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허무함과 존재의 의미의 부재에 허덕일 때
우리의 세계를 먼저 살다 간 여러 그들은 수많은 명언은 남겼다. 그들이 남긴 명언은 경우에 따라 꽤 긴 것도 있지만 대개 짧은 문장에서 많은 뜻과 교훈을 담아 우리에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일깨워 준다. 이처럼 한 문장만으로도 뜻을 담을 수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란 장황 하거나 화려할 필요가 없다. 장황하면서도 자세한 설명이 담긴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으나, 짧은 한 문장으로도 읽는 이를 24시간 우려낸 사골국물처럼 진하게 깊은 풍미로 감동시키는 글도 있다.
글이랄 것이 일기가 아닌 이상 어찌 되었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기에, 여러 사람들이 볼 것을 의식하며 쓰게 된다. 읽는 이의 입장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나의 생각과 이야기가 아닌 읽을 사람에 치중하게 된다.
'보이고 싶은 마음'과 '많이 읽히고 싶은 마음', '좋아요를 유발하려는 마음' 등이 문장에 담기면 그 글은 블로그에 올려지는 것이 더욱 어울리게 되며, 읽는 이에게도 이러한 속내가 결국 들키고 만다. 반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뜻과 생각을 진실함과 진정성까지 담는 문장과 글로 표현하는 작업, 글쓰기라는 피나는 노력을 하다 보면 그것이 결국 글에서도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과정에서 독서는 필수다. 나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배우지도 않았고, 따로 배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신 책을 열심히 읽었다. 갖가지 종류의 책들을 관심 있어하는 분야와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시간이 날 때마다 아주 천천히 읽는다. 마치 음식을 먹을 때 씹고 맛보고 즐기는 것처럼 음미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서서히 읽어 내려간다.
남들이 말하는 속독은 나는 참 어렵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중요한 부분만 머릿속으로 착착 쌓아가며 빠르게 읽는 방식은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읽은 글은 기억도 잘 안 난다. 그것보다 글을 쓴 사람의 입장에 서서 '내가 이 글을 쓴 작가라면?'이라는 전제를 두고 읽기 때문에 어떠한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 냈는가까지도 함께 파악하며 읽는다. 속독이 가능하더라도, 안 그래도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에서 살고 있는 터라 발췌하여 빠르게 읽는 것들은 쉽게 잊혔고, 글쓰기에 적용시키는 필력을 수련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다문 다독 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 중국의 구양수가 글을 잘 짓는 비결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낸 것처럼 나는 그렇게 깊게 읽고, 깊게 생각하다 보니 생각을 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기술이 아주 조금은 터득된 것 같다.
생각에서 문자로 전환되는 글은 바로바로 물 흐르듯 손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문맥의 흐름은 일단 나중에 고치기로 하고 물이 흐르듯 술술 써 내려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는 직전에 쓴 글을 읽지 않는 것이 좋다. 글을 쓰는 도중에 직전에 쓴 글을 읽는 순간, 잘 쓰였는지 문맥의 흐름이 괜찮은지 등을 검토하면서 퇴고의 과정에 진입해 버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음 문장으로 이어져야 할 생각들이 차단되어 버린다. 안 그래도 생각들을 쥐어진 원숭이들이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는데 바로 전에 쓴 글까지 보게 된다면 생각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 일단 작성하는 작업은 멈춤 없이 계속 이어나가고 그 문장이 어설프거나 문맥상의 흐름과 맞지 않다 하더라도 계속 써 내려간다. 점검하고 고치는 퇴고는 추후에 글을 발행하기 전에 하면 된다.
하루가 마무리되는 저녁보다는 아침에 쓰는 것이 좋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과 몸만 깨우고 바로 쓰는 글이 좋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고 샤워를 하고 그날의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 먼저 들어서버린다면, 그와 동시에 글로 기록해야 될 생각들이 달아나 버린다. 쓰려고 마음먹었던 것들이 자리한 곳에, 그날에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와 버리기 때문이다. 그 생각들이 도망가기 전에 먼저 잡아두기 위해서 나는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쓴다. 덕분에 아침형 인간이 되는 좋은 습관을 1 + 1,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저녁은 하루를 정리하고 휴식에 들어서는 시간이어서, 정신이 아침보다는 맑지 않다. 하루 종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이다 보면 머릿속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이해관계와 생각들이 들어와 앉아버려 내 생각이 자리 잡을 곳은 마땅치 않다. 저녁엔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에 집중하거나 퇴고를 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좋다.
틈틈이 매일매일 쓴다. 매일 읽고 매일 생각하며 매일 쓴다. 문맥의 흐름과 어울림 등의 고려와 큰 틀을 짜는 것은 일단 뒷전이다. 그렇게 생각의 순서를 앞뒤로 정리하지 않고 생각나는 것들의 문장을 바로바로 휴대폰의 메모 어플, 태블릿을 휴대한 날에는 태블릿을 펴놓고 어디에서든 앉아 어떠한 계획 없이 그냥 쓴다. 말하기 껄끄러운 것들이라던지, 말하고 싶은데 정리가 안되어서 핵심을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들이라던지, 삶에 직면한 모든 것들에 대한 느낌이라던지, 그것을 마주하는 나의 자세라던지, 바로바로 써서 글로, 문장으로 보관하고 정리해 둔다. 느닷없이 떠오른 생각은 머릿속 어딘가 서랍에 넣어 보관한다고 해도 다시 열어보면 빈 서랍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바로바로 담아둬야 한다.
글을 쓰려고 막상 책상에 앉으면 그 주제에 대해 생각이 나지 않았다가 이상하게도 꼭 딴짓을 하거나 멍을 때릴 때에 적절한 문장이 떠오르곤 한다. 그렇게 떠오른 좋은 문장이나 생각을 기억해 두었다가 글로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어놓고 한 시간은커녕, 10분도 되지 않아 까먹어 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영업을 기반으로 하는 일을 하고 있어 일과가 시작되면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이 수도 없이 많아, 그들의 오만가지 생각과 요구들이 머릿속으로 치고 들어오는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되겠다.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은 생각들을 휴대폰 메모 어플에 문장으로 바로 보관한다. 비교적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그래서 언제나 메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도 글쓰기 필수요소 중 하나였다. 그렇게 주제에 대해 생각난 것들은 한 문장으로 쓰고, 생각날 때마다 또 쓴다. 두서없이 문맥의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써왔고 보관해 왔던 문장들을 모아 모아 정리 정돈하여 하나의 글로 엮는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란 이렇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고 남들이 내 글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연함을 가지고 쓰는 것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두려움이 앞서, 그러한 마음이 담긴 글은 결국은 꾸며지고 포장된 글로 둔갑하게 되어 결국은 재미도 없고 공감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읽었던 그저 그런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무엇에 구애받지 않고 여기저기에 쓰고 보관한 다음, 그렇게 쓴 것들을 모아 엮고, 하나의 글로 완성한다. 이러한 과정을 여러 번 수십 번 하다 보면 어느새 글을 쓰는 것에 두려움을 서서히 떨쳐낼 수 있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는 성취감이다. 자본주의에 찌든 삶이란 그 가치가 숫자의 많고 적음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기에 이루고 싶어 발버둥 치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실의에 파묻혀 깊게 새겨진 허무주의와 실존적 공허를 지워가는 데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사실, 그래서 재테크를 주제로 한 글을 잠시 멈춰 버렸다. 지구상에 단 한 번 뿐이고, 유일무이한 삶이란 것을 영위하는데 숫자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가짐과 가지지 못함에 따라 좋고 나쁨을 결정짓는 삶이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숫자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고, 목표가 비교적 너무 높은 탓도 있겠으나, 숫자와 비교할 수 없는 정말 중요한 ‘진짜 인간다운 삶’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글쓰기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게 되었으며, 숫자를 기준 삼는 잣대를 치워버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글을 쓰려니 책을 읽어야 했고 책을 읽다 보니, 굳이 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수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으며,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저 들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삶의 허무와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고, 오지도 않은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와 싸우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