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깊은 파랑
그 전날부터 녀석은 몹시 불안해 보였다. 일어나서 동아리방을 나가려는 나를 꼭 붙잡더니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녀석의 손을 끌어당겨 꼭 붙잡고는 조용히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녀석은 눈을 감고 듣기만 하더니 ‘힘들지 않아?’라고 묻는다. 어리광 피우는 자기 모습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녀석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다음날도 동아리방에 들렀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가고 저녁이 깊어지자, 녀석은 동아리방 창문 아래 놓인 기다란 쿠션 의자 맨 끝에 가만히 앉아 있다. 나는 숙제를 마저 하려고 동아리방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 도화지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린다. 곁눈질로 녀석을 흘끔흘끔 보면서.
녀석은 다리를 끌어당겨 무릎을 세우고는 거기에 얼굴을 파묻는다. TV 소리가 시끄럽게 돌아간다. 평소 녀석이 좋아하던 파란색 마카를 보여주며 주의를 끌어보았지만, 녀석은 잠깐 웃더니 다시 얼굴을 파묻는다. 결국 신경이 쓰인 나는 숙제를 팽개친다. TV를 끄자, 사방이 조용해진다.
나는 다가가서 온몸을 웅크리고 있는 녀석을 가만히 끌어안는다. 내가 조금 움직이자, 녀석은 내 팔을 잡는다. 가지 말라는 듯이. 우리 둘은 부둥켜안은 채 계속 그러고 있었다. 녀석의 슬픔이 남김없이 나를 파고든다. 나도 잘 아는 익숙한 아픔이다. 나는 너를 보고 너는 그를 본다. 그는 너를 보지 않고 너는 나를 보지 않는다. 녀석은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나온단다. 그래서 나는 녀석을 붙들고 그 애 대신 울었다. 녀석이 자신의 사랑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나는 안타깝게 바라본다.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녀석은 행여 달아날세라 나를 꽉 붙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문밖에서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나와 그 애는 그냥 그대로 슬픔을 삭이고 있었다. 그렇게 밤은 점점 깊어 갔다.
그 애는 나를 항상 소중한 친구로 대해 줬다. 녀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머저리 쓰레기 같은 짓을 해도 언제나 한결같이 내 곁에 있어 줬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걸 알게 해줬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있다.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그 애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창백한 푸른빛의 연기가 희미한 흔적을 남기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연기를 따라 그 애가 좋아하는 짙은 파란색의 바다 향기가 난다. 깊이를 알 수 없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몹시 차가운 바다가 떠올랐다.
BGM: The Big Blue Overture / 영화 'Le Grand Bleu' soundtrack, Eric Ser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