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4년 동안 복싱체육관에 다닌 적이 있다. 복싱은 격렬하고 힘든 운동이면서도 어느 수준 이상에 도달하면 선이 아름다운 스포츠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마성에 매료되었다. 복싱의 매력을 꼽자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멋지게 샌드백을 치는 모습에 반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같은 샌드백을 치더라도 어떤 사람은 '팡!'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났고, 올림픽 선수 출신의 샌드백 치기는 경쾌함 이상으로 총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반면, 나의 샌드백 치기는 모래가 들은 포대자루를 툭! 치는 소리가 났었다. 복싱을 통해 싸움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운동도 하고 기왕 하는 김에 살도 좀 빼고, 샌드백을 칠 때, '팡!'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나도 내보고 싶었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어려운 길이었다. 땀을 바가지에 물을 길어다 뿌린 것처럼 바닥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흘려가며 치는 샌드백에서는 '툭' 소리만 날 뿐, 빠르고 경쾌한 느낌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거진 1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해도 여전히 툭! 툭! 소리만 났다.
언젠가는 되겠지. 수도 없이 샌드백을 쳤다. 체육관에서 3시간을 연습을 하고, 집에 와서도 거울을 보며 자세를 연습했고, 다음날 체육관에 가서는 연습한 것을 그대로 적용시켜보기도 했다.
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마추어에 견줄만한 수준의 견고한 잽을 내려면 수도 없이 왼 주먹을 내질러야 했다. 연습한 것을 샌드백에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허공에 지르는 주먹과 팔의 경로를 한치의 오차가 없도록 뻗는 연습을 해야 했다. 특별히 자세를 잡지 않아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내지르는 주먹에서도 경쾌한 팡! 소리가 나게 하는 결과물은 피나는 노력이 있어도 쉽지 않았다. 아무리 연습해봐야 재능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내 주먹에서 팡! 소리가 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도 없었음에도 자전거로 왕복 1시간의 거리의 체육관에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기본자세 연습 1시간, 샌드백 치기 2시간, 총 3시간을 연습했다. 연습을 하다가도 나보다도 더 잘하는 사람을 곁눈질하며 어떤 방식으로 왼손과 어깨를 뻗어야지 더 빠르고 힘있게 그리고 아름답게 잽을 낼 수 있는지를 연구하게 되었다. 왼손이 출발하는 시점, 도착하여 주먹에 힘을 주고 풀어야 하는 순간, 완전히 뻗었을 때의 정확히 타격점에 도달하는 거리, 타격점에 닿았을 때의 임팩트를 주는 감 익히기 등 이 모든 것이 내 왼 주먹과 팔꿈치, 어깨까지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지르는 잽에서도 엄청난 소리가 났다. '팡!!!'
이때의 감을 익히고 나서는 잽뿐만 아니라 스트레이트, 어퍼, 훅을 연계한 콤비네이션 동작의 주먹에서도 '팡팡팡!!' 소리를 내는 것은 잽을 수만 번 연습했을 때와는 달리 너무나 쉬웠다.
어쩌면 나는 복싱을 통해 만번의 법칙에 대해 또래보다 먼저, 몸으로 깨닫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팡!!' 소리를 낼 수 있을 수준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많이 왼 주먹을 지르는 연습을 해야 하는지, 숟가락도 들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복싱의 잽이라는 동작 하나만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뒤로 잘하고 싶은것이 생기면 팡! 을 기억했다.
대상이 무엇이던 목표가 무엇이던 절대 지지 않겠다는 오기를 품고 그 것에 독기를 담아 백번이고 천번이고 만번이고 해보는 것,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던지, 내 몸이 부서지던지, 지금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이기고 죽겠다는 그 독기를 가슴에 내리 꽂고 이를 악물고 즉시 실행하는 것, 가슴에 내리 꽂은 독기를 절대 뽑지 않는 것, 이 것이 지금의 내가 있게 한 방법인 것은 확실했다.
잘하는 사람들의 어떠한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해보지도 않고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쩌면 내가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 맞닥뜨리면 생각과는 달리 엄청나게 어설픈 나와 마주하게 된다. 프로 혹은 전문가라고 불릴만한 수준으로 도달한 사람들의 과정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있는지는 본인이 아니면 잘 모른다. '팡!' 소리를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고, 얼마나 많이 샌드백을 쳤는지는 본인만 안다.
만약 내가 어떠한 것에 팡!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수만 번 이상의 시도와 도전을 하고 과정의 고통을 견뎌내면 된다.
단, 그 한 번은 매우 섬세하고 자세한 과정을 담은 한 번이 되어야만 하며, 반드시 해내겠다는 오기와 독기가 담겨 있어야만 한다. 단순히 숫자와 횟수만 채우는 의미 없는 만번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간절함을 담은 한번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한 한번이 만번이 되었을 때 비로소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고, 쉽게 넘보지 못할 한계를 넘어선 곳에 도달할 수 있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다. 마음이 급할수록 지금 시도하는 한번은 단순히 만번을 채우기 위한 숫자세기에 들어설 확률이 높아진다. 간절함을 담은 한번은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한번의 실패가 다음 시도의 성공을 야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 원리는 모든 것에 통용되는 것이면서도 참 어렵다. 과정이 때론 극악무도하여 포기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단순하다. 우리 주위의 거의 대부분의 것들에게 접목시킬 수 있다. 영업을 잘하고 싶다면 수만번 거절 당하면 되고, 말을 잘하고 싶다면 거울을 보고 상대가 앞에 있다고 상상하며 수만번 조리있게 말하기를 연습하면 된다. 노래를 잘하고 싶다면 감명받은 곡을 하루 100번씩 연습하면 된다. 그렇게 계속하여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거절보다 허락을 많이 받게 되고, 우물쭈물하는 것보다 말하기를 청산유수처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남들에게 감동을 주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일을 잘하고 싶다면 수만 번 시도하고 실패할 각오를 하고 실행에 옮기면 된다. 툭! 소리를 내도 괜찮고 실수를 해도 관계없다. 계속하여 시도하는 툭!이 언젠가는 팡!하는 성공으로 반드시 온다.
만번에 이르기까지 실패했다고 해서 절대 주저앉지 않아야 한다. 실패한 것은 이미 지난 일이고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 실패 했어도 나머지 9,999번이나 도전할 수 있고, 연습할 수 있으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주저앉는 순간 그대로 끝이지만, 계속하여 꿋꿋하게 온근육에 힘을 주고 왼 주먹을 내지르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내 왼 주먹에서 팡!! 하는 소리가 퍼지며 주변을 놀라게 하는 그날이 반드시 온다.
포기하고 목적을 내동댕이 쳐버리고 쓰러지는 사람이 될 것인지, 계속하여 황홀한 잽에 이은 파괴적인 바디샷을 구사할 수 있는 이기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선택에 달려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애초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길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패배가 두려워 포기한 것, 두가지만 존재할 뿐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본질은 인간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매일 공평하게 같은 시간을 부여받고 그 시간에 누군가는 한번을 연습하고 두번을 도전한다. 반대로 누군가는 한번조차 시도해보지도 않고 안될 것이라고 확정지어버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데에만 한번뿐인 시간을 허비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하면 된다는 생각을 집어치워야 한다. 어차피 무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면 시도해보고 부딪히고 깨지고 실패하고 만번도 해봐서 결국 성공의 달콤함을 맛볼것인지 우리는 지금이라도 결정할 수 있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라는 생각이 들때에도 늦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때가 시작할 때이다.
지금 바로 시작하라. 깨지고 터져도 괜찮다. 지금 바로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