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코코낫

참을 수 없는 유혹

by 김지안

내가 초등학교를 막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집이 망해서 급하게 후미진 마을로 이사를 왔다. 건물들도 많이 낡았고 동네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인상을 풍겼다. 엄마와 아빠는 빚을 갚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했고 우리 네 남매는 엄마와 아빠가 없는 시간을 우리끼리 견뎠다. 엄마가 아침에 싸 준 도시락으로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엄마가 퇴근해 집에 올 때까지 계속 굶어야 했다.


부엌 아궁이에 큰 솥이 있었는데 너무 배가 고프면 언니가 종종 거기에 물을 가득 끓여서 각자 한 사발씩 나눠주었다. 찬장에는 누가 주고 간 후춧가루가 한 통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는 나름 귀한 향신료 대접을 받았다. 뜨거운 물에 귀한 후춧가루를 톡톡 뿌리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천천히 들이켰다. 세상 밍밍하고 괴랄한 맛이었지만 눈을 감고 수프라고 생각하면서 마시자고 서로를 독려했다. '오우 수프가 진짜 맛있어.' '수프를 많이 먹으니 너무 배부르다.' ' 진짜 맛있지 않냐.' 하면서 나날이 거짓말과 연기가 늘어갔다. 물배를 잔뜩 채우고 나면 배가 꺼지지 않도록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다.


넷이 함께 길거리를 배회하며 공병을 주우러 다니기도 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쏘다니면서 병을 팔아 한 2~3주 돈을 모으면 약 300원 정도 되었다. 그 돈을 들고 동네 마트에 갔다. 과자를 사러 가는 날만큼은 세상 다정한 오누이가 되어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앞뒤로 휘저으며 씩씩하게 걸어갔다. 우리가 좋아하는 과자는 달고 맛있지만, 양이 적었고 양이 많은 과자는 맛이 없었다. 돈을 더 모아서 양도 많고 맛있는 과자를 사자고 다짐했지만, 우리의 허기에는 300원이 한계였다. 결국 양이 많고 맛없는 과자를 샀다. 과자 봉지를 뜯어 과자를 하나씩 입에 물고 집에 오면서 다른 과자를 살 걸 후회 했지만, 선택의 순간이 오면 언제나 같은 것을 골랐다.

그즈음에 '빠다코코낫'이라는 과자가 새로 나왔다. 어쩌다가 누가 선물로 준 것을 한번 먹어보았는데 진짜 너무 맛있었다. 딱딱하고 밍밍한 비스킷과 달리 한입 베어 물면 적당히 부드러워 먹기 편하면서도 가루가 많이 부서지지 않았다.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고 과자 위에 살짝 발라진 버터의 맛이 느끼하지 않고 고소했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매번 골랐던, 텁텁하고 맛없는 고소미와 차원이 달랐다. 가격이 결코 싼 편은 아니었지만, 기회만 있다면 또 먹고 싶었다. 빠다코코낫은 티브이에서 엄청나게 광고를 했고 한 번 먹어 본 사람들은 다들 좋아했다.


우리 반은 한 달에 한 번 제비 뽑기 해서 자리를 정했는데 자리 뽑는 날은 과연 누구와 짝이 될지 너무나 궁금하여 온통 술렁였다. 어느 날 나는 1 분단 맨 앞자리 왼쪽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짝이 되었다. 그 녀석은 귀엽고 공부도 잘하고 집이 부자라서 옷도 깔끔하게 잘 입고 다녔는데 성격도 상냥해서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바로 뒷줄에 앉는 두 명의 친구와도 장단이 아주 잘 맞아서 우리 넷은 금방 친해졌다. 짝꿍은 새로 자리를 바꾼 기념으로 가방에서 빠다코코낫을 꺼냈고 넷이서 같이 나눠 먹자고 하였다. 이날 정말 미치도록 행복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우리 넷은 과자의 맛에 경탄하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누가 처음 말을 꺼냈는지 모르게 일주일에 한 번 빠다코코낫 먹는 날을 정하자고 했고 모두 동의했다. 가위바위보해서 과자를 사 오는 순서를 정했고 내가 맨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

빠다코코낫을 먹는 월요일 1교시 쉬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고 행복했지만 내가 과자를 사야 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겁고 암담하기만 했다. 엄마한테 한 번 말해볼지 생각해 봤지만 어림없을 테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것 때문에 혼날 것 같았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엄마가 나한테만 돈을 준 사실이 밝혀지면 다른 형제자매들이 난리를 칠 것이 뻔했다. 빈 병을 팔아 돈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넷이 함께했기 때문에 돈을 빼돌릴 수도 없고 넷이 힘을 모아야 몇 주 동안 겨우 300원을 만들 수 있었는데 혼자서 한 달 안에 300원을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아빠 지갑을 슬쩍할지 생각도 해봤지만, 좁은 방에 다닥다닥 붙어 자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다 깨는 형편에 겁도 많고 손도 느린 내가 도둑질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처음부터 나는 돈이 없으니, 과자를 사 올 수 없다고 얘기를 했어야 옳았겠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고 수습할 방법도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서 족히 30분은 걸어가야 했는데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뒷골이 땅기고 가슴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가방 안에 쪽지를 남긴 뒤에 학교 뒷산에 올라가서 목을 맬까? 아니면 이대로 쭉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을 칠까?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핼쑥한 몰골로 어쨌든 교실에 들어왔고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1교시가 끝났다.


고민 끝에 쉬는 시간에 사실대로 얘기했고 나는 한순간에 배신자 쓰레기가 되었다. 아이들은 화를 냈지만, 생각만큼 심하게 욕하거나 타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앞으로의 과자 모임에서 나를 제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을 뿐이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다음날 다른 친구가 과자를 사 왔고, 짝꿍이 뒤돌아 앉아 뒷줄의 친구들과 과자를 먹는 동안 나는 멍하니 교실 앞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입속에서 과자가 바스러지면서 나는 경쾌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고소한 과자 향이 공기 중에 퍼졌다. 그 순간 친구들 사이에 거짓말쟁이 사기꾼 배신자로 찍힌 비참함,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실망하게 한 창피함보다는 더 이상 빠다코코낫을 먹을 수 없다는 고통이 너무 컸다. 정말 간절하게 먹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한 달이 다 되어 자리가 바뀌었고 나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친구들과는 멀어졌다.

가끔 마트에서 빠다코코낫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나의 한심하고 어리석은 짓에 비해 그 아이들은 정말 품위 있고 상냥하게 대처했다. 짝이었던 남자아이는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고 심하게 화를 내는 다른 아이를 말리기까지 했다. 친구들을 만약 다시 만난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보상하고 싶다. 그리고 죽도록 배가 고팠던 어린 시절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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