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될 거야’란 말이 사치인 세상
새옹지마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변방 노인의 말’이다.
중국 변방에 살던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도망쳐 버렸다. 이웃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누가 아는가”라며 근심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말이 다른 말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웃이 축하의 말을 전하자 노인은 “이 일이 화가 될지 누가 아는가?”라며 염려했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졌다. 늘 그랬듯 이웃들이 위로했으나 노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얼마 후 징집령이 떨어졌으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이유로 전쟁에 나가지 않았다, 는 말씀.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했던 홍길동만큼이나 “좋은 일을 좋다 하지 못하고 나쁜 일을 나쁘다고 하지 못”하는 노인의 마음이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눈 앞의 결과에 연연해 세상 모든 일을 판단하지 말라”는교훈을 설명하기 위해 ‘노인’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점은 의미심장하다.
세상을 오래 살아야 ‘확률 상’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반쯤 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주사위를 엄청나게 많이 굴려야 일부터 육까지 나올 확률이 1/6로 공평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다섯 번쯤 주사위를 굴린 후라면 1/6이라는 확률을 떠올리기 힘들다. 마찬가지 이유로 노인이 아닌 사람에게, 모든 일이 좀처럼 내 맘같이 풀리지 않아 답답한 사람들에게 세상 일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교훈은 아직 물속에 넣지 않은 라면처럼 딱딱하고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난 그때 왜 그렇게 멍청했던 걸까요?”
후배의 회사는 1년 전쯤부터 통폐합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침 연봉은 조금 떨어지지만 안정적인 자리로 이직할 수 있었던 후배는 갖은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비교한 끝에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며 주저앉았었다. 그때 저녁을 먹으며 사람 일도, 회사 일도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 가볍게 몸을 움직이면 안 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통폐합이 결정되었다고 했다. 급하게 이직할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후배는 과거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스스로 멍청했다고 자책했다. 요즘 같은 때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흔한 위로조차 해 줄 수가 없어 빈 잔에 술만 연거푸 채워주었다.
긴 안목으로 보면 분명 ‘노인’의 지혜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목을 채워 가기 위한 삶의 여정이 요즘 들어 너무 고되고 힘들어졌다. ‘잘 될 거야’란 말은 아예 사치처럼 들린다. 차라리 눈 앞에 벌어지는 작은 기쁨에 커다랗게 환호하고, 큰 좌절에 무력하게 함께 슬퍼하면서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웃음기가 없어지고 목소리까지 부쩍 작아진 후배의 등을 토닥이며 술집을 나섰다. “삶은 길고 고단하니 여기서 지치지 말자. 나쁜 일이 있었으니 이제 좋은 일이 있겠지”라는 말 정도를 위로랍시고 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 화가 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인터넷 뉴스에서 자꾸 ‘말, 승마, 독일인 중계업자, 청와대’ 같은 관련된 기사가 보여 맥락 없이 ‘변방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세상이 힘겨워진 이유가 도대체 무엇 일까. 어떤 이유로 힘겨워진 세상을 우리는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래저래 심란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