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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 Oct 13. 2024

여행이 없는 갭 이어,
떠나지 않는 갭 이어

대신 여행 에세이 한 권을 펼치다.

 


 갭 이어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공통적으로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 여행을 통해 일에서 떠나 휴식을 취하며 번아웃을 극복하기도 하고 세상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문화를 접하면서 새로움을 느끼고 여러 생각을 담아오기도 한다. 


 나의 갭 이어에도 여행이라는 게 있을까. 정답은 '없다'이다. 일단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오지 않은 건 아니지만 평소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거나 비행기표를 틈만 나면 찾아보거나 특가 항공권을 찾아보거나 하지 않는다. 항공기 예약 앱 하나 안 깔려 있고 숙소를 찾는 앱도 없다. 여행이 사람을 바꿔준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다만 그건 단 한 번의 여행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여행을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계획했던 여행(독일-오스트리아 구간)을 취소하기도 했다. 남의 여행이야기는 더더욱 관심 없었고 여행 관련 책은 단 한 권도 읽어 본 적 없었다. 이번 갭 이어를 가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독립은 여행>과 <퇴사는 여행>에서 나오는 갭 이어에도 여행은 포함되어 있다. 책을 막 읽었을 때만 해도 여행에 대한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여행자MAY' 님의 <반짝이는 일을 미루지 말아요>라는 책이다. 표지를 보고 책을 몇 장 넘겨보았을 때 여행 관련 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냥 넘어가려는 순간 제목이 계속 눈에 걸렸다. 내 인생에는 반짝이는 장면이 있었던가 하다못해 반짝이는 순간이라도 있었나 싶었다. 제목에 이끌려 결국 책을 집어 들었다. 신기하게  이 책이 시작이 되어 이후로 여행이 좋아지고 여행 에세이도 많이 읽게 되었다. 책을 덮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을 변화이다.



  책에서 본 여행의 본 모습은 마냥 이상적이고 아름답지 않았다. 고난의 연속이었고 맑은 날 없이 비만 내리는 장마처럼 느껴졌다.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보인 건 여행은 '내가 살아 있다'라는 보여주었다. 여행을 통해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음을, 오늘도 이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앞으로도 걸어가며 살아가고 있을 것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행을 통해서 만나게 된 사람들, 예상치 못한 일에 울고 웃고, 극복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보기도 하고 기대를 하고 고생해서 찾아왔어도  별 볼일 없는 것들에 실망하는 등 이 이야기들이 내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이유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스스로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러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여행을 이제는 읽고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갭 이어를 보내는 중이다. 아마도 이 갭 이어 중에는 여행은 없을 것이다. 내년 4월에 프랑스 떼제 마을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합쳐 두 달 정도를 갈 계획을 처음에는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떠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서랍 속 수첩에 소중하게 적어두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그곳에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과 나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할 이야기는 적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여행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싶다. 누군가의 '살아 있음'에 대해 듣고 싶다.




그러니 우리, 불어치는 파도 속에서도 부디 반짝이는 일을 미루지 말아요.

그래요, 바로 오늘이요.


-여행자MAY <반짝이는 일을 미루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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