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고 아플 때 나를 외면한 엄마.
아기에게 엄마는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유일한 세상이자 우주다. 꿈속에 등장하는 삶의 공간은 아기가 자궁에서 느낀 감정을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다. 나는 어두컴컴한 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꿈을 꾼다. 추운 겨울 검은 옷을 입은 어린 소녀는 맨발로 정류장에 서서 눈을 맞으며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린다. 아래위로 길게 이어진 황량한 길에는 아무도 없다. 꿈속에 등장하는 내 집은 허름한 판자로 지어졌다. 천정이 뚫려서 비가 새고 바닥에도 물이 차올라 가구들이 전부 못쓰게 되었다. 얇고 부실한 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집안 어디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우리 엄마는 사이코패스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사이코패스는 자기(self)가 취약하다. 자기는 한 인간의 정체성을 뜻하고 정체성이 약하다는 것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본연의 참모습을 두려워한다. 하여 가짜로 자아 이미지를 만들어 그것을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가짜 이미지에 비친 자신은 너무 멋지고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에 반하는 사실들은 철저히 왜곡되고 기각된다. 자기(self)는, 살면서 겪게 되는 경험을 담아서 소화하는 그릇이기도 한데 자기가 약한 사람은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왔을 때 이를 공격으로 받아들여 감당하지 못하고 그릇이 잘 깨진다.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고 경험을 의미로 바꾸지 못한다.
내가 12살 때 길거리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엄마가 그 광경을 목격하였다. 나는 그때 근처 상점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괴한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엄마는 그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었으면서 모른 체했다. 길에서 엄마를 발견한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려고 했으나 엄마는 외면하면서 ‘알았으니까, 집에 가자’고 말하고 곧장 집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아주머니가 엄마의 팔을 꽉 잡아서 도망가지 못하게 붙들고 사건의 경위를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이야기가 다 끝나 풀려난 엄마는 혼자 앞장서서 집으로 가버렸다.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번 돈은 다 엄마 수중에 들어갔는데 내가 어느 순간부터 월급을 갖다 주지 않자, 엄마가 서운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너는 나한테 단 한 번도 돈을 준 적이 없어’라고 욕을 했다. 월급을 갖다 주면 ‘왜 월급이 오르지 않느냐, 엄마 몰래 돈을 따로 빼돌리는 거 아니냐?'라며 나에게 화를 내던 일들은 엄마의 기억에서 전부 삭제되었다. 내가 더 이상 돈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격분한 엄마는 어느 날 내가 일하는 직장의 본사에 찾아가서 깽판을 쳤다. 직장 상사에게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몹시 수치스러웠다. 그날 집에는 엄마와 나 둘 뿐이었고 나는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내며 악을 썼다. 엎치락뒤치락 육탄전까지 벌였다. 나는 엄마를 눕혀서 위에 올라타고 엄마의 양쪽 팔목을 움켜쥐고 움직이지 못하게 팔로 눌렀다. 엄마는 벗어나려고 내 팔을, 있는 대로 꼬집었다. 나는 울면서 ‘딱 한 번만 내 눈을 보면서 내가 하는 얘기에 집중을 좀 해줘’라고 사정을 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어딘가를 보고 있지만 아무 데도 도달하지 못하는 그 공허한 눈빛. 마침내 나는 엄마와 소통하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엄마를 떠났다. 내가 이사 가던 날 엄마는 딱 한 마디만 했다. ‘집 열쇠 반납하고 가라’
내 힘으로 처음 마련한 나의 공간은 무허가 건물 옥상의 작고 초라한 옥탑방이었다. 문을 열면 작은 방을 기역 모양의 좁은 복도가 둘러싸고 있었는데 싱크대가 먼저 보이고 코너를 돌면 세면대가 나오고 끝에는 변기가 놓여있었다. 여름에는 땀이 비 오듯이 흘러서 땀에 절여지지 않은 옷을 입는 게 불가능했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돌려도 집안 온도가 영상 4도여서 냉장고보다 추웠다. 잠자리에 누우면 엄마가 꿈에 나타나서 나를 비난했다. ‘네가 사는 동네 이름이 '패륜(悖倫) 동'이라며?’라고 비아냥거렸다. 늘 내 물건을 탐내던 아빠는 꿈에서도 내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훔쳐 갔다.
가족과 절연하고 독립한 첫 해 일 년 남짓 프로이트 분석가 선생님에게 개인 정신분석을 받았다. 분석가 선생님은 나를 보고, 부모로부터 받은 에너지가 너무 없어서 ‘햇빛이 들지 않는 깜깜한 지하실에서 혼자 광합성을 하려고 애쓰는 나무’ 같다고 했다. 분석받는 내내 펑펑 울고 집에 오면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맨발의 소녀는 깜깜한 지하 창고 한가운데 있는 검은 우물에서 매일 밤 맨손으로 시체를 꺼내서 우물 옆에 쌓아 올렸다. 밤새도록 시체 건지는 작업을 하고 아침에 깨면 마치 진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팔이 너무 아팠다. 끝도 없이 올라오는 시체들로 작은 창고 방은 가득 찼다. 온몸이 쑤시고 피곤했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죽었다. 나는 죽은 아이들을 모두 하나의 종이에 그려서 어느 날 밤 자정에 위령제를 지내주었다. 촛불을 켜고 그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기도를 정성껏 올린 다음 그림을 태웠다. 그림을 태운 재는 조그마한 유리병에 담아서 볕이 잘 드는 어느 공원 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분석이 끝날 무렵 나는 탁 트인 바닷가에 서 있는 꿈을 꾸었다. 물이 맑고 깨끗해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저 멀리 수평선에 가느다랗고 붉은빛 한줄기가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