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아직도 라디오로 라디오를 듣는 엄마

by 너굴씨

"너굴아, 거기 라디오 좀 틀어봐."


라디오를 듣기 위해 15년도 더 되어 안테나가 절반은 부러지고 색이 바랜 라디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KBS 2 Radio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라디오 주파수 106.1 MHz를 맞추느라 애먹었다며 주파수는 건들지 말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주현미 가수님을 그리고 노래를 좋아했다.

색이 바랠 대로 바랜 오래된 라디오

"라디오? 라디오로 라디오를 들어? 저 라디오를 아직도 쓴다고? 안테나도 부러졌는데?"

황당하다는 듯 내가 묻자, 엄마는 더 황당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뭘로 들어?"


"아니, 요즘은 휴대폰으로 라디오 들을 수 있잖아. 휴대폰 줘봐."


엄마의 휴대폰 케이스에는 여전히 카드가 여러 장 꽂혀 있었다.

이전에 엄마 휴대폰 케이스에 꽂혀있는 카드가 불편해 보이길래 삼성페이를 설정해 주며, 이제 비상용 카드 하나만 꽂아두고 그냥 삼성페이를 쓰면 된다고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가 좋은지 그때 그 카드들이 그대로 꽂혀있었다.


"엄마, 삼성페이 안돼? 왜 카드를 그대로 다 꽂고 다녀?"라고 묻자,


"삼성페이 잘 쓰고 있지. 그건 그냥 꽂아 둔 거야."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쓰는 사람이 편한 게 최고이니, 그냥 두고 앱스토어에 들어가 라디오 어플을 받아 엄마가 자주 듣는 라디오를 설정해두고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엄마, 이제 이 어플로 들어가서 라디오 들으면 돼."


"오오, 역시 우리 딸 최고!"


"이제 이 라디오는 갖다 버려."


라디오를 버리라고 했지만 이번 설에 내려가면 라디오가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라디오는 코드만 꽂으면 되고 익숙하니까.


"우리 딸이 같이 있으면 이렇게 알려줄 텐데, 매번 같이 일하는 동료들한테 묻기는 미안하고 창피하더라고."라고 덧붙이셨다.


"에, 그냥 물어보면 되지, 뭐! 아니면 휴대폰 이것저것 눌러봐. 하다 보면 쉬워."


"아냐, 괜히 잘못 눌렀다가 고장 낼까 봐 못하겠어. 딸이 집에 오면 알려줘." 살짝 기죽은 목소리로 엄마가 대답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따라가기 어렵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그걸 누릴 수 있어야 좋은 것이지,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키오스크가 보편화되었지만 오히려 키오스크 사용이 무서워 일부러 키오스크가 없는 곳으로 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렇듯 모든 변화에 바로바로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얼마 전 부모님이 경기도에 있는 오빠네에 가기 위해 부산에서 새벽부터 출발하셨다. 엄마는 출산 후 회복 중인 새언니가 걱정되었는지 소고기를 사 오셨는데, 부산에서 사서 아이스박스에 담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것이다.


오빠네 근처에 이마트도 있고, 쿠팡이나 마켓컬리로 주문하면 새벽같이 오는데, 부산에서 제일 좋은 고기를 고르고 골라, 직접 가지고 온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모든 게 편해지고 빨라진 세상에서 그대로인 부모님.

편한 방법을 알려줘도 예전 것이 편하고 좋다고 하신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괜히 시도하다가 잘못될까 걱정되셔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자식으로서 변화에 최대한 따라갈 수 있으시게끔 알려드려야겠다. 이전 방식을 고수하시건 요즘 방식대로 하시는 건 부모님의 자유지만,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는 알지만 안 하는 것이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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