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아와 함께 살아가는 법

- 내 안의 평화

by 지안

왜, 때문에, 어떤 이유로 우리 주위에는 엄친아가 존재하는가. 엄친아 – 엄마 친구 아들(혹은 딸)들이 태양계의 중심처럼 빛을 내는 사이 우리는 그 주위를 도는 행성(혹은 위성이나 혜성)처럼 측은하게 거무스름한 공간을 회전해야 하는가.


그들은 진지하게 엄마의 입에서 튀어나오기도 하고, 문득 켠 SNS상에 등장하기도 하고, 티브이에서, 뉴스에서 잊을만하면 얼굴을 내민다.


친구 아들이 이번에도 전교 일등을 했다며,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포즈로 과자를 먹으며 티브이를 보는 내 등짝을 엄마가 후려칠 때, 아이 둘 유치원 차에 태우고 돌아와, 헤어핀도 빼지 못하고 눈곱이 반쯤 떨어진 채 색깔 다른 양말을 신고 뛰어나갔던 모습을 거울에서 확인할 때, 창업 1년 만에 몇 십억 매출 신화를 이뤘다는 전직 명퇴자의 티브이 인터뷰를 볼 때 우리는 망연자실한다. 저 자들은 왜 저렇게 빛이 나서 나의 이 조그마한 반짝임까지 집어삼켜 버리는가.

엄친아들은 태양처럼 밝으며, 어디서나 관측 가능하다

엄친아는 가공의 인물이 아니다.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은 되지만, 존재함만은 확실하다. 만화나 티브이 시리즈에는 더 엄청난 능력의 주인공들이 나오지만, 그들 때문에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엄친아는 ‘존. 재. 자. 체.’가 짜증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모자라 살살 우리의 아픈 곳을 건드린다. “학교 수업 위주로 예습 복습만 열심히 했어요.” 라던가 “자기관리는 스스로 하는 것이죠. 아이들은 너무 천사 같지 않나요?” 내지 “무엇이든 한 방향으로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옵니다.” 같은 말들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그들 주위로 우울이 비처럼 쏟아지지 않는 것이 대단할 정도다.


그런 그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삶을 돌아보고 점검하며 ‘혹시 내가 잘못한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초조해한다. 때로는 진심 내가 못난 탓인 것 같아 우울해지기도 한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들을 의심하기도 한다. 문제는 의심의 시간에도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자. 우리는 무엇을 비교하고 있는가. 성적이나 자기관리, 수입을 비교하는가. 과연 그것이 나와 타자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인가.


우리는 외모는 물론 성격도 능력도 다 다르게 세상에 던져졌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의 능력은 공정하게도, 공평하게도 분배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연습한다고 모두 우사인 볼트가 될 수 없다. 온 힘을 다 기울여 연구한다고 스티브 호킹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우리가 어느 시점에 문득, 같은 잣대를 서로에게 맞춰보며 안심하거나 좌절하는 행위가 과연 올바른 일인가.


인간이란 종이 지구 상에 생겨난 이래, 우리는 많은 것을 상상했고 만들어왔다. 좀 더 안락한 환경을 상상해 집을 만들고, 안전한 미래를 위해 가족을 만들었다(세상에는 여러 가지 가족 제도가 있다. 대가족, 핵가족뿐 아니라 1부 1처, 1부 다처 등등). 학교, 화폐, 국가, 신 모두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우리는 쉬지 않고 주위 환경에 맞는 새로운 잣대를 상상하고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잣대에 우리를 맞추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앞 뒤가 틀려도 한참 틀린 것이다. 상상이 먼저고 잣대는 나중이다. ‘내’가 먼저고 ‘내가 되어야 하는(?) 모습’은 나중인 것이다. 잣대에 맞추려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에(그것도 지나간 시기의) 지배당하게 된다. 바람직하지 않다.


구름의 모양처럼 우리는 모두 다르다.

게다가 문득 튀어나오는 엄친아의 모습도 한 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그들은 언제나 “좋은 것”을 말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전교 1등이지만 엄마 생일이 언제인지는 기억을 못 하는”, “자기 관리는 철저하지만 아기 이유식 만드는 법은 알지 못하는”, “년 매출 몇십억이지만 지금껏 단 하루도 쉬지 못한’ 사람들이 엄친아일 수도 있다(‘그렇다’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우리는 자신의 부끄럽거나 아쉬운 부분은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일찍이 파스칼은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 박혀있는 것이어서 병사도, 아래 것들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찬양해 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도 찬양자를 갖기를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 한다. 이것을 읽은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 한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다.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진 거실에서 물러나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SNS를 끄고, 티브이나 뉴스를 조용히 만들어라.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떠올리자. 물론 어디선가 어느 곳에선가 다시 엄친아들은 출몰하겠지만, 그때 또다시 반복하면 된다.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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