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감옥

나비가 되고 싶었다

by 김지안

평소 우리 엄마와 친분이 있던 교회 아주머니가 집에 놀러 왔다.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더니 ‘너 이제부터 우리 집 가서 살자’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손을 잡혀 질질 끌려 나가면서 살려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나를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동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있었다. 언니는 나를 보며 ‘거봐 내 말이 맞지? 너는 쓸모없어서 버려지는 거야’라며 놀렸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고 반박해 주지 않았다.


나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너를 엄마는 왜 키우는지 모르겠다.'라며 언니가 항상 얘기했었는데 기어이 그 말을 증명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차마 잡아달라는 말을 못 했다. 쓸모없어서 버려지는 것이므로. 아주머니는 나를 정말 예뻐해 주셨다. 종종 자기네 막내딸 하자고도 했다. 그 집은 언니 오빠들이 아주 많았는데 모두 나를 귀여워하고 잘해줬다.


아주머니네 집에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언니 오빠들하고 재미있게 잘 놀았는데 나는 잘 놀다가도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작은 방에 커다란 장롱이 있었는데 벽과 장롱 사이에 공간이 조금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나면 그 틈으로 기어들어 가서 장롱에 머리를 박고 계속 울었다. 아주머니가 나를 안쓰럽게 여겨서 거기에 작은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울다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3일 밤낮을 그러고 있었다.


어느 날 한밤중에 잠에서 깼는데 창문 사이로 달이 비쳤다. 예쁜 보름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글픈 마음을 잠깐 쉬었다. 아침에는 따뜻한 햇살 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 위안을 삼았다. 창문을 가로막는 방범창 때문에 내가 있는 곳은 마치 감옥 같았다. 나비가 되고 싶었다. 내가 하도 우니까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귀찮으니 좀 더 데리고 있으라고 했다.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4일째 되던 날 아침에 나를 집에 데려다줬다고 하는데 어떻게 돌아왔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내가 4살 때 있었던 일이다.


‘넌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친자식이 아니야'라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5살이었고 며칠 전 보았던 올리버 트위스트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던 상황이었다. 티브이에서 본 보육원 풍경은 너무 끔찍했다. 아이들은 넝마 같은 옷을 걸치고 쓰레기 같은 음식을 서로 먼저 먹으려고 난동을 피웠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원장 선생님에게 무자비하게 맞았다. 이제 곧 나에게 닥칠 일이었다. 나는 큰 보자기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동화책 몇 개와 사탕 과자 좋아하는 장난감을 넣은 뒤 보자기의 모서리를 교차시켜 묶고 만화에서 본 대로 기다란 막대기를 끼워 괴나리봇짐을 만들었다. 매듭이 엉성하여 물건이 자꾸만 보자기 밖으로 삐져나왔다. 신발을 신고 현관 앞에서 엄마에게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 숙여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발걸음이 너무 무겁고 마음이 서러웠는데 등 뒤에서 엄마와 언니가 낄낄대고 웃었다.


나는 천천히 아파트 복도 끝까지 걸어서 계단을 내려왔다. 5층에서 4층, 4층에서 3층으로 한 층씩 내려올 때마다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2층에 와서 어느 집 문 앞에 주저앉았다. 차마 1층으로는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일단 앉아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리해 보기로 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보육원으로 가거나 친엄마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보육원에 가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만, 너무 무서웠고, 친엄마를 찾는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마를 찾기 전에는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했다. 나는 겨우 5살이라 취직도 못 할 텐데 무슨 수로 돈을 벌어야 하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나를 버린 친엄마에게 원망이 일어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바닥이 너무 차가워 엉덩이가 시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아까 나올 때는 낮이었는데 아파트 복도 끝 창문을 통해 본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가 주저앉았던 집의 현관문이 열리면서 어떤 아주머니가 나왔다. 나를 보고 ‘너 왜 거기에서 울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울기만 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일으켜 세워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같이 계단을 올랐다. 4층쯤에서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가 귀찮다면서 언니 보고 나를 찾아오라고 시켰고, 본인은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고 했다. 나는 언니와 함께 집에 돌아갔다. 그날은 아파트 반상회가 있는 날이었고 엄마가 음식을 하는 차례였다.


아파트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를 가리키며 ‘얘가 짐을 싸서 집을 나갔는데, 얼마 안 있어서 다시 왔다'라며 큰소리로 놀려댔다. 엄마는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쿡쿡 치면서 ‘야 나간다며? 가. 왜 왔어? 어서 나가.' 하면서 또 웃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하니 너무 수치스러웠다. 내가 너무 초라했고 이렇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먹고살아보겠다고 다시 이 집을 찾아온 자신이 굴욕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시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이 집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울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6살 무렵 유치원 앞 놀이터에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돌리면 뱅글뱅글 돌아가는 놀이기구에 전부 올라타고 나는 밖에서 돌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고장이 난 것인지 잘 돌아가지 않았고 그 반동으로 내가 튕겨 미끄러지면서 얼굴이 먼저 떨어져 시멘트 바닥에 턱을 갈았다. 내가 일어났을 때 턱이 너덜너덜해져서 뼈가 비쳐 보였고, 피가 후드득 마구 쏟아졌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고 아이들을 모두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여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래를 부르면서 한 손으로 여동생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턱에 받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는 내내 피가 정신없이 떨어졌다. 나는 피를 흘리면서 아파트 청소부에게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현관문을 열자, 여동생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거실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엄마가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피가 많이 나와서 지금 내가 집에 들어가면 마룻바닥이 더러워질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그러면 거기 서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보라고 했다. 내가 손바닥으로 턱을 누른 상태로 복도에 서서 이야기하는 동안 엄마는 밥을 마저 먹었다. 그날 우연히 조퇴하고 집에 온 아빠가 이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서 나를 안고 병원으로 막 뛰어갔다. 병원에서 큰 바늘로 턱을 10 바늘 정도 꿰매고 집에 돌아왔다.


피가 계속 나서 두 달 동안 턱에서 머리까지 동그랗게 붕대를 감고 다녔다. 아빠는 병원을 오가는 동안 계속 나를 업고 다녔는데 나는 생전 처음 누려보는 이 호사가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아픈 게 아니니 걸어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빨간약이나 발라줄 일이지 쓸데없는 데 돈을 썼다며 아빠를 타박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집안에 분란이나 일으키는 쓸모없는 존재였다.

언니는 자신이 불행한 것이 전부 내가 태어난 탓이라고 했다. 엄마는 시어머니에게 아들을 낳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는데 네가 아들이었으면 다 해결되었을 문제라며 엄마가 힘들게 계속 아이를 낳는 것도 나 때문이라고 했다. 언니를 낳고 그다음 엄마 뱃속에 들어선 아들이 유산되었는데 그 아이가 태어났으면 너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라고 했다. 나는 어쩌다 잘못 태어난 아이이며 아들도 아니었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고 집안의 불행은 모두 내 탓이었다. 언니는 허구한 날 그렇게 얘기했고 쓸모없어서 버림받은 적이 있는 나는 언니의 말을 다 믿었다.


나는 밤마다 울면서 태어나서 미안하다며 누군지도 모를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사과했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조용히 사라질 방법을 연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끈질기게 살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존재해도 정말 괜찮은 것인지 아직도 확신은 없다. 나는 여전히 방범창 너머로 나비를 부러워하던 그 방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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