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산딸기(1957)> - Smultronstället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를 봤다.
1957년 영화인데 스타일이 굉장히 세련되어서 놀랐다. 역시 좋은 영화는 세월이 지나도 영향받지 않는다.
영화는 어떤 노인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고집스럽게 마음을 닫아걸고 학문에만 열중한 결과 50년간 의사로 활동한 공적을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상하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 인생의 정점을 찍으려는 순간 그제야 그는 지난 인생을 차근차근 돌아본다.
수상하는 날 새벽 그는 수상한 꿈에 시달린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낯선 거리에서 바늘이 없는 시계를 본다. 그리고 마차 바퀴가 빠지는 바람에 마차 안에서 튕겨 나와 뒤집힌 관 속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튀어나와 그를 관 속으로 끌어당긴다. 흉흉한 꿈에 놀란 그는 애초의 일정을 취소하고 스스로 차를 몰고 시상식장으로 향한다. 마침, 집에 머물던 며느리가 옆자리에 동승하고 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여행이 시작된다.
그는 여행길에 유년 대부분을 보낸 옛집에 들러 추억을 회상한다. 아련하고 달콤했던 그 시절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여인은 동생의 유혹에 넘어가 그가 아닌 그의 동생과 결혼한다. 첫사랑에 실패한 회한으로 그는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그의 시간은 그 순간에 영원히 멈춘다. 시계에 바늘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후일 결혼한 아내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얻은 아내는 방황하다가 일찍 죽는다. 그 여파로 아들은 아버지를 미워하게 되고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냉담해진다. 그리고 자식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며느리는 임신했는데도 행복하지 못하고 남편과 별거 생활에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이 그가 '그때' 그 여인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까닭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지만, 동생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라고 증오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차 안에서 꾼 다른 꿈을 통해 진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꿈속에서 그녀는 그에게 '거울을 들여다보라'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면하라는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당신 동생과 나는 사실 '서로 사랑하는 관계'였다는 것을 냉정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차라리 거짓을 붙들고 살아왔다. 그는 그동안 억울하고 분해서 손에 꼭 틀어쥐고 있었던 왜곡된 진실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편안해진다.
여행 중에 들른 어떤 주유소에서 그는 주인에게 극진한 대접과 존경을 받는다. 항상 자신이 모든 것을 빼앗긴 피해자였고 자기 인생은 지독하게 외로웠다고 생각했는데 삶이 나름대로 풍요로웠으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괜찮은 인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다른 꿈에서 그는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동안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심판받는다. 자신의 고집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아내, 아들, 며느리에게까지 크게 상처를 준 가해자라는 것도 깨닫는다.
다 늙어 죽을 때가 되어서야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나 보다. 노인은 그동안 진실을 외면한 대가로 산 송장처럼 살아온 삶을 반성한다. 그를 관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그의 노력으로 자기처럼 산 송장이 되어가는 아들의 삶은 더 늦기 전에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어리석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기엔 겁이 너무 많고 나약함 때문에 때론 잔인해지지만 더없이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친절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리고 고통으로 얼룩진 시간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행복한 순간들은 언제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유쾌하고 떠들썩한 로드무비이면서 무시무시하고 철학적인 아름다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