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룩 백>을 추천받았다.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 길로 바로 극장으로 향했다. 1시간 정도의 길이가 선택을 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영화는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영화에 대한 것들을 찾아보니, 많은 이들이 예상치 못한 사건과 그에 따른 슬픔에 대해 공감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 한 장면 또는 키워드 하나만 잡으라고 하면 나는 뒷모습(제목과 이 작품이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또는 시간을 꼽을 것 같다. 아니, 그중에서 시간이 더 크게 다가온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시간은 이런 것이다. 주인공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건 엄청난 노력이 투여된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준다. 문제는 어느 정도이다. 그 시간을 견딘 주인공은 그토록 원하던 한 마디를 듣는다.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은 이유는 요즘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데 그 비결은 무엇일까? <룩 백>은 시간이라고 말을 한다. 물론, 그 시간을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룩 백>의 몽타주 시퀀스는 그것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그 시간들이 나에겐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그 시간을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보낸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시간들이 다시 나에게 올까. 나이를 먹을수록 조바심만 늘어간다.
2024년은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간 한 해이다. 아직 한 달 남았다고 하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남은 한 달 동안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왜 2024년의 시간들은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사실 8월부터 이것에 대해 생각을 했다. 미국에 다녀온 것 때문인가? 가지 말았어야 했나. 다녀온 후에 너무나도 괴로웠는데 그건 지금의 결말을 예고한 게 아니었을까? 그걸 내가 눈치채지 못한 걸까. 왜 이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난 3년 반 동안 했던 선택들 중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하나하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내 오만이었던 걸까.
반년 가까이 이것에 대해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들이 계속해서 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다. 장고 끝에 악수만 놓고 그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최악의 결과만 가져왔고 그건 또 자책의 시간들로 나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한동안 이 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이제 아무것도 선택하고 결정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조건은 똑같다. 사정을 이야기해 봤자 핑계라는 말로 돌아올 것이다. 모두 똑같은데 난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부끄러운 시간만 보내고 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거 같은데 그럴 거면 애초부터 처음이었어만 했다. 그랬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을 텐데. 그런 것들을 조심하면서 고민하고 더 나아지려고 했고, 고민 끝에 선택과 결정을 하고 그랬지만, 항상 그랬듯이 그건 최악의 결과만을 가져왔다. 이쯤 되면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러나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현재는 그것들을 다시 내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따라서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다. 도망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게 유아적인 사고란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이 생각들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왜 이렇게 판단력이 나빠졌을까. 할 수 있는 거란 자책과 지겨울 정도의 후회뿐이다.