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옥석을 가리는 법
'옥석을 가린다'라는 말이 있다. 삶에 있어서 모든 것들에 적용시킬 수 있을 법한 문장인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여 그중 좋은 것을 취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문장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때때로 옥석가리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옥석을 가린다'라는 말은 '옥석구분(玉石俱焚) : 옥과 석이 함께 탄다.'라는 한자성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니까 옥과 석이 같이 존재해야만 성립되는 말이다. 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옥 또한 옥일 수 없다. 석이 없는 옥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옥이 없는 석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옥과 석, 모두의 존재만이 각각의 가치도 함께 존재하며, 만약 이 세상에 석만 존재한다면 옥도 가치있다 할 수 없다라는 말과 같다.
우리는 하루하루 삶을 마주하면서 수많은 옥석을 가려야 하고, 스치고 지나치며 혹은 부딪히기도 한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 때에도, 새로운 물건을 살 때에도, 그중에서 옥석을 가리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소모하고 애를 쓴다. 그렇기 고른 것이 옥이면 신나라 만세를 부르고, 돌멩이 같은 것을 고르면 격분하며 속은 것과 같은 감정에 사무친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영롱하게 빛나는 것 같은 옥같이 보여 놓치고 싶지 않고,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손해가 되는 것만 같은 사람을 알게 되면 길가에 버리고 싶은 돌 같은 존재로 치부해 버리고 심지어는 사람취급도 아까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옥과 같이 빛나는 사람과 돌처럼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영롱한 빛이 발하는 옥 같은 사람이어도 내가 알지 못하는 흠집이 있을 수 있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돌 같은 사람에게서는 옥보다 더 한 빛나는 부분을 알게 되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그래서 옥석 가리기와 같은 판단을 사람에게 하는 태도를 지녔다면 스스로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내가 여태껏 봐왔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했던 사람은 옥과 같은 사람과 돌과 같은 사람의 장점을 모두 활용하고, 이들을 조화롭게 만들어 더 큰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지녔었다. 어느 미련한 멍청이는 옥처럼 빛나는 사람의 장점만 치켜세우고 돌 같은 사람을 들러리만 세우다가 결국 모두가 떠나버리고 말았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쩌면 옥석 가리기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옥석 가리기는 스스로의 삶을 마주하는 자세에 있다. 삶이 힘들고 괴롭고 어렵다 하여 현재의 삶을 석이라고 생각하고 자괴감에 빠져서 비탄스럽게 한 번뿐인 시간을 낭비해 버리면 그 삶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흙수저라서, 태생부터 타고난 환경이 이래서, 내 부모는 남들보다 모자라서, 그래서 돌멩이 같은 인생으로 결정되어 버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미 그렇게 치부해 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모래와 흙이 단단하게 자신의 삶에 덕지덕지 붙고, 그대로 굳어버려 흔하게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돌 같은 삶이 되어버렸다 하더라도, 수도 없이 갈고 닦아 숨어 있던 나만의 옥을 꺼내게 되면 세상 그 어떠한 것보다도 빛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옥과 석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며,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는 그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삶을 옥과 석으로 분별 지을 수 없으며, 각각의 그 가치가 충분히 소중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본인이 걷고 향하는 곳, 그 시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남이 정한 기준, 남이 평가하는 잣대에 따라 살게 되면 나의 소중한 한 번뿐인 삶이 즉시 돌멩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신뢰를 기반하며, 자신에게 정직한 삶을 살고 있다면 어떠한 삶을 살던 옥처럼 찬란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결정과 행동이 삶의 옥석을 판가름한다.
옥석구분이라는 사자성어에는 옥과 석이 같이 탄다는 뜻이 있겠지만, 옥과 석은 같이 탄다 할지라도 타는 방식부터도 다르며, 끝까지 다 타버렸다 해도 마지막의 모습에서도 다름을 나타낸다. 삶도 그러하다. 어차피 타버릴 옥석이라면 찬란하게 빛을 내며 타는 것이 아름답지, 석처럼 까만 그을림과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타버린다면 멀리하게 되고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지금의 1분 1초도 인간의 삶에 있어서는 너무나 빠르기에 과거라는 시간으로 타버려 없어져버린다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각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목적을 잃고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대다 술독에 빠져 살거나, 심지어는 마약에도 손을 대기도 하고, 스스로 삶을 중단하거나, 삶을 영위하는 이유를 쾌락만 추구하는 것으로 정해버리고,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대신하기 위해 가상의 세계에서 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아주 아쉽게도 우리는 인간이어서 지금의 현재는 과거라는 기억으로 남아 보존된다. 지금의 현재는 과거로 잊혀지거나 소각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기억'이라는 것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인생이 허무하다 할 수 없다. 어떤 삶은 누군가에게 옥이란 기억으로 남아 영원히 빛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구의 삶은 석이란 기억으로 남아 별 의미 없는 그저 그런 기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항상 주변에 한없이 올곧이 바라봐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우리는 서서히 타버릴지언정, 비록 타인에게는 석으로 치부되는 존재일지언정, 누군가의 기억에는 옥처럼 빛나는 기억으로서 보존되기 위해 지금의 현재를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주어진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아야 한다. 틈틈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세상이 만든 기준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상상의 드론을 띄워 저만치 멀리서 나를 지켜보았을 때 옥처럼 빛나는 하루를 살고 있구나라고. 그렇게 조용하지만 요란스럽게 부지런을 떨어야만 한다.
언젠가 만나게 될 하느님 앞에서는 변명이 소용이 없는 법이다. ’누가 시켜서 했다‘거나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건 하느님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에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그만의 색이 있었다고. 그런 옥과 같은 기억이 되기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