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무섭고 쓸쓸한 생존기

- 영화 <조슈아 Joshua> -

by 김지안

영화의 첫 장면. 아들은 축구하고 아빠는 상당히 부산한 모습으로 서 있다. 경기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몸만 거기 와 있다. 경기 내용에 열을 올리는 다른 아빠들과는 사뭇 다르다. 아빠는 급한 전화를 받고 경기 중간에 아이를 끌고 와 마구 달린다. 아빠는 택시를 잡으려고 길을 혼자 건넌다. 넓고 혼잡한 도로에 아들만 남겨진다. 아빠는 건너편에 멀뚱멀뚱 서 있는 아들에게 빨리 건너오라고 소리친다.


다음 장면. 병원에서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안은 엄마에게 아빠가 다가와 다정한 말을 건넨다. 셋은 매우 단란한 가족으로 보인다. 아들은 문밖에 세워둔 채 한참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


집 안 거실 장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외삼촌, 아기, 개까지 왁자지껄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지만 아들만 소외되었다. 아들이 어려운 피아노곡을 치고 있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연주회 준비로 계속 연습해야 하지만 시끄러우니 피아노를 그만치라는 핀잔까지 듣는다. 하지만 조슈아가 피아노를 떠나자 온 가족이 외삼촌이 치는 피아노에 맞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앞뒤가 안 맞는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던 조슈아는 바닥에 토해버린다.


여동생이 태어난 이후로 조슈아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가족에게서 자신만 철저하게 배제된 느낌을 받는다. 조슈아는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애쓰지만, 그들의 사랑을 확신할 수가 없다. 엄마와 아빠는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표정과 태도와 행동에서 그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뭐라 규정할 수 없었던 조슈아는 어느 날 학교에서 이집트의 문화와 풍습에 대해 배우면서 어떤 실마리를 잡게 된다.


‘아포피스가 삼켜버리면 존재가 없어져 버려. 무존재. 세상 끝날 때까지 아포피스의 창자 속에 있으면서 천천히 영원토록 소화되어 가는 거지. 그런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지. 왜냐하면 아무도 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저녁 식사 시간. 조슈아가 바로 앞에 앉아 있지만 엄마와 아빠는 둘만 이야기한다. 조슈아가 ‘이 아파트에서 누군가가 죽었어’라고 말하자 엄마와 아빠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엄마는 ‘누군가 여기서 살해됐다면 아마 우리도 알았을 거야’라고 한다. 그 말에 조슈아가 ‘나는 살해됐다고 말하진 않았어. 왜 살해됐다고 생각해? 엄마도 그런 감지력이 있는 거야?’라고 되묻는다.


여기서 ‘아파트에서 살해당한 사람’은 바로 엄마 아빠의 무관심 때문에 영혼이 살해당한 조슈아 자신을 의미한다. 영화 끄트머리에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조슈아가 할머니와 함께 보는 이집트 벽화 세트와 아포피스의 그림으로 이 대화의 의미가 드러난다. 조슈아를 무참히 살해한 엄마 아빠가 바로 '완전한 악'인 아포피스이며 그 어둠의 존재인 뱀에게 먹혀서 조슈아의 영혼은 천천히 소화되면서 ‘무존재’가 되어간다. 그런데 ‘살해’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나를 죽인 것을 알기는 아느냐’라며 조슈아가 냉소하는 것이다. 엄마가 아들에게 무심결에 계속해서 상처를 주고 있지만 자기 행동에 대해 자각조차 없는 것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다.


조슈아의 엄마는 조슈아에게 관심이 전혀 없고 살가운 표정도, 다정한 말 한마디도, 친절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기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마구 행동한다.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항상 짜증이 나 있거나 울거나 한다. 아이에게 할 말, 해서는 안 될 말 전혀 구분 없이 되는 대로 얘기하고 매우 부적절한 행동을 많이 한다. 정서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아기가 계속 울어대는 이유를 그저 아기가 이상한 탓으로 돌린다.


조슈아의 아빠는 표면적으로는 아들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는 것 같지만 조슈아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조슈아가 좋아하지도 않는 축구나 야구를 아빠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고백해도 평소에 하지 않던 이상 행동을 보여도 그저 속 편하게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 버린다. 바쁜 회사 업무에 시달리고 자기 엄마와 아내, 두 여자 비위를 맞추느라 만사가 피곤한 아빠는 말 잘 듣는 조슈아는 그냥 자기가 알아서 적당히 살아가길 은근히 바란다.


엄마 아빠의 무관심한 행동으로 조슈아는 끊임없이 상처받고, 조슈아의 영혼은 거듭 살해당한다. 보통의 아이라면 그렇게 천천히 아포피스의 뱃속에서 소화되어서 마침내 ‘무존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부모의 무관심으로 존재가 지워진 아이는 그렇게 남은 삶을 유령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기가 죽었는지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고 자신을 하나의 실체로 느낄 수도 없으며 현실에 대한 감각이 모호하다.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혹은 발밑에 땅이 없는 것 같은 불안감을 평생 지니고 불행하게 살아간다. 조슈아의 엄마가 ‘이 집엔 유령이 살아. 사방에 유령이 있지’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슈아의 엄마도 아마 그녀의 어머니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 또한 유령이 되었을 것이다. 집안 내력 운운하는 외삼촌의 말과 17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다는 조슈아 엄마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똘똘한 조슈아는 유령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자기 죽음을 부모에게 계속 알리고 다시 새로 태어나려 노력한다. 거실에서 토하고 피아노 연주회에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여러 가지로 자기를 봐달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부모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화만 낼뿐이다.


아기는 무엇인가 불편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울음을 터뜨린다. 말을 할 수 없는 아기는 의사 표현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조슈아의 엄마 아빠는 조슈아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아기’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지만 우리는 네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지.’라고 말한다. 따라서 조슈아의 아기 시절은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해 매우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웠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이 안전하지 못하고 무서운 곳이라고 느끼면 아기는 이후에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갖기 어렵다. 상대방이 하는 행동도 다른 사람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의심하고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크게 느낀다.


조슈아는 그나마 남아 있던 부모의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현실에 대해 죽음과도 같은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존재가 지워지는 느낌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의 자신으로 그대로 있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조슈아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조슈아는 두 번 새로 태어난다. 첫 번째는 혼돈의 신으로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유일하게 아포피스와 싸울 수 있는 '세트'로 다시 태어난다. 세트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왕이 되지 못한 질투 때문에 형제인 오시리스를 살해한다.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운 상태가 바로 조슈아가 세트로 존재하는 기간이다. 조슈아는 역기능적이고 모두 본인 위주로 살아가는 가족들 사이에서, 세트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아가듯이 일종의 균형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엄마의 신경을 긁지 않도록 어리광 따위는 부리지 않으며 아빠가 원하는 아들 노릇을 하기 위해 매우 모범적으로 생활한다. 가족들은 아이답지 않은 조슈아를 섬뜩하게 여기면서도 당장 자기 생활이 편하므로 이런 상황이 건강한 가정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못 본 척하고 묵인한다. 그리고 이런 만성화된 패턴으로 조슈아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조슈아가 아빠에게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더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라는 선언이다.


조슈아는 아기였을 때 문제가 많은 아이였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부모에게 물어보지만, 미심쩍은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그러다가 자기의 아기 시절을 아빠가 녹화해 놓은 테이프를 발견한다. 그 테이프 속의 엄마는 신경질을 내고 울고 있으며 자기는 끊임없이 울면서 엄마를 괴롭히는 사랑스럽지 못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에 조슈아는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이후에 밤에 아기를 울리기 시작하면서 조슈아는 '악한 세트'로 변화한다. 그 이후 한동안은 조슈아의 내면에서 세트와 아포피스가 전쟁을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슈아가 아포피스로 완전히 변신하게 된 계기는 원래 미덥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분노보다는 그나마 조금 믿고 있었던 아빠에게서 버림받은 충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결국 조슈아는 ‘완전한 악’인 아포피스로 거듭난다. 하지만 아포피스는 자신의 ‘울음소리’를 유일한 양분으로 먹고사는 가련한 존재다. 스스로 ‘절대 악’으로 새로 태어남으로써 조슈아는 무존재가 되어가는 끔찍한 고통에서 해방되고, 자기를 사랑해 주길 바랐지만, 그럴 생각이 없는 존재들 즉 부모를 삭제해 버림으로써 ‘그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모든 일의 원흉인 아기를 괴롭혀 울림으로써 엄마를 미치게 만들고 자기를 믿어주지 않고 먼 곳으로 보내려는 아빠를 아동 학대 혐의로 체포되게 만든다. 엄마 아빠가 자신의 영혼을 살해한 방법으로 조슈아도 그들을 서서히 죽여 없앤다. 아포피스의 창자 속에 삼켜지듯 ‘더 이상 아무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당했듯이 말이다.


조슈아는 한 번 죽을 때마다 자신을 대리하는 부장품을 죽여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보냄으로써 자신을 위로한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곰 인형, 학교 실험실의 동물들, 그리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커다란 개, 기니피그가 그들이다. 이러한 잔인한 행동으로 조슈아는 부모를 향한 내면의 공격성을 표출한다.


조슈아는 부모에게서 받을 수 없었던 사랑을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새로운 대상을 찾으려 애쓴다. 그중 한 명은 조슈아의 할머니인데 그녀는 조슈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기의 종교를 전파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할머니는 유대인인 며느리가 싫어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손자를 기독교인으로 만들려고 하거나 게이인 외삼촌에게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등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조슈아는 처음에는 할머니의 뜻에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계획을 방해하는 데다가 자기를 깊이 이해해 줄 가망이 없는 그녀를 버린다.


조슈아의 아빠는 아들이 자기와 ‘너무 다르다'라고 생각한다. 조슈아의 조숙한 행동과 섬세한 감수성은 외삼촌을 닮았다. 외삼촌을 닮은 조슈아도 게이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리고 아마 조슈아도 자라면 외삼촌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하고 여동생을 다정하게 돌봐주고 서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중재해 주는 역할.


서로 마음이 잘 맞고 언제나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 외삼촌에게서 조슈아는 평온을 찾는다. 하지만 채 아물지 않은 상처는 방 안 가득 조슈아의 끔찍한 그림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슈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이 모든 게 그저 사랑받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한다. 아들을 원하지만, 가질 수 없던 외삼촌은 자기를 원하는 조슈아를 아들로 받아들인다.


때리는 것만이 아동 학대는 아니다. 방치와 무관심이야말로 진정한 학대이며 영혼의 말살이다.


이 영화는 한 아이가 무존재가 되어가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고군분투하는 지독하게 무섭고 쓸쓸한 생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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