식과는 헤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거야?). ‘뭔지 모르겠는데, 지워도 되는 것인가(그 일을 다시 할 것 같지는 않은데……)’ 같은 말들을 되 뇌이며 삭제 버튼을 누른다. 꽤 여러 개 덜어낸 것 같은 데 차이는 미미하다.

캡처2.JPG 그렇다면 정리하자

프로그램의 파편 같은 것들이 기억의 조각처럼 볼 성 사납게 늘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그것들이 시스템 안에서 오류를 일으키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날려야 한다.


한 뼘만 한 공간이라도 반갑다.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아주 오래된 것이라도, 지극히 최근의 일이라도 날려버리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캡처4.JPG

컴퓨터가 묵묵히 필요 없는 파일을 정리하는 사이 생각한다. 컴퓨터처럼 정해진 규칙대로 누군가 내 머리 속도 말끔히 덜어내줬으면…. 쓸모없는 옛 기억과 사람들과의 나쁜 추억과 마음 먹은 채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아 이제는 꿈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생각들을 깨끗이 비워줬으면……

없앤다고 없앴는데도......용량은 부족하다

이런, 아직도 디스크의 붉은색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짧게 호흡할 시간과 당분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준 정도에 불과하다. 얼마 후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하거나, 컴퓨터를 리셋해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아~ 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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